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저부터 앞으로 더욱 분골쇄신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 국민 속으로를 강조하면서 초심을 되새겼다. 지난 17일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나선 윤 대통령은 지지율 폭락사태로 드러난 민심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국정운영 동력 확보를 위한 의지도 내비쳤다. 이날 회견에서는 국민이라는 표현만 20번 정도 사용한 게 단적인 사례다. 다만 국정수행 부정평가 원인 1위였던 인사논란과 여권발 내홍에는 말을 아꼈다. 대선후보 시절만 해도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선보였던 윤 대통령은 요란한 정치적 이벤트보다는 취임 100일을 전후로 한 국정운영의 공과를 찬찬히 되돌아봤다. ‘()은 공()대로, ()는 과()대로냉철한 인식을 통해 국정반전의 계기를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드러난 윤 대통령의 상황인식과 향후 정국전망을 짚어봤다.

기자회견도중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긴 윤 대통령, 뉴시스
기자회견도중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긴 윤 대통령, 뉴시스

20분 국정성과 설명에 12개 기자질문에 꼼꼼한 답변
- 분골쇄신·민심수용 강조하며 낮은 자세로 뚜벅뚜벅
바닥 찍은 지지율 소폭 반등관건은 향후 실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내우외환의 위기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대내외적인 경제위기에다 미중패권 갈등 속 대한민국은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게다가 대선 이후 여야관계는 협치는 고사하고 극단적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과연 국정반전에 성공할 것인가. 전망은 엇갈린다. 지지율 폭락사태는 사실상 바닥을 찍은 만큼 윤 대통령이 인적개편과 국정쇄신 분야에서 어떠한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향후 상승가도가 가능하다는 낙관적 전망이 나온다. 반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전방위적인 저격수 활동은 물론 김건희 여사의 리스크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갈 길 바쁜 윤 대통령은 여전히 진퇴양난에 내몰렸다는 비관적 전망도 적지 않다.

민심 겸허히낮은자세강조지지율 소폭 반등

과연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윤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는 국민적 시선이 집중됐다. 윤 대통령은 히트작인 도어스테핑을 통해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왔지만 제한된 시간 탓에 대통령의 솔직한 속내와 구상을 알기는 어려웠다. 이런 점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현 단계 윤 대통령의 정국인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게다가 취임 이후 첫 기자회견이었다. 윤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승부수를 던질지도 관전 포인트였다.

취임 100일을 맞은 지금도 시작도 국민, 방향도 국민, 목표도 국민이라고 하는 것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기자회견 시작과 마무리를 관통한 키워드는 국민이었다. 자주색 넥타이를 매고 대통령실 브리핑룸 연단에 선 윤 대통령은 저조한 지지도에 고개를 숙이면서 국민을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총 20회 가량 언급했다. 이후 윤 대통령이 강조한 대목은 새 정부의 국정성과였다. 대선과 지방선거에 이어 여권 내홍, 야당 전대가 지속되면서 가리워졌던 내용들이었다. 윤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 폐기 무너진 원전 생태계 복원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 한미동행 강화와 한일관계 정상화 법과 원칙에 따른 노사문제 대처 세계 4대 방산수출국 진입 전략 등 전임 문재인정부와의 차별화된 국정기조와 주요 성과를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그동안 국민 여러분의 응원도 있고, 따끔한 질책도 있었다저부터 앞으로 더욱 분골쇄신하겠다고 스스로를 낮췄다.

100일 회견 이후 희망적 지표도 나왔다. 지방선거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던 지지율이 바닥을 찍고 소폭 반등한 것이다. 한국갤럽의 83주차 여론조사(응답률 11.2%, 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8%로 나타났다. 전주 대비 3%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30%대 진입을 목전에 뒀다. 여야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민을 제대로 섬기겠다는 최고지도자의 의지 표명으로 정말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낯부끄러운 자화자찬에 그쳤다고 융단폭격을 가했다.

지지율·인적쇄신등 매세운 질문공세한일관계 파격해법

한국갤럽이 지난 8월 16~18일 윤석열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긍정'평가는 28%, '부정' 평가는 64%였다. '긍정'은 전주 대비 3%포인트 상승했고 '부정'은 2%p 하락했다. 2022.08.19 뉴시스
한국갤럽이 지난 8월 16~18일 윤석열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긍정'평가는 28%, '부정' 평가는 64%였다. '긍정'은 전주 대비 3%포인트 상승했고 '부정'은 2%p 하락했다. 2022.08.19 뉴시스

여야의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100일 기자회견은 세부적으로 들여다볼 대목이 많았다. 대통령실 출입기자 120여명이 참석한 각본없는 질의응답내용이었다. 사전에 주제와 질문자가 정해지지 않은 탓에 기자들의 치열한 눈치싸움도 벌어졌다. 12개의 질문이 쏟아지면서 40분으로 예정됐던 기자회견은 총 54분으로 늘었다.

윤 대통령은 매서운 질문공세에 시달렸다. 첫 질문은 지지율 하락에 대한 원인 분석이었다. 윤 대통령은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드는 것이 중요하다조직과 정책 등 과제가 작동되고 구현되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소통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면밀하게 짚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과거 도어스테핑 당시 지지율 하락과 관련해 신경쓰지 않는다며 다소 고압적인 태도와 정반대였다.

인적쇄신에는 신중함을 유지했다. 윤 대통령은 국면전환이라든가 지지율 반등이라고 하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하면서도 벌써 시작을 했고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짚어보고 있다고 밝혔다. 정국반전용 인적쇄신에는 선을 그었지만 인적쇄신 가능성 자체는 열어둔 발언이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틀 후에 현실화됐다. 정책기획수석 신설과 홍보수석 교체 등 기존 대통령실 조직을 현행 25수석 체제에서 26수석 체제로 확대 개편한 것이다. 초대 정책기획수석에는 이관섭 전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홍보수석에는 김은혜 전 의원이 사실상 내정됐다. 대선공약인 대통령실 슬림화 취지에는 다소 어긋나지만 정책 및 소통 분야에서 혼선방지를 위해 컨트롤타워 기능을 재조정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최대 치적 중 하나지만 폐지 요구도 거셌던 도어스테핑은 유지 의지를 확고히 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 수행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국민에게 날 선 비판, 다양한 지적을 받아야 한다미흡한 게 있어도 계속되는 과정에서 국민이 이해하고 미흡한 점들은 개선돼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준석 갈등설 침묵, 담대한 구상 제안 거절

반면 윤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든 질문도 쏟아졌다. 이른바 내부총질 대표문자 공개 파문 이후 불거진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설이 그것이다. 정면돌파 이야기도 나왔지만 윤 대통령은 노련하게 질문을 우회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민생 안정과 국민 안전에 매진하다 보니 다른 정치인들이 어떠한 정치적 발언을 했는지 제대로 챙길 기회가 없었다지금까지 다른 정치인들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어떤 논평이나 제 입장을 표시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여권 내홍과 관련해 최대한 답변을 절제한 것이다. 다만 후폭풍은 거셌다. 비대위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이라는 초강수를 둔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침묵에도 연일 융단폭격을 쏟아냈다. 이 전 대표는 18대 총선 당시 친박학살 공천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워딩을 인용해 국민도 속은 것 같고 저도 속은 것 같다고 윤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아울러 차기 전대와 관련, “내년 6월에 치러야 한다. 적임자가 없으면 나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전향적 답변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만 해도 대북 선제타격론이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를 언급하면서 대북강경론이 강조했지만 이날은 달랐다. 특히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언급한 이른바 담대한 구상의 세부적 계획을 설명하면서 원론적이지만 남북정상간 대화 필요성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무리한, 힘에 의한 현상 변화는 전혀 원치 않는다북한과의 대화는 필요하다. 다만 남북 정상 간 대화나 또 주요 실무자들의 대화와 협상이 정치적인 쇼가 되어서는 안 되고 실질적인 한반도 동북아의 평화 정착에 유익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 문재인정부 시절처럼 북한의 고압적인 태도이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아울러 힘에 의한 현상 변화를 원치 않는다는 점은 북한 수뇌부가 가장 우려하는 대북 흡수통일이나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무력사용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비췄다. 윤 대통령의 진정성에도 북한의 반응은 상식 이하였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19윤석열이라는 인간 자체가 싫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면서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과 관련, “어리석음의 극치다.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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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100일 회견 중 최대 포인트 중 하나는 강제징용으로 꼬여버린 한일관계 해법이었다. 윤 대통령은 강제징용은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왔고 그 판결의 채권자들이 법에 따른 보상을 받게 돼 있다그 판결을 집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 문제의 충돌 없이 채권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지금 깊이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대위변제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대위변제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한국 정부 또는 기업이 대신 배상하면서도 일본 정부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절충적 접근법이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이에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장기적으로 대일 구상권을 가져가자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야당과 피해자 측을 진정성 있게 설득한다면 도울 것이라고 찬성했다.

갈길 간다노동개혁 강조김건희 리스크 여전

경제분야 질문 중 최대 관심사는 노동개혁이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장기 파업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법과 원칙론을 강조하면서 평화적으로 사태를 풀었다. 윤 대통령은 이와 관련, “법과 원칙이라고 하는 것은 노사를 불문하고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원칙이 중요하다법에 위반되는 일이 발생했다고 즉각적인 공권력 투입으로 상황을 진압하는 것보다도 일단 대화와 타협을 할 시간을 좀 주고, 그래도 안 된다고 할 때는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적 임금구조 해결에 대한 의지도 내비쳤다. 윤 대통령은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 같은 경우 이들의 임금이나 노동에 대한 보상이 과연 정당한지와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대안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지금 노동법 체계가 2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하는 법체계라면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산업구조하에서는 여기에 적용될 노동법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사민당이 노동개혁을 하다가 정권을 17년 놓쳤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 경제와 역사에 매우 의미 있는 개혁을 완수했다교육개혁, 노동개혁, 연금개혁이라고 하는 3대 개혁은 중장기 국가 개혁이다.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가 초당적·초정파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100일 기자회견 중 가장 아쉬운 대목은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리스크를 털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일 만큼 여론이 좋지 못하다. 적어도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임명을 윤 대통령이 해법으로 제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야당은 전면전을 선언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 이전은 물론 관저 공사 수주 특혜·사적 채용 의혹 등에 관한 국정조사를 추진 중이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특히 관저공사 특혜 논란과 관련, “누가 봐도 김건희 여사가 이권에 개입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취임 초 지지율 20%대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에 내몰린 윤석열 대통령은 향후 국정운영의 교훈 차원에서 아주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다면서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 속으로를 외치며 초심을 강조한 것은 냉정하고도 정확한 상황인식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대통령실의 과감한 개편과 쇄신 김건희·이준석 리스크 해소 노동·교육·연금개혁 등 중장기 국정과제의 초당적 추진 등 3대 과제를 신속히 실천한다면 정국반등의 계기는 의외로 빨리 마련될 것이라면서 윤 대통령이 그동안의 일방통행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낮은 자세를 강조한 만큼 향후 관건은 얼마만큼 이를 실천해 내느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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