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때아닌 친일(親日) 논란으로 여야 정치권이 시끄럽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친일 국방공세에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이 강력 반발하면서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조선 망국론발언을 둘러싼 추가 공방까지 가열되면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정진석 위원장의 발언을 둘러싼 비판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이슈 선점에 성공한 민주당은 이른바 닥공(닥치고 공격) 모드로 태세를 전환하면서 여권을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 시절 조국 전 장관의 죽창가 선동에 이어 또다시 친일선동에 나섰다며 성토를 이어가고 있다. ‘친일(親日)’이라는 불편하고도 낯선 이슈를 둘러싼 여야간 역사전쟁의 속내를 짚어봤다.

서울겨레하나 회원들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독도 인근 해상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을 규탄하고 있다. 2022.09.30. 뉴시스
서울겨레하나 회원들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독도 인근 해상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을 규탄하고 있다. 2022.09.30. 뉴시스

- 위협 맞선 한미일 합동훈련 놓고 여야 친일프레임 공방
- 이재명 vs 정진석 난타전에 조선망국론까지 추가 논란 가열
- 여야 역사전쟁 속내는 지지층 결집·국면전환·정국주도권 장악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친일이슈를 둘러싼 여야의 프레임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를 코너로 몰면서 이번 기회에 정국주도권을 확실하게 쥐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경제위기와 북한의 도발이라는 쌍끌이 악재 속에서 정국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다. 여야 모두 물러설 수 없는 게임이다. 정치적 득실을 따져봐도 나쁘지 않다. 친일 공방은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슈인 만큼 양측 모두 지지층 결집에 유리하다. 역대 정부에서도 여야간 친일 프레임 논란은 끊이지 않다.

이재명 극단적 친일국방”vs정진석 노무현, 친일 대통령이냐

여야의 친일공방 단초는 한미일 동해 합동훈련이었다. 최근 한미 해군은 물론 일본 해상자위대와 함께 독도 인근 동해상에서 5년 만에 한미일 3국 연합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했다. 이는 북한의 지속되는 도발과 위협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안규백 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하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한미일 합동훈련은 20174월 이후 처음인 데다 5년 전과 달리 훈련 장소가 제주 남방의 공해상이 아닌 독도와 멀지 않은 공해상이라는 점이 논란에 불을 붙였다. 당장 여야 대표가 일본의 참여를 놓고 거친 설전을 주고받았다. 대선 이후 정치지형의 팬덤화와 극단화를 고려할 때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발끈했다. 이 대표는 일본을 끌어들여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하면 일본 자위대를 정식군대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극단적 친일 행위로 대일 굴욕외교에 이은 극단적 친일 국방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께서 전에 자위대가 유사시 한반도에 들어올 수 있지만이라고 말한 것이 현실화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라며 외교 참사에 이은 국방 참사라고 꼬집었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군사대국화를 꿈꾸는 일본을 오히려 도와준다는 비판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장동·백현동 특혜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성남FC특혜의혹 등 각종 사법리스크로 수세에 몰려있는 이 대표가 지지층 결집과 국면전환이라는 쌍끌이 효과를 노리고 의도적인 도발을 감행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민의힘은 어불성설이라고 반격했다. 이재명 대표가 본인의 사법리스크를 감추기 위한 물타기를 위해 죽창가 시즌2’에 해당하는 정치적 선동에 나섰다는 게 골자다. ‘죽창가는 구한말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노래로 문재인정부 시절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조국 전 법무장관이 페이스북에 소개하면서 반일여론전의 주요 매개체가 됐다.

정진석 위원장은 이재명 대표의 비판에 강력 반발했다. 정 위원장은 아무 데나 친일 갖다 붙이면 득점이 되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마치 죽창 들고 일본 자위대 쳐부수러 갈 기세라고 꼬집었다. 정 위원장은 특히 진보정권 시절인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절의 사례로 소환했다. 정 위원장은 한일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고 일본에 축구 경기 보러 간 김대중 대통령이 토착 왜구냐. 일본 자위대와 해상훈련하고 교류하도록 허락한 노무현 대통령은 친일 대통령이냐고 반박했다. 유력 정치인들도 이재명 대표 비판에 가세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한미일 훈련에 대해 친일 국방을 들고 나왔는데 세력 결집용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국방의 자도 모르는 무식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여야간 논란 확산에 대통령실도 자제를 요청했다. 대통령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말이 아닌 현실의 문제라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엄중한 안보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제대로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는 핵위협에 나선 북한의 지속되는 도발에 따른 한반도 리스크 고조뿐만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신냉전 고착화와 거세지는 중국·대만의 갈등 등 불안전한 동북아 안보지형을 포괄적으로 고려할 때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은 필수적이라는 논리다. 윤석열 대통령도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한미동맹은 물론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을 더 강화해 나가겠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공방 2라운드 조선 왜 망했나정진석 발언 대충돌

오영환(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과 전용기 원내대표 비서실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친일 발언'에 대한 징계안을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2022.10.13. 뉴시스
오영환(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과 전용기 원내대표 비서실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친일 발언'에 대한 징계안을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2022.10.13. 뉴시스

여야간 친일공방은 정진석 위원장의 조선망국론발언으로 불씨가 더 커졌다. 정 위원장이 한미일 합동훈련을 둘러싼 민주당과의 논쟁 과정에서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페이스북에서 적은 글이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사회적으로 논란이 확산되면서 친일공방은 사실상 2라운드도 접어들었다.

민주당은 이완용·조선총독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동원하며 융단폭격의 공세에 나섰다. 민주당은 정 위원장의 발언을 역대급 망언이라고 규정했다. 민주당 국방위원들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는 전형적이 친일 사관이라고 꼬집었다. 국방위 야당 간사인 김병주 의원은 이완용 같은 매국노가 얘기했던 논리가 여당의 당 대표 입에서 나왔다고 한탄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정 위원장은 일본의 여당 대표냐, 조선 총독이냐고 비판에 가세했다.

민주당은 더 나아가 정 위원장의 발언과 관련 국회에 징계안을 제출했다. 민주당은 징계안에서 국회의원 정진석은 대한독립을 위해서 일제에 항거하다 희생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훼손하고,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명시한 헌법적 가치와 정신을 정면에서 거스르는 반헌법적 망언을 했다반민족적 망언을 하고서도 국민에게 사과와 반성은커녕 자기주장을 고집하고 있어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비판은 여권 내부에서도 비윤계를 중심으로 터져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은 왜 일어났나. 이순신, 안중근, 윤동주는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쳤나라고 반문하면서 당장 이 망언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고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웅 의원 또한 전형적인 가해자 논리라면서 고구려도 내분이 있었는데 그럼 당나라의 침략으로 망한 것이 아닌가요?”라고 꼬집었다. 김용태 전 최고위원 역시 아무리 조선왕조 말기에 내부가 썩어 곪아 터졌다 해도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강제로 침탈한 것은 그 어떤 논리로도 옹호될 수 없는 역사적 죄악이라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 비판에 논평의 본질을 왜곡하고 호도하면 안 된다고 반발했다. 정 위원장은 논란의 발언과 관련, “조선이라는 국가공동체가 중병에 들었고 힘이 없어 망국의 설움을 맛본 것이라는 얘기 했다고 식민사관을 가진 사람이라 공격한다친일 프레임 씌우겠다고 난리다. 기가 막힌다고 울분을 토했다. 특히 이재명의 일본군 한국 주둔설은 문재인의 김정은 비핵화 약속론에 이어 대한민국의 안보를 망치는 양대 망언이자 거짓말이라고 몰아세웠다.

위안부·수출규제·지소미아역대정부 친일공방

이야기 나누는 정진석 위원장과 이재명 대표, 뉴시스
이야기 나누는 정진석 위원장과 이재명 대표, 뉴시스

정치권의 친일공방은 이번만이 아니다. 역대 정부에서도 잊을만 하면 되풀이됐다. 문재인정부 시절의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를 둘러싼 논란, 박근혜정부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후폭풍, 이명박정부 시절 한일군사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체결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발언이나 MB정부 말기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해방 이후 현직 대통령 최초로 독도를 전격 방문한 점도 국내 정치는 물론 한일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때마다 우리 사회는 여론이 양분되면서 극심한 진통을 앓았다. 갈등을 중재해야 할 여야 정치권은 오히려 여론전을 선도했다. 한일 양국이 불행한 과거사 문제의 해법을 찾지 못한 가운데 반일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것만큼 손쉬운 수단은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득실을 따져봐도 여야 모두 손해볼 일이 없다고 판단했다. 가장 큰 효과는 지지층 결집이었다. 또 불리한 국면에서 위기돌파를 위한 국면전환용 카드로도 적절했다. 마지막으로 광범위하게 여론이 호응할 경우에는 정국주도권의 장악도 가능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정치인을 친일파로 낙인찍기도 했다.

문제는 현 단계가 여야가 친일공방으로 시간을 허비하며 한가하게 편가르기에 나설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리당략이 아닌 초당적 협력이 필수적인 시기다. 실제 대한민국은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로 상징되는 3() 위기는 한국경제의 비상등이다. 우리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수출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물론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내수마저 붕괴 일보 직전이다. 게다가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의 몰락은 물론 가계대출 부실 문제 또한 금융시장의 뇌관으로 작용하다. 나라 밖으로 시선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외교안보 상황은 날이 갈수록 엄중해지고 있다. 미중패권 갈등의 격화 속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가 된지 오래다.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라 신냉전 질서가 고착화되는 가운데 북한의 핵위협은 날로 커지고 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20대 대선 이후 날로 가팔라지는 정치지형의 양극화 속에서 여야의 극단적인 팬덤정치만이 난무하고 있다대내외적인 위기 극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철지난 친일 공방이 온나라를 뒤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여야 모두 지지층을 의식해 잃을 게 없다며 전략으로 나선다면 이는 대단히 근시안적 사고다. 오히려 22대 총선에서 역풍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외교안보사안은 초당적 대처라는 정치권의 불문율대로 여야 모두 힘을 합쳐 국익 중심의 전략적 사고로 보다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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