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문화의 달이다. 문화예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정한 달이다. 어느 시대나 ‘문화 르네상스’는 통치자의 문화적 관심과 역량이 있는 시대에 있었다.

조선의 문화융성을 이끌었던 왕을 꼽는다면 단연 세종과 정조일 것이다. 서울 청계천 벽화로 재현되어 있는 정조의 ‘화성행차 그림’은 표현기법이나 완성도에서 뛰어난 수준을 자랑한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 만든 기록화와 비교해 볼 때도 손색이 없다.

지금 우리 문화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다. 처음은 음악, 드라마, 영화 등으로 시작하였으나, 현재는 웹툰, 패션, 뷰티, 한식, 한복, 한국어 등 우리 문화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문화는 국력이며, 문화 앞엔 적(敵)이 없다. 문화 전파가 남북관계의 해법이 될 수 있으며, K-컬처는 곧 세계무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조국이 처한 암울한 상황에서도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문화정책의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우리 역사 속 인물 중에는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인물이 많다. 그 중에서 불가의 원효와 유가의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특별하다 할 수 있다. 김정희는 문사철(文,史,哲)과 시서화(詩,書,畵)를 겸비한 동양의 지성이다.

1786년(정조 10) 병조판서 김노경(金魯敬)과 기계 유씨(杞溪兪氏) 사이 맏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향은 예산,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완당(阮堂)이다.

추사는 북학파의 대가 박제가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24세(1819) 때에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 그해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에 가서 옹방강(翁方綱)·완원(阮元) 같은 거유(巨儒)들과 경학·금석문·서법에 대해 교유했다.

추사의 예술은 시·서·화 일치 사상에 입각한 청나라 고증학을 바탕에 깔고 있고,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글을 연구하는 금석학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1816년에는 북한산 비봉에 있는 석비가 무학대사가 세운 것이 아니라 ‘진흥왕 순수비(巡狩碑)’라는 것을 밝혔다.

추사는 자신의 인생을 “생애일편청산 청명재궁(生涯一片靑山 淸明在窮)”이라 표현했다. 자신을 ‘푸른 산’에 비유하고, ‘궁했으므로 맑고 밝았다’고 했다. 그의 학문과 예술 그리고 삶을 통해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지혜와 참 선비의 정신을 헤아려 볼 수 있다. ‘

추사의 생애는 12년 유배의 고난으로 점철되었지만, 고단한 삶의 역경을 빛나는 예술혼으로 승화시켜 “추사의 문하에는 3,000의 선비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추사는 제자들에게 글과 그림에서 ‘문자향 서권기(文子香 書卷氣)’와 ‘입고출신(入古出新)’을 강조했다. 독서를 통해 문자의 향기와 책의 기운이 나타나야 하며, 옛것으로 들어가 새것으로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추사의 철학은 ‘학예일치(學藝一致)’, 즉 학문과 예술의 일치에 있다. 이러한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 우리나라 최고의 문인화로 꼽히는 ‘세한도(歲寒圖)’이다.

추사를 가리켜 청의 유학자들은 ‘해동제일통유(海東第一通儒)’라고 칭찬하였으며, 일본의 철학자 후지쓰카 지카시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모토로 한 청나라 고증학 연구의 제일인자”로 극찬했다.

흥선대원군은 추사의 이종사촌인 남연군의 아들이다. 1853년(철종 4) 정월, 추사는 33세의 조카 이하응에게 난초화의 요령을 이렇게 가르쳤다. “(난을 치는 것은) 한낱 작은 기예에 지나지 않소. 그러나 전력을 기울여 공부한다는 점에서 성인(聖人)의 격물치지(格物致知) 공부와 다를 것이 없소. (…)”

실사구시와 문인 화풍을 열었으며, 불멸의 추사체(秋史體)를 이룬 민족문화의 거성(巨星) 추사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創新法古始終符(창신법고시종부) 옛 법을 새로 나게 하는 게 시종일관 들어맞았고

進退朝廷似大蘇(진퇴조정사대소) 조정에 들고 귀향 간 것은 대소(소동파)와 같았네

十二流刑新字體(십이유형신자체) 12년의 귀양생활에 신자체(추사체)를 만들었고

八年安置歲寒圖(팔년안치세한도) 8년 위리안치 기간 동안 세한도를 그렸네

及門負笈三千士(급문부급삼천사) 책 상자 걸머지는 문하생은 삼천 선비에 달했고

傳道流行數萬儒(전도유행수만유) 도를 전해 유행시켜 수만 유학자의 사표가 되었네

文質彬彬華夏動(문질빈빈화하동) 문체의 아름다움은 훌륭해 중국을 움직였고

海東第一考證殊(해동제일고증수) 해동 제일의 고증학에 뛰어난 대가였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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