4월4일 임기 만료..."월성 1호기 폐쇄시키겠다" 공약 걸고 취임한 분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오는 4월4일 임기가 끝나는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최근 1년 연임을 추진하면서 그의 과거 행보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정 사장이 한수원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탈원전 정책에 앞장 섰던 인물인데다 현재도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새 정부와 윤석열 당선인이 탈원전 정책 폐지를 공약으로 내 건 상황에서 정 사장의 연임 행보는 앞뒤가 맞지 않다는게 에너지 업계의 중론이다. 

- 탈원전 돌격대장이 정권 교체 후에도 연임 의사 밝힌 것에 공분
- 국민의힘 논평 "정책 흔들리면 피해는 국민 몫, 정 사장 물러나라" 


한수원은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정 사장의 1년 연임을 의결하고, 이어진 주주총회에서 연임안을 통과시켰다. 애초 임기는 지난해 4월4일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만료를 앞두고 1년 연임이 결정된 바 있다. 사장 임기는 3년으로 이후에는 1년 단위로 이어갈 수 있다.

정 사장은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등 탈원전 정책에 반대했던 전임 이관섭 사장이 임기를 1년 10개월 남긴 2018년 1월 돌연 물러나자 그해 4월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시키겠다’는 직무 수행 계획서를 한수원 임원추천위원회에 낸 뒤 취임했다. 취임하자마자 탈원전에 비판적인 사외이사들을 교체한 뒤 미래 이용률과 발전 단가가 조작된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를 주도했고 그걸 빌미 삼아 폐쇄를 밀어붙였다. 현재도 정 사장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과 관련돼 불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는 중이다. 

대전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박헌행)는 지난해 8월 백운규 전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한국수원 사장 등에 대한 첫 공판 준비 기일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검찰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은) 청와대·산업부·한수원 고위 관계자의 조직적 범죄 의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월성 원전 1호기 즉시 가동 중단에 따른 정부의 한수원에 대한 손해보전 여부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백 전 장관의 지시를 받은 정 사장이 원전 경제성 평가 자료를 조작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 정재훈 한수원 사장 입지 '흔들'

한국수력원자력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고발한 강창호 에너지흥사단 단장은 본지에 "청와대가 경제성 평가 결과 조작을 지시하고 한수원 자율적 경영에 부당 개입한 대형 게이트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탈원전' 돌격대장겪인 정 사장의 이번 연임 행보는 이해 하기 어렵다고 밝힌다. 특히 '탈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건 새 정부에서도 기관장직을 유지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뉴시스]
[뉴시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본지에 "현 정부에서 그것도 탈원전 선봉장에 서서 폐기를 주장했던 분이었다. 그간 도산한 업체들이 많다. 그나마 새정부에서 탈탈원전 선언을 한 마당에 연임을 추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정재훈 사장은 연임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탈원전 돌격대장' 한수원 사장의 뻔뻔한 연임 욕심'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정 사장의 최근 행보를 비판했다. 이 신문은 "탈원전 돌격대장 역할을 했고 그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 새 정부에서도 한수원 사장 자리를 지키려는 것은 해도 너무하는 것이다"라며 "정 사장은 연임은 아예 생각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선비즈는 한 공기업 인사의 발언을 빌려 "정권 말기에 친정부 인사를 공공기관 감사 등으로 보내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기관장을 줄줄이 연임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보도했다.

정 사장이 연임에 성공해 기관장직을 계속 수행한다면 새 정부와도 정책적으로 충돌이 불가피하다. 윤 당선인은 탈탈원전을 공약으로 내놨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후보시절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건설 공사 재개하고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력을 복원해 원전 생태계를 활성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말 신한울 3·4호기 공사 부지를 직접 찾아 대통령이 되면 즉시 공사를 재개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비록 정 사장이 지난해 연말 국정감사에 출석해 "원전 없이는 탄소중립은 가능하지 않다.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업계가 굉장히 어렵다"라며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 원전 생태계에 숨통이 트였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본인이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중단시킨 장본인이면서 건설을 재개하자는 말을 해 업계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 전형적인 알박기 사례...신구권력 충돌

일각에서는 현 정권의 임기말 알박기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지적이다.  윤석열 당선인 측 임태희 특별고문은 17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한수원 사장 1년 연임과 관련, “중요한 에너지 정책과 관련됐다. 인수위에서 문제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임 고문은 “정무직의 경우 새 정부의 재신임을 받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 “핵심 공약이나 정책적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의 경우에도 정무직의 경우에 준해서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文)정권 인사의 국민 기만극은 한수원에서도 일어났다. 이념에 매몰된 탈원전 정책을 앞장서 이행했던 정 사장이 임기를 1년 더 연임하게 된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마저 '원전이 주력전원'이라며 사실상 탈원전 실패를 인정한 마당에 무슨 염치로 자리를 보전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힐난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가 망국적인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천명한 마당에, 정 사장은 자리를 지키며 탈원전에 반대하는 기회주의를 택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몽니를 부리겠다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수원이 정책 방향을 잃어 우왕좌왕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며 "더 이상의 국민 혼란을 막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이 속한 조직을 위해 깨끗이 물러나 검찰수사와 재판에 임하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아직 연임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공기업 사장의 임기 연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 산업부도 이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아직 정 사장의 추가 연임안을 청와대에 제청하진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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