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던 이대남(20대 남성 유권자)들이 잔뜩 뿔이 났다. 20대 대선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병사 월급 200만원 즉시 시행이라는 대표 공약을 믿고 윤 대통령에게 사실상 몰표를 던졌지만 막상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110대 국정과제에서는 이들 공약이 빠지거나 후퇴했기 때문이다. 물론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여가부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 코로나19사태의 장기화 및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대내외적인 위기와 재정 여건 탓에 병사 월급 200만원의 즉시 지급 또한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여소야대 지형이나 재정여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론이지만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대남 표심을 겨냥한 핵심 공약이었다. 인수위 국정과제 발표 이후 공약파기 논란이 확산되면서 이대남들은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대남들이 주로 이용한 정치 커뮤니티에는 윤 대통령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도 넘쳐난다. 한마디로 대선용 공약에 속았다는 것이다. 20대 대선부터 이어져온 이대남과 윤 대통령의 애증 관계 및 향후 여파를 분석해봤다.

윤석열 대통령 110대 국정과제 발표하는 안철수 인수위원장,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110대 국정과제 발표하는 안철수 인수위원장, 뉴시스

‘여가부 폐지·병사월급 200만원’ 대선 공약 파기 논란
대선승리 일등공신이대남, “뒤통수 맞았다강력 반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대남 다독이기에 나섰지만 후폭풍은 여전하다. 문제는 향후 정치적 파장이다. 510일 윤석열정부 공식 출범 이후 약 3주만에 6.1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윤 대통령은 20대 대선 연장전 성격인 6.1 지방선거에서 압승해야 정국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야당과 법조계는 물론 과반 이상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 관련 입법 과정에서 보여준 무소불위의 과반 위력을 고려한다면 지방선거 승리 없이는 임기 내내 민주당의 발목잡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그만큼 지방선거 승리가 절실하다. 다만 대선 공약 포기와 후퇴에 뿔난 이대남들이 현 정부에 등을 돌린다면 상황은 매우 복잡해진다. 당장 지방선거에 미칠 악영향이 불보듯 뻔하다. 특히 서울·경기·인천 등 여론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도권 선거의 경우 이대남들이 지지 철회에 나선다면 윤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적잖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대남 여가부 폐지·병사월급 200만원환호했지만..

윤 대통령은 20대 대선이 두 달 가량 남은 지난 1월초 극심한 위기에 시달렸다. 크고작은 실언이 지속된 것은 물론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으로 사실상 만신창이 상황에 놓여있었다. 지지율 하락에 위기감을 느낀 당 일각에서는 정권교체를 위해 후보교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마저 나올 정도였다. 고심을 거듭하던 윤 대통령은 승부수를 던졌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주도하는 선대위를 해체하는 극약처방을 선택했다. 이어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이 대표와는 극적으로 화해한 뒤 환상의 콤비로 거듭났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했던가.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우군으로 등장한 집단이 이른바 이대남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대남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한 뒤 지지율 상승을 통해 대선승리의 원동력을 만들어냈다.

이대남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은 윤 대통령의, 그 유명한 한줄짜리 페이스북 대선공약이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페이스북을 통해 언급한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으로 엄청난 화제와 파격을 불러일으켰다. 문재인정부의 과도한 페미니즘 정책에 반발한 이대남들을 겨냥한 맞춤형 공약이었다. 남녀 갈라치기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공약 수혜계층인 이대남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보수세가 강한 60·70대에다가 20·30세대의 지지를 묶어서 민주당 지지 성향의 40·50대 세대를 포위한다는 이른바 세대포위론의 출발이었던 셈이다. 특히 젠더 갈등과 MZ세대의 표심이 20대 대선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이대남의 선택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윤 대통령에 대한 이대남의 지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대선결과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KBS·MBC·SBS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 20대 이하 남성 유권자 58.7%는 윤 대통령을 지지했다. 36.3%를 얻은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을 더블스코어 수준으로 누른 것이다. 반면 20대 이하 여성 유권자의 58.0%는 이 고문을, 33.8%는 윤 대통령은 선택하는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났다. JTBC 출구조사에서도 이대남의 윤 대통령 지지는 확연했다. 1829세 남성 유권자의 후보별 지지도는 윤 대통령 56.5%, 이 고문 38.2%로 각각 나타났다. 지역적으로는 영남, 이념적으로는 보수를 양대 축으로 세대별로는 이른바 이대남이 윤 대통령의 핵심적인지지 기반이 된 셈이다. 다만 윤 대통령과 이대남과의 밀월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취임 직전부터 이상기류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뿔난 이대남 용산 이전은 무슨 돈반발
 

국방부 의장대가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4.28. 뉴시스
국방부 의장대가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4.28. 뉴시스

지난 3일 온국민의 시선이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에게 쏠렸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에 대한 브리핑이 열렸기 때문이다. 윤석열정부 5년간의 국정운영 청사진을 발표하는 자리였지만 세간의 관심은 여가부 폐지와 병사 월급 200만원의 실현 여부였다.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빈 수레가 요란했을까? 뚜껑을 열어보니 참담했다. 이대남 핵심공약은 새정부 국정과제에서 아예 제외되거나 흐지부지됐다. 이에 민주당은 “50일간 인수위가 남긴 것이라곤 부도어음과 찢어진 공약집이라고 맹비난했다.

110대 국정과제에 따르면, 여가부 폐지가 빠지고 기능을 대수술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성평등 및 여성정책 주무부처로서 여가부의 조정·총괄 기능을 삭제하는 한편 여가부 주관 업무로 명시됐던 젠더폭력 방지 국가책임 강화도 제외됐다. 다만 여성 고용 증진, 저출생 대응, 청소년·다문화가족 지원, 성범죄 피해자 보호 방안 등 여가부의 기존 세부 업무도 법무부 등과 협업하거나 타부처가 소관 업무 범위에서 소화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인수위가 애초 정부조직개편을 후순위로 미뤘다는 점에서 예상된 결과였지만 윤 대통령이 여러 차례에 걸쳐 여가부 폐지를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공약파기였다. 인수위 관계자는 공약 후퇴나 파기가 아니며 정부 출범 이후 구체적으로 논의·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이대남의 반발은 예상보다 거셌다.

이어 군 입대를 앞둔 20대 초반 남성들의 관심이 지대했던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도 후퇴했다. 윤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즉시 시행에서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변경된 것이다. 인수위는 국정과제 발표에서 오는 2025년 병장 기준으로 병사 봉급+자산형성 프로그램으로 월 200만 원을 실현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현행 병장 기준 67만여원인 병사 월급을 2025년까지 150만 원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한 뒤 올해 도입된 자산형성프로그램에 대한 정부 지원을 2025년까지 최대 55만 원으로 인상하면 2025년 월 200만원 지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재원 마련의 어려움과 부사관 등 초급 간부와의 급여 역전 현상을 고려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이대남들은 대선공약 파기라고 반발했다.

이대남들은 남초 커뮤니티는 물론 포털사이트 관련 기사 댓글에 성토를 쏟아내며 반발했다. 여소야대 정국와 재정여건을 고려할 때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었지만 강경론에 묻혔다. “이대남 줄 돈은 없고 용산 이전에는 혈세를 펑펑 쓰나”, “대선 때 표만 얻어놓고 이제와서는 나몰라라하는 게 사실상 사기 아닌가”, “애초에 불가능한 공약을 믿었던 내가 바보다”, “대선 때는 거짓말이 아니고 반드시 준수한다고 하지 않았나”, “처음부터 공약을 못지킨다고 하면 탄핵이 답이다등등. 이대남을 상징하는 스타 정치인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병사 월급 200만원 즉시 시행2025년까지 단계적 인상으로 조정된 것은 인수위가 문재인 정부가 남긴 적자재정의 세부 사항을 보고 내린 고육지책이겠지만 안타깝다대선 때 국민께 공약한 사안 중 일부 원안에서 후퇴한 점에 대해선 겸손한 자세로 국민께 반성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6.1 지선 어쩌나? 박빙 수도권 악영향 불가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본부장 손승현)는 제20대 대통령 취임을 맞아 나라의 번영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을 담아 '제20대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를 오는 10일부터 판매한다고 밝혔다. 2022.05.03. 뉴시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본부장 손승현)는 제20대 대통령 취임을 맞아 나라의 번영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을 담아 '제20대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를 오는 10일부터 판매한다고 밝혔다. 2022.05.03. 뉴시스

날이 갈수록 공약파기 논란이 확신되면서 인수위와 국민의힘이 긴급 진화에 나섰다. 인수위는 지난 5일 입장문에서 여가부 폐지 공약 준수 입장을 재확인했다. 당선인 대변인실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가부 폐지' 공약을 추진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공약 실천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도 새 정부 출범 후 해당 부처를 중심으로 심도 있는 검토 후 추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6대선 때 국민에게 약속한 것들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여가부 폐지와 인구가족부 신설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제출 의사를 밝혔다.

병사 월급 200만원의 추진 의지도 재확인했다. 권 원내대표는 기재부 장관 후보자와 논의해서 예산 마련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 현재로서는 (병장 봉급 200만원) 물리적으로 2025년이 가장 빠르다고 확답받은 상태지만, 조금이라도 단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도 지난 4일 인사청문회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려고 고민했는데 재정 여건이 여의치 않아 일부 점진적으로 증액시키는 것으로 조정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다만 여가부 폐지는 장관 후보자까지 지명한 마당에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병사 봉급 200만원 또한 향후 경제상황에 연동된다는 점에서 공약 준수를 장담하기 힘들다.

문제는 공약파기 논란이 6.1 지방선거에 미칠 악영향이다. 물론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일방 추진에 따른 부정적 여론 대선 승리에 이은 시너지 효과 510일 윤석열정부 출범 기대감 청와대 개방에 따른 호의적 여론 외교적 빅이벤트인 한미정상회담 개최 효과 등의 바탕으로 지방선거 압승을 조심스럽게 예견하고 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의 주요 대선공약이 줄줄이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목은 부담스럽다. 민주당에서는 거짓말 정권으로 몰아세우며 공약파기를 맹비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야간 초박빙이 예상되는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선거에서 이상징후가 불거질 수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정치적 우군이었던 이대남들이 대선공약 파기에 실망해 중도지대로 돌아서거나 아예 투표 자체를 포기하는 기권을 선택할 경우에는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인수위가 존재하는 것은 포퓰리즘적 공약을 되도록 걸러내고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재정여건과 실현 가능성에 맞춰 공약을 리모델링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라면서 새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잇따른 공약파기 논란은 분명한 악재이지만 대선과정에서 제시한 모든 공약을 100% 달성겠다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윤석열정부의 성공을 위해 장기적으로 볼 때 초박빙 대선과정에서 쏟아냈던 비현실적인 공약들을 대폭 수정하거나 조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면서 대선과정에서 몰표를 줬다가 실망한 이대남들을 향해서는 현실적인 여건을 솔직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서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