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0월 유신(1972년 10월 17일)’ 50년이 되는 해다. 최근 발간된 <숨결이 혁명 될 때>(조우석 외 16인 공저, 지우출판)는 ‘박정희정신’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다양한 시각에서 담아냈다.

박정희정신연구소장을 겸하고 있는 필자는 5.16혁명에서 유신까지 18년의 역사를 글로 표현해 낸 ‘17명의 또 다른 박정희’를 만난 기쁨과 흥분을 지울 수 없다. 이에 <숨결이 혁명 될 때>를 박정희 ‘결단의 리더십’으로 해석해 봤다.

우리 현대사에서 부당하게 왜곡 당하고 폄훼 당하는 시대가 ‘건국 시대’와 ‘산업화 시대’다. 좌파들은 이승만 시대를 ‘독재시대’, 박정희 시대를 ‘정경유착 시대’로 깎아 내린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자손을 위해 미전(美田,좋은 땅)을 사지 않았다. 1남 2녀를 위해 남긴 재산은 신당동 집 한 채뿐이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의 산업구조는 아직도 1960~70년대 ‘박정희 모델’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 중 박 대통령이 1973년에 발표한 ‘중화학공업화 선언’은 대한민국의 선진국 기초를 다진 역사적 결단이었다. 박정희는 철강, 비철금속, 조선, 기계(자동차 포함), 전자, 석유화학이라는 6개 업종의 산업을 일으켰다.

박정희는 중화학공업화와 같은 비전이 아니고서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5.16의 완성이 10월 유신’이라는 신념이 초헌법적 비상조치인 유신체제를 발족시킨 단서가 되었다. 결국 유신체제의 목표는 중화학공업 건설이었고, 권력 집중은 수단이었다.

1978년 말 청와대 오찬 기자간담회에서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박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지금 북경과 상해간 도로는 한 시간에 자동차가 한 대 쯤 지나갈 정도로 한산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11차 삼중전회(三中全会)에서 개혁개방 정책을 표방했다. 앞으로 중국이 국제시장에 뛰어들게 되면 한국의 설 땅이 없어진다. 산업구조를 지금보다 최소 20년은 앞으로 가져가야 우리 국민들이 30년 정도 중국보다 잘 살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을 창출한 박정희 모델의 기본요소는 50~100년을 내다 본 ‘미래지향적 통찰력과 선견지명(先見之明)’이다. 박정희의 예언은 소름끼칠 정도로 적중했다.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결과 우리는 중국보다 30년 정도 앞서갈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매섭게 우리를 추격해 산업경쟁력 면에서 한국을 바짝 따라 붙었으며, 일부 부문에서는 추월했다.

어찌됐든 시대를 앞지른 산업구조개혁 덕분에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박정희 모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년 전쯤 구조개혁에 나섰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친 셈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은 있지만,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낡은 경제 틀을 헐고 새 틀을 짜야한다. 이순신이 한산대첩에서 대승을 거둔 후 류성룡이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의 한 구절인 ‘국가재조지운(國家再造之運)’의 명제가 윤 정부의 앞날을 시험하고 있다.

윤 정부가 지난 날 박정희 정부가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유신(維新,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함)’을 다시 꺼내들기를 바라는 뜻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의 리더십’을 추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巨人決斷太酸辛(거인결단태산신) 거인(위인)의 시대적 용단은 크게 힘들고 고되었고

不忘民尋大廟頻(불망민심대묘빈) 국민은 박대통령 묘지를 잊지 않고 자주 찾고 있네

反共强兵驚革命(반공강병경혁명) 반공으로 강병육성 위해 놀라운 5.16혁명을 했고

自主工業果維新(자주공업과유신) 중공업화로 자립 경제 위해 과감한 유신을 했네

貧窮一掃諸方讚(빈궁일소제방찬) 빈궁을 일소하여 세계 각국이 칭찬하게 만들었고

萬古繁榮槿域珍(만고번영근역진) 만고에 번영된 나라 대한민국을 보배로 만들었네

二九始終心志壯(이구시종심지장) 18년 치세 동안 시종일관 마음 뜻이 굳세었고

千秋遺德永奉遵(천추유덕영봉준) 천추에 끼친 덕(위대한 공적)을 영원히 받들어좇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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