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마치 폭풍전야(暴風前夜)와 같은 시계제로다. 위기의 근원은 물가폭등이다. 각국은 ‘물가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4월 평균 물가상승률은 9%대로 34년 만에 가장 높다. 한국도 24년만의 6%로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후폭풍을 최소화해야 한다.

물가가 치솟을수록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이 복지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이다. 이들의 실상을 정부는 세심히 살펴 수급 기준을 현실화할 대책을 조속히 내놓아야 한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생계·주거급여를 확대하고, 취약계층을 두껍게 지원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보강한다”고 밝혔다. 올바른 방향이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되지 않도록 속도를 내야 한다.

비는 안 와도 걱정이고, 많이 와도 낭패인 법이다. 정책입안자들은 재해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 했던 옛사람들의 자세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조선 초의 학자이며 서예가이다. 한양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강릉,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생애는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에 비견되나, 시풍은 시성(詩聖) 두보처럼 ‘사회 풍자시’를 많이 썼다.

김시습의 애민정신은 ‘영산가고(詠山家苦)’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시는 관리들의 수탈에 쫓기는 산민(山民)의 고초를 읊고, 새 임금을 맞아 이러한 고통이 끝나기를 희망하는 뜻을 노래했다. 또한 호환(虎患)의 위험을 무릅쓰고 깊은 산속에서 사는 이유는 세금이 없기 때문이라 하여,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 가정맹어호)’는 말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어린 싹은 해충에게 피해를 입고, 익은 곡식은 새와 쥐가 먹고, 그나마 거두어들인 것은 관리에게 빼앗기고, 겨우 남은 것은 또 무당과 중에게 갈취당하는 ‘연쇄적 수탈현상’을 통하여 농민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김시습은 4세에 시를 지었다. 소문을 듣고 정승 허조가 찾아와 “내가 늙었으니 늙을 노(老)를 넣어 시를 지어보라” 청하자, ‘노목개화심불노’(老木開花心不老, 늙은 나무에 꽃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라고 지어 허조를 놀라게 하였다.

세종대왕이 승지를 시켜 시험을 해보고는 “장차 크게 쓸 재목이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하고 선물을 내렸다고 하여 ‘오세(五歲)’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다. 김시습이 이날 세종에게 받은 비단을 직접 묶어 허리에 차고 궁궐을 나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1세 때인 1455년(세조1) 계유정난(癸酉靖難) 소식을 듣고, ‘자규사(子規詞)’를 지어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규탄하고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이후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다.

평소 도연명(陶淵明)을 좋아한 김시습은 경주 금오산에 은거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썼으며, 단종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주검을 거둔 절의(節義)의 선비이다.

뒷날, 선조의 분부를 받아 ‘김시습전’을 지은 율곡은 매월당의 면모를 ‘백세의 스승’이라 칭송했으며 매월당의 삶을 ‘심유적불’(心儒跡佛, 마음은 유자, 자취는 불자)이라는 네 글자로 집약했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문제를 풀어 가는 소재로 인식한 ‘한국 최초의 역사철학자’이자 ‘영원한 자유인’으로 민초(民草)와 함께 한 매월당 선생의 애민정신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幼年學語作詩遺(유년학어작시유) 어린 나이 말과 글자를 배울 때 시문을 남겼고

五歲登龍駭主僖(오세등용해주희) 오세 때 어전 시작에서 세종대왕을 놀라게 했네

放浪無爲波浪笑(방랑무위파랑소) 허허로운 방랑으로 원대한 포부를 생각하며 웃고

鎖門孤獨怨魂思(쇄문고독원혼사) 문을 걸어 잠그고 외로이 사육신을 생각하네

閑吟乍雨一時弄(한음사우일시농) 한가히 읊은 ‘사청사우’는 일시 변심을 희롱했고

破著金鰲萬古禧(파저금오만고희) 파격적 저서 ‘금오신화’는 오랜 세월 동안 축복이네

跡佛心儒稀罕混(적불심유희한혼) 마음은 유자, 자취는 불자로 희한하게 혼재됐지만

焉知奇客海東師(언지기객해동사) 어찌 알았으랴, 기인이 조선의 스승인 것을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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