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대주의, 당파성 등 조선 사회의 단점이 지나치게 부각된 점이 있다. 선비정신은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지만, 조선이 역동성을 잃어 쇠망에 이른 원인 중 하나가 남녀·적서·반상차별 등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고려시대에 비교적 자유스럽던 여성들의 삶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남존여비, 칠거지악, 여필종부 등 성리학의 이념체계 안에서 점차 위축되었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은 유교 신분질서에서 극히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집안에서 길쌈이나 육아, 부모 봉양을 맡아 순종의 부덕(婦德)으로 살아야 했다.

훈민정음이 나온 뒤로 한문은 남자의 글, 언문은 여자의 글로 나뉘는 현상이 뚜렷해졌지만, 매우 예외적인 현상으로 신사임당, 장계향(이현일의 어머니), 황진이, 이옥봉, 이매창 등은 자기 이름으로 한시를 쓰고 세상에 알렸다.

이들과 함께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은 여성의 처지를 천재적인 시작(詩作)으로 승화시켜 사회 모순의 부당함을 노래했다. 요즘 우리나라가 K-문화강국이 된 것도 조선 여인의 ‘문화 유전인자’ 덕이 아닌가 생각한다.

허난설헌은 조선 중기 천재 여류시인이다.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이다. 동인의 영수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삼남 삼녀 중 셋째 딸로 강릉에서 태어났다.

시문이 뛰어났던 중국의 삼조(三曹, 조조·조비·조식), 삼소(三蘇, 소순·소식·소철)처럼, 아버지 허엽, 오빠 허성·허봉, 동생 허균과 난설헌은 ‘허씨5문장가’로 불렸다. 조선의 대문호 허씨 가문은 5천여 수의 시를 남겼다.

난설헌은 8세에 이미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신동으로 불렸다. 둘째 오빠 허봉의 친구이자 당대 최고 시인 이달(李達)에게서 한시를 배웠다. 난설헌은 15세 때 김성립과 결혼하였으나 그리 원만하지 못하였다. 연이어 딸과 아들을 모두 잃고 뱃속의 태아를 유산하는 불행을 당했다. 설상가상 친정의 풍비박산으로 난설헌은 풍우(風雨)에 꺾여버린 꽃봉오리가 되었다.

어느 날 난설헌은 시로서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 “부용삼구타(芙蓉三九朶, 연꽃 스물일곱 송이가 늘어져)/홍타월상한(紅墮月霜寒, 차가운 달빛 서리에 붉게 떨어지네)”

‘삼구(三九)’는 ‘3×9=27’로써 죽음을 상징하고, ‘홍타(紅墮)’는 ‘붉게 떨어지다’는 의미로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상징하는 시어이다. 허균은 “우리 누님은 스물일곱에 세상을 떠났다”라면서 “그래서 ‘삼구홍타’라는 말이 바로 증험되었다”라고 덧붙였다.

난설헌은 3가지 한(恨)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이 넓은 세상에 하필이면 왜 조선에서 태어났을까?,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왜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을까?”였다. 닫힌 시대에 213수의 한시를 남긴 채 불꽃같은 짧은 영혼을 불사른 한 여인의 너무나 비극적인 절규였다.

‘사람은 가도 문장은 남는다.’고 했다. 허균은 누이의 시를 묶어 조선 최초의 여성시집인 <난설헌집>을 간행하여 서애 유성룡으로부터, “난설헌의 몇몇 작품은 중국 고대의 문장가를 능가한다. 어떻게 해서 허씨 집안에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라는 발문(跋文)을 받았다.

<난설헌집>은 주지번(朱之蕃)에 의해 중국에서 출간되어 “낙양의 종이값을 올려놓았다”할만큼 동양 삼국의 최고 여류시인으로 평가 받았다. 숙종 37년(1711)에는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운명론적 삶에 순응하기보다는 생명과도 같은 시 작품들을 절차탁마하며 시대를 앞서간 인물. 조선 최초의 ‘여성 한류 스타’였던 난설헌 선생의 일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才媛思慕楚妃樊(재원사모초비번) 난설헌은 초왕 왕비(번희)를 사모해 이름 지었고

髫齔成詩驚動村(초츤성시경동촌) 어린아이(8살)에 시를 지어 세상을 놀라게 했네

海內名聲傳上下(해내명성전상하) 나라 안에 명성이 자자하여 위아래에 퍼졌고

洛陽紙價貴乾坤(낙양지가귀건곤) 낙양의 종이값이 올라 중국 천지에 유명해 졌네

門衰慘慽時時發(문쇠참척시시발) 가문이 쇠하고 자식 여읜 게 뛰어난 시의 발현이고

祚薄悲歌切切源(조박비가절절원) 박한 복이 슬픈 노래로 승화시킨 절절한 근원이네

身歿留章三國誦(신몰유장삼국송) 몸은 죽어도 문장은 남아 한·중·일에서 애송되었고

芙蓉哀史慰孤魂(부용애사위고혼) 연꽃(난설헌)의 슬픈 사연 외로운 혼 위로하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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