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망국적인 편 가르기가 심화되고 있다. 이젠 국민 10명 중 4명은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식사· 술자리도 함께하기를 꺼린다. 정치권에서는 반대편을 정치적 ‘경쟁자’가 아니라 처단해야 할 ‘적’으로 증오한다. 한 나라 안에 두 개의 증오하는 적대 세력이 대치되어 있다. 내전(內戰) 상태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절망감도 고개 든다. 

하지만 적대적 분열과 편 가르기는 ‘탈(脫) 진실 시대(Post Truth)’에 나타나는 자유민주 국가들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한국만의 기현상은 아니다. 영국의 옥스퍼드사전은 매년 한 해를 대표하는 단어를 선정해 발표한다. 이 사전은 2016년의 대표적 단어로 ‘탈 진실 시대’를 꼽았다. ‘탈진실 시대’에선 객관적 진실보다는 개인적 신념과 편파적 감정이 여론형성을 지배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론조성을 지배하는 개인적 신념과 편파적 감정은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는 데서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

개인적 신념과 편파적 감정에 의해 왜곡된 여론은 영국의 유럽공동체(EU) 탈퇴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회 유혈 난입을 통해 드러났다. 한국에선 극단적인 여야 편 가르기로 표출되었다. 영국인들은 EU에서 탈퇴할 경우 경제적 손실과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는 부정적 측면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지 못한 채 개인적 신념과 편견으로 판단했다. 단지 독자적 주권행사와 난민 유입을 막고자 하는 감정적 판단에 지배돼 탈퇴를 결정했던 것이다. 미국의 폭도들은 역사상 최초로 의사당에 난입, 유혈난동을 벌여 5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합법적인 선거결과를 뒤집으려는 트럼프의 기만 선동을 이성적으로 판단치 못하고 감성적으로 쫓은 탓이었다.

  한국의 적대적 여야 대결과 편 가르기도 이성적 판단보다는 개인적 신념과 편파적 감정에 의해 빚어지는 현상이다. 한 가지 사례로 윤석열 대통령의 ‘청담동 밤샘 술자리’ 가짜 뉴스를 꼽을 수 있다. 청담동 술자리를 폭로한 당사자가 “다 거짓말”이었다고 실토했는데도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중 70%는 사실이라고 계속 우겼다. 이성적이며 합리적 판단을 벗어난 감정적 편파 양태는 종교계에서도 드러났다. 신부 두 명은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길에 나서자 그의 전용기가 추락하길 염원했다. 편향된 개인 신념과 감정이 객관적 진실을 위한 판단력을 마비시킨 탓이었다.  

한국의 편 가르기는 정치권의 적대적 여야 대결이 더욱 격화시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한다며 전 현직 대통령과 장· 차관들을 오랏줄로 묶었다. 그는 국민들을 좌· 우로 갈라 치기 했고 북한 김정은을 섬겼다. 여기에 보수우파 진영은 문재인을 ‘내부의 적’으로 간주했고 진보좌파 측은 보수우파를 괴멸해야 할 적으로 내쳤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개인 부정비리 혐의를 정치탄압이라고 견강부회,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다. 객관적 사실이 아닌 편향적 신념에 지배된 때문이었다.  

  원래 정치인을 신뢰하는 사람은 드물다. 프랑스의 주간지 ‘뉴엘옵세바퇴르’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장 유익하지 못한 직업으로 창녀와 국회의원이 꼽혔다. 그러나 한 국가의 정치 수준은 그 국가 국민의 정치의식을 반영한다는 데서 우리 정치인 또한 우리 국민 수준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저급한 편 가르기도 일반 국민의 낮은 정치의식에 기인한다. 정치인들을 비롯한 국민 모두는 폐쇄적 신념과 편파적 감정을 벗어나야 한다. 객관적 사실과 합리적 이성에 입각해 판단하는 냉철한 인식능력 함양이 요구된다. ‘탈진실 시대’에 망국적인 분열과 적대적 여야 편 가르기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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