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심신상실․항거불능이란?

준강간(강제추행)죄에 있어 심신상실이란 수면 중인 사람, 일시 의식을 잃고 있는 사람 등 판단능력을 상실한 사람을 뜻한다. 술에 만취되었거나, 수면제를 복용하여 깊이 잠이 든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유명연예인 K씨 사건에서 피해자가 완전히 만취한 것은 아니나 몽롱한 상태, 즉 비몽사몽간인 경우에 관하여도 심신상실에 해당되는지가 문제된 바 있다. K씨의 변명에 의하면, 자신이 피해자를 추행할 무렵 피해자가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낸 점을 고려할 때, 범행 당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충분한 입증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태까지 심신상실로 보는 것은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해자가 잠결에 보낸 메시지는 매우 짧은 답문 형태에 불과하여, 잠이 들기 직전이나 잠에서 일시적으로 깨어난 몽롱한 상태에서 보낼 수 있는 메시지로 보이는 점, 피해자가 잠에서 깨어나 항거가 가능한 상태에 있었다면, 피고인의 행위에 즉각 대응하였을 것으로 보임에도, 피해자가 피고인의 행위에 대응하지 못하다가 추행을 당한 후에서야 피고인을 피하여 침대에서 내려온 점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의 추행행위 당시 피해자가 술에 취한 채 잠이 들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준강제추행죄에 대한 유죄판결을 하였다(대법원 2020. 11. 5. 선고 2020도8669 판결). 

결국 대법원은 이렇듯 피해자가 비몽사몽의 상태라고 해도 준강제추행죄에 있어 심심상실의 상태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한편, 항거불능이라 함은 피해자가 행위자의 성적 요구를 심리적 또는 신체적으로 절대적으로 혹은 현저하게 거절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한 경우를 말한다. 먼저 심리적으로 항거불능한 예로는 이미 다른 사람에 의해 수회 강간당해 자포자기 상태에 있는 여자, 자살을 하려고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누워있는 사람,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제정신이 아닌 사람 등이 이에 해당된다. 

신체적으로 항거불능한 예로는, 이미 결박되어 있어 저항하지 못하는 경우, 큰 부상을 입어 저항하지 못하는 경우, 기력이 상실되어 기진맥진되어 저항하지 못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된다. 
대법원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한 미성년자를 또다시 간음한 군인에게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 군인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정황상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준강간’이라고 판단했다.
 
▶ 대법원 2020. 11. 12. 선고 2020도9667 판결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2014년 7월1일 오전 2시경부터 오전 3시경까지 경기 양평읍에 있는 C의 이복누나 집에서 C, S,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같은 날 오전 4시경 화장실에서 술에 만취했으며 C로부터 준강간을 당해 알몸으로 쭈그려 앉아 있던 피해자를 화장실 바닥에 눕혀 1회 간음했다. 이로써 피고인은 아동․청소년인 피해자에 대하여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해 강간했다.
 
[원심의 판단]

피고인은 피해자와 합의하에 성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원심(고등군사법원 2020. 7. 2. 선고 2020노20 판결)은, 군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간음하여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원심은, 피고인의 간음행위 이후에 피고인과 피해자가 화장실에서 함께 나와 안방에 들어가 누운 상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피고인과 S가 피해자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피고인과 피해자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올라가 피해자의 현관문 앞에서 키스를 한 점, 그 이후에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어찌됐든 당신은 말리지 않았고, 나는 원치 않는 성관계를 당한 성폭행 피해자가 되었네요’ 등의 문자를 보낸 점 등에 비추어, 피해자를 성폭행한 사람은 C이지만 서로 좋아하는 사이임에도 이를 말리지 않은 피고인을 책망하는 것일 뿐, 피해자 스스로 피고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정 등을 무죄의 근거로 들고 있다. 원심은, 피해자가 ‘피고인이 피해자를 간음하기 직전의 상황과 간음 중의 상황’은 명확히 기억하면서도 ‘간음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의 상황’만 유독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제1심판결을 인용했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당시 고등학생이던 피해자가 술을 먹고 구토하는 등으로 상당히 취한 상태였고 C로부터 준강간을 당한 직후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피고인의 간음행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의 상황을 일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경험칙에 비추어 피해자의 진술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된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피고인은 화장실에 갔다가 옷을 입고 있는 피해자를 발견하고 괜찮은지 물어 보고 동의를 얻어 성행위를 했고, 당시 C가 피해자에게 간음행위를 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C의 간음행위로 이미 항거불능 상태에 있음을 알면서 피고인이 간음행위를 했고 이로 인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다고 보인다고 했다.

3. 범인이 적극적으로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의 상태를 야기한 경우는?

예컨대 의사가 처음부터 환자를 강간할 마음을 먹고 마취를 하거나, 수면제를 먹인 후 강간한 경우, 혹은 최면술을 잘 하는 사람이 피해자에게 최면을 걸어 강간한 경우에는 준강간죄가 아닌 강간죄가 적용된다. 만약 잠자는 여자를 간음하려고 옷을 벗기던 중 여자가 깨어나자 폭행을 하여 강간한 경우에는 강간죄 1죄가 성립되나, 이미 준강간을 한 뒤 여자가 깨어나 반항을 하자 폭행을 하여 재차 강간한 경우라면 준강간과 강간죄의 실체적 경합범이 성립된다. 

<강민구 변호사 이력>

[학력]

▲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 미국 노스웨스턴 로스쿨 (LL.M.) 졸업
▲ 제31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21기)
▲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 합격

[주요경력]

▲ 법무법인(유) 태평양 기업담당 변호사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 검사
▲ 법무부장관 최우수검사상 수상 (2001년)
▲ 형사소송, 부동산소송 전문변호사 등록
▲ 부동산태인 경매전문 칼럼 변호사
▲ TV조선 강적들 고정패널
▲ SBS 생활경제 부동산법률상담
▲ 現) 법무법인(유한) 진솔 대표변호사

[저서]

▲ 부동산, 형사소송 변호사의 생활법률 Q&A (2018년, 박영사) 
▲ 형사전문변호사가 말하는 성범죄, 성매매, 성희롱 (2016년, 박영사)
▲ 부동산전문변호사가 말하는 법률필살기 핵심 부동산분쟁 (2015년 박영사)
▲ 뽕나무와 돼지똥 (아가동산 사건 수사실화 소설, 2003년 해우 출판사)

<다음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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