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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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검사 출신 대통령 당선 이후 기업에 참여하는 법조인이 늘고 있다. 특히 법무 관련 부서가 아닌 사외이사로 법조인이 대거 등용되면서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된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역할론을 주목한다. 공교롭게도 해당 기업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거나 과거 총수 구속 등으로 홍역을 앓은 기업이 많다.

이에 이들 법조인이 기업을 감시할 사외이사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이들의 역할을 '외풍을 막는 바람막이'라는 지적도 많다.

- 오너리스크 해결 등 외풍 막는 바람막이 전략 우려도
- 정치, 시민단체 "검사 출신의 거수기 철저히 감시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대검 차장을 지낸 강남일·구본선 변호사가 각각 HL만도와 한화시스템의 사외이사로 선정됐다. 강남일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23기로 전 대전고검장을 지냈다. 그는 윤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 후보로도 거론됐던 인물이다.

구 변호사는 윤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대검찰청 차장검사,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내고 현재 구본선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있다. 구 변호사는 한진그룹 사외이사로도 활약 중이다.

- "尹 대통령 측근을 잡아라." 재계 특명

㈜한화는 이번 주총에서 전 서울남부지검장을 지낸 권익환 변호사를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으로 재선임했다. 그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과 서울 여의도고 동기동창이다. 현재 SK바이오사이언스 사외이사를 맡고 있으며,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다.

애경산업은 제38기 정기주주총회에서 박형명 법무법인 김장리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박 사외이사는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제15기를 수료했다. 이후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장,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지냈다.

박 사외이사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대통령 지지 선언을 한 바 있다. 그는 전직 대법관·법무부 장관 등 전·현직 법조인 334명과 윤 대통령이 공정과 상식으로 헌법정신에 입각한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들어갈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NH투자증권은 박민표 변호사의 사외이사 재선임 건을 통과시켰다. 박 변호사의 임기는 1년 더 연장됐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박 변호사는 과거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검찰청, 강력부장을 지낸 바 있는 '검찰 출신'이다.

박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 후배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법고시를 먼저 통과해 검찰에선 선배다.

NH투자증권 이사회는 박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한 사유로 "임기 동안 이사회 및 위원회 활동 참여를 통해 경영진의 경영 의사 결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고 회사의 발전 및 주주가치 제고에  할 것으로 판단돼 후보자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삼성SDS도 지난달 1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문무일 전 검찰총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그는 제42대 검찰총장 출신이다.

2021년 3월 LG전자 사외이사로 합류한 강수진(24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학과 동문에 사법연수원 1기수 후배로, 1997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함께 근무할 당시 운전을 못 하는 윤 대통령과 출퇴근 카풀을 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효성중공업은 지난달 16일 부산검찰청 차장검사, 국정원 2차장을 지낸 최윤수 전 차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마트는 이상호 전 대전지검장을, 광주신세계는 이건리 전 창원지검장, 오리온은 노승권 전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각각 사외이사로 추진하는 안건을 주총에 상정해 대부분 통과됐다.

검찰 출신 영입 움직임은 윤 대통령이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한 지난해 초부터 가속화됐다. 일례로 ㈜LG는 조성욱 전 대전고검장을 선임했고 ㈜두산에는 윤웅걸 전 전주지방검찰청(~2025년 3월)이, LS에는 정동민 전 서울서부지검장(~2024년 3월)이, HD현대에는 황윤성 전 춘천지검 검사장(~2024년 3월)이 각각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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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윤 대통령과 연관된 법조인 모시기에 혈안이라고 귀띔한다. 이들이 주로 찾는 인물은 특수 수사에 잔뼈가 굵은 특수통 검찰 출신 변호사다. 윤 대통령 대학(서울 법대)·사법고시(33회), 사법연수원(23기) 동기나 친분이 있는 검사 출신이라면 대환영이다. 윤 대통령 직속상관이었던 인물은 '영입 대상 0순위'다.

- 이사회 역할 수행 가능 여부 따져봐야

한편 사외이사제도의 근본 취지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재벌 총수와 대기업 경영자의 독단적 기업 운영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현실 속에서는 그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많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경영진과 최대 주주로부터 독립돼 회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전횡을 감시하도록 하는 것이 사외이사 역할이자 존재 이유다"라며 "그런 자리에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외이사가 대거 포진한다면 기업의 혁신도 어려워지지만, 정경유착의 징후로 기업과 정부에 대한 불신, 혐오만을 키울 뿐입니다. 압박이 있었든, 알아서 기었든 심각한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과 친한 검찰 출신들이 사외이사를 장악하게끔 하는 것은 결국 재계에 뒷배를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이거나, 정부에서 잘 봐달라는 거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그들만의 리그, 밀실 거래에 공정과 사회정의가 들어설 곳은 없다"며 "공정과 법치를 이야기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라면 나와 친한 검사를 더 많이 쓰도록 할 것이 아니라, 제도 도입 취지를 훼손하는 사외이사 선임에 분명히 제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30대 주요 그룹의 주요 상장사 180곳 중 신규 선임 사외이사 중 38.8%가 관료 출신이고, 그중 31.1%는 검찰 출신이다.

지난달 23일 '대선 1년, 검찰 공화국을 말하다-참여연대·민변 사법센터 토론회'에 참석해 토론자로 나선 김은지 시사IN 기자는 "검찰 중심주의적 행정이 향후 더더욱 문제가 될 것이고, 특히 검사 출신 사외이사 임명 등 경제 권력에 대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함께한 이관후 건국대 교수는 "현재 정부 요직에 임명된 검사들에 대해 단순히 검찰 출신임을 넘어 소위 특수부나 윤석열 대통령 등과 사적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핵심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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