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사람 살려!”
소미가 손바닥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밀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말소리는 네모난 쇠 상자에 갇힌 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소미는 두 손 바닥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8층을 오르고 있었다. 평생에 이렇게 느린 엘리베이터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소미는 입술이 파랗게 질려 더 이상 거울을 볼 수가 없었다.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엘리베이터 문을 두들기기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소미가 앉은 채로 문 밖을 내다 보았을 때 거기엔 앞집에 사는 봄이 엄마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앞집 색씨 아냐. 이게 웬 일이우? 어디가 아픈 모양이로구먼. 그러게 홀몸 아닌 사람은 조심해야지...”
봄이 엄마가 재빨리 소미를 일으켜 세웠다. 소미가 임신 다섯 달 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기, 저기...”

소미는 떨리는 손으로 엘리베이터 속의 거울을 가리켰다.
“거울? 거기 아무것도 없는데...”
소미는 그 말을 들은 뒤에야 거울을 쳐다보았다. 정말 거기엔 핼쑥한 자신의 얼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양이 어디로 갔지요?”

소미가 봄이 엄마를 보고 말했다. 봄이 엄마는 소미의 눈동자가 풀어진 것을 보고 몹시 아프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고양이는 무슨 고양이예요? 병원에 같이 갈까요?”
“아뇨. 괜찮아요. 좀 어지러워서...”

봄이 엄마는 웃어 보이고 집으로 들어갔다. 소미는 떨리는 가슴으로 전화기를 들고 박윤화를 찾았다. 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찰칵하고 들렸다.
“야아오옹!”
그러나 수화기에서는 뜻밖에도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소리가 귀청을 찢는 것 같았다.
“어마!”
소미가 전화기를 팽개치며 쓰러졌다. 이 날 부터 악몽 같은 소미의 나날이 계속 되었다.

소미는 고양이를 버리고 온 날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다. 이튿날 충혈 되어 벌겋게 부어 오른 것 같은 눈으로 밖에 나갔다. 고양이를 버리고 온 한강변에 꼭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강변으로 내려가는 아스팔트에 내려섰을 때 그녀는 또 한 번 비명을 질렀다.
“으악!”

아스팔트 위에는 고양이 한마리가 내장이 터진 채 차에 치어 죽은 시체로 나뒹굴고 있었다. 죽은 고양이는 파란 눈을 똑똑히 뜨고 소미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기가 버린 루미가 틀림없다고 생각 되었다.

소미는 허겁지겁 자동차를 되돌려 집으로 달려 왔다.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려 정신을 가눌 수가 없었다. 뱃속의 아기도 무서워 떠는 것 같았다.
소미의 악몽은 계속 되었다. 자다가 가위눌려 깨는 수가 많았다. 눈을 뜨면 환하게 불이 켜진 베란다에 그 무서운 고양이 얼굴이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같은 환상을 느꼈다. 때로는 고양이의 날카롭고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기도 했다.        
      
“당신 요즘 무슨 고민이 있어?”
이튿날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얼굴이 핼쑥해진 아내 서소미를 보고 남편 홍일식이 걱정을 했다.

“여보 우리 이사 가요. 이 집에 살다가는 우리 아기 유산 하겠어요?”
“아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고양이 때문에 못살겠어요. ”
소미가 정말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고양이? 윤화씨가 전번에 주었다는 그 고양이 말이야?”
“녜”

“그 고양이 도로 가져다 주었잖아.”
“그게 아녜요...”
“그게 아니라니...”
밥숟가락을 내려놓은 남편이 소미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소미는 혼자만의 비밀로 하고 있던 고양이 루미의 영혼 이야기를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럼 박윤화씨가 당신을 괴롭히려고 그런 고양이를 주었단 말이야? 당신 요즘 뱃속 우리 2세 때문에 너무 신경 쓰는 것 아냐? 장 박사한테 한번 가보지 그래. 옛날 애인이니까 잘 봐 줄거야.”
“뭐라구요? 갑자기 웬 장박사예요?”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