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3.8 전당대회 승리 이후 기대했던 컨벤션 효과는 전혀 없다. 오히려 크고작은 악재가 지속되면서 상황은 최악이다. 윤석열정부의 성공적인 국정운영 뒷받침과 내년 총선승리를 내걸고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대략난감의 상황이다. 위기의 징후는 정당 지지율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대 직전만 해도 더불어민주당과의 경쟁에서 앞섰지만 최근 지지율은 줄곧 하락세다. 특히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각종 사법리스크로 극심한 내분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더욱 뼈아픈 상황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사실상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4선 중진에 울산광역시장을 지낸 관록의 정치인인 김 대표가 전대 과정에서 크고작은 위기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섰던 것처럼 난국 타개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집중 분석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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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Z세대 반발에 중도층 이탈, 내년 총선 비상등 깜빡
- 강제징용해법, 민주 죽창가 비판하면서 진정성 강조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김기현 대표가 직면한 위기는 한둘이 아니다. 69시간 근무제 개편을 둘러싼 정책혼선은 MZ세대의 대거 반발을 불러왔다. 5.18 민주화운동의 헌법전문 수록 반대 해프닝은 외연확장보다는 보수 강경 이미지를 키웠다. 아울러 강제징용 해법과 한일정상회담 역풍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여론의 심판대에 오른 김 대표는 지지율 반등과 위기 탈출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뛰고 있다.

69시간 근무제 혼선아군 MZ 적군으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연일 하락세다.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등 주요 여론조사기관의 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갤럽이 지난 24일 공개한 34주차 정기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에서, 민주당은 2% 포인트 상승한 35%를 기록했지만 국민의힘은 34%로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3.8 전당대회 직전 31주 차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39%를 기록하면서 민주당과의 격차를 10% 포인트까지 벌렸다는 점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전국 단위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20·30세대 지지율에서 민주당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20대 지지율은 민주당 25%, 국민의힘 22%, 30대 지지율은 민주당 40%, 국민의힘 25%로 각각 나타났다. 또 전국민심의 풍향계인 수도권 민심에서도 민주당이 우세했다. 서울은 민주당 35%, 국민의힘 34%를 각각 기록했다. 인천·경기지역은 민주당 38%, 국민의힘 29%로 각각 나타났다. 여야 핵심 지지층인 보수·진보층을 제외한 중도층의 경우 민주당 36%, 국민의힘 22%였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지지율 추이는 비슷하다. 33주차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0%p)에서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은 37%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114주차 조사 36.8% 이후 최저치로, 46.4%를 얻은 민주당과의 격차도 오차범위 밖인 9.4%포인트였다.

지지율 반등의 계기를 잡지 못하면 내년 총선이 위험하다. 관건은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표심과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MZ세대의 표심이다. 수도권과 MZ로 상징되는 중도표심을 뒤흔든 것은 주69시간 근무제 개편의 혼선 탓이다. 정부는 건강권·휴식권·유연근무 확산이 주69시간 근무제 개편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지만 여론은 보상없는 장시간 근로가 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한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915시간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4번째로 OECD 평균보다 199시간이 많다.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많은 국가는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로 모두 중남미 국가들이다. MZ노조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정부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주요 외신 또한 주69시간이 가능한 일이냐며 한국의 장시간 근로를 과로사와 연결시키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국민의 삶과 휴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근로시간 개편이 졸속으로 발표된 것이다. 정책발표는 물론 추진과정 또한 혼선으로 점철됐다. 정부와 대통령실의 엇박자 속에서 이를 제대로 중재해야 할 당이 오히려 눈치보기 속에서 오락가락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때문에 지지율 하락세마저 위험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의 일등공신인 MZ세대가 아군에서 적군으로돌아선 셈이다. 김 대표는 이와 관련, “근로제 개편은 일할 때 몰아서 하고 쉴 때 확실히 쉬는 형태로 현실에 맞게 산업현장의 실제적 요구에 맞게 개편하려는 좋은 취지라면서도 “69시간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쓸데없는 논쟁에 들어간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는 고용노동부의 정책발표와 혼선에 대한 지적과 더불어 당이 보다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지 못한 반성으로 풀이된다.

MZ세대 고용노동시간 여론조사. 뉴시스
MZ세대 고용노동시간 여론조사. 뉴시스

총선승리 외연확장 시급되풀이되는 5.18 망언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망언 논란도 뼈아프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시 태영호 최고위원이 “4·3 사건은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규정한 데 이어 또다시 역사문제를 둘러싼 악재가 터진 셈이다. 당 안팎에서는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고 있다는 탄식이 쏟아진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관한 예배에 참석,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할 수 없다는 취지로 발언,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13일 예배영상에 따르면, 전 목사는 우리가 김기현 장로를 밀었는데 5·18 정신을 헌법에 넣겠다고 하는데 전라도 표가 나올 줄 아느냐고 묻자 김 최고위원은 그건 불가능하다. 저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 목사가 전라도에 대한 립서비스 아닌가라고 말했고 김 최고위원은 표 얻으려면 조상 묘도 판다는 게 정치인 아닌가고 화답했다.

집권 여당 지도부가 5.18과 관련한 극우적 시각을 공유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파문은 날로 확산돼갔다. 4선 중진인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은 당 윤리위원회에서 징계를 해서 즉각 처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여권 수뇌부의 비판이 쏟아진 가운데 대통령실마저 “5.18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여론의 반발에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공개 사과하면서 “5·18정신의 헌법전문 게재에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알려드린다고 수습에 나섰다. 다만 엎지러진 물이었다. 김 최고위원의 실언에 호남민심이 또 휘청였다.

사실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마무리된 사안이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대선후보 시절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을 약속했는데 당 지도부의 일원인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이 이를 정면으로 뒤집는 발언을 한 것은 의외다. 지난 202021대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당내 인사들의 잇단 5.18 망언에 무릎사과를 하면서 5.18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한 것과는 정반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외연확대가 시급한데 도로한국당 이미지만 강화한 셈이다. 더구나 호남민심의 악화는 단순히 호남만이 아니라 수도권 표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김 대표로서는 큰 부담을 지게 됐다.

김 대표는 전대 과정에서부터 야심차게 추진해온 서진정책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직면하자 현장을 찾았다. 김 대표는 지난 23일 전북 전주를 찾아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했다. 김 최고위원의 5.18 망언 파문을 의식한 듯 국민의힘이 그동안 보여왔던 호남에 대한 마음, 애정과 진심은 변함없다고 강조하면서 미래통합당 시절 당 지도부가 광주를 찾아 무릎 꿇고 참배했던 마음도, 윤석열 대통령 취임 첫 해 (소속 의원) 100여명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던 마음도 똑같은 마음이라고 파문 진화에 나섰다.

문제는 김 최고위원의 발언뿐만이 아니다.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 북한 개입 가능성을 지속 제기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이는 호남에서의 득표율 향상을 통한 전국정당화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다. 아울러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는 국민의힘을 건강한 보수정당이 아닌 극우적 보수정당의 이미지를 가중시키는 위험 요인이다.

강제징용·한일회담 후폭풍대국민설득 절실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광주 서구 치평동 광주시의회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정상회담 결과를 규탄하고 있다. 2023.03.21. 뉴시스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광주 서구 치평동 광주시의회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정상회담 결과를 규탄하고 있다. 2023.03.21. 뉴시스

김 대표가 직면한 최대 난제는 역시 강제징용과 한일정상회담 후폭풍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적 결단으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한 첫걸음은 뗐지만 일본측의 성의있는 화답 조치가 신속하게 나오지 않으면서 여론지형이 다소 불리한 상황이다. 태극기로 무장한 민주당은 내년 총선까지 친일 굴욕외교라는 프레임으로 비판 공세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김 대표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용산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춰 윤 대통령의 역사적 결단을 강조하면서 대국민설득을 통한 출구전략이 시급한 상황이다.

김 대표는 윤 대통령의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민주당을 맹비난했다. 우선 윤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에는 미래세대를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강제징용 해법을 방치하다가 갑자기 죽창가를 부르면서 반일선동에 나선 민주당의 이중 프레임을 비판하면서 여론설득에 나선 것이다. 김 대표는 일본은 싫든 좋든 우리의 주요 경제 파트너일 뿐만 아니라, 북한이 야기하는 안보위기 대응에서도 반드시 공조해야 하는 국가라면서 일본도 책임 있는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이에 상응하는 진지한 호응 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당의 친일굴욕 외교 공세에는 한일관계 정상화를 두고 민주당의 거짓 선동과 극언, 편 가르기가 도를 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대통령의 국익 행보에 일본의 하수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내지르고 있다국익과 안보까지 방탄의 도구로 사용하는 민주당이야말로 망국의 장본인고 비판했다.

3대 난제에 시달린 김 대표는 민생제일주의 기조로 위기탈출을 시도 중이다. 당 대표 취임 당시 오직 민생을 내걸었던 만큼 일 잘하는 유능한 집권 여당의 이미지로 지지율을 견인하겠다는 의지다. 민생특위를 출범시키며 광폭행보에 나선 김 대표는 청년층과 수도권 지역 민심을 얻기 위한 구체적 행보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1일 취임 후 첫 현장 행보로 서울 중구의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방문, 자금난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한 게 대표적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김기현 대표는 전대 초반부터 윤심을 장악, 용산 대통령실의 전폭적인 지원사격으로 당 대표에 올랐다. 이후 연대, 포용, 탕평이라는 연포탕기조를 내세웠지만 진흙탕 전대의 후유증은 여전하다당정관계에서 보다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용산 대통령실의 아바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위기탈출의 주도권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전대 승리 이후 초반 위기를 겪은 것은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내년 4월 총선까지는 긴 호흡의 로드맵으로 당 운영에 나서야 할 것이라면서 “MZ이탈, 5.18망언, 강제징용 역풍 등 3대 난제를 수습한 뒤 민생제일주의를 내세워 일정 부분 성과를 낸다면 김기현 대표 체제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포획된 민주당의 자중지란과 대비되면서 정국주도권을 되찾은 뒤 지지율 고공행진의 시동을 걸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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