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기우 언론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 1주년을 맞이해 새로운 국정기조와 맞지 않는 관료들에 대한 과감한 인사 조치를 지시했다. 이 가운데 공공기관장 거취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문재인 정부 출신 공공기관장 솎아내기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여당에서는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들과 윤석열 정부 간 불편한 동거를 끝내기 위해 각종 의혹들을 꺼내들며 사퇴압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시스
뉴시스

전국 347개 공공기관 임원 3064명중 60%  文 정권 임명 인사
- 윤 대통령, 정승일 한전 사장 이어 한상혁 면직안 재가 교체 속도전

윤석열 정부은 그동안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문재인 정권 출신 인사들과 불편한 동거를 이어왔다.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공공기관 소속 임원 중 63.4%가 문재인 정부 당시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3430일 기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 공시 임원 통계에 따르면 전국 347개 공공기관 임원 364명 가운데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원이 1944명으로 63.4%인 것으로 나타났다.

직책별로는 총 347명의 기관장 중 70.6%245명이 전임 정부 인사였다. 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는 75(21.6%)에 불과했다. 402명의 상임이사와 99명의 상임감사 중에서도 전임 정부 인사 비중은 각각 57.5%70.7%인 반면 현 정부 인사는 35.6%25.3%로 집계됐다.

특히 공공기관 중 공기업으로 분류되는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32곳의 기관장 중 24명이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였다.

공공기관 중 자산 규모가 2조 원 이상으로 가장 큰 시장형 공기업 13개의 기관장은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과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정용기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을 제외하곤 모두 전 정부 인사이거나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전의 5개 발전 자회사의 기관장 역시 모두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12일 사의를 밝혔지만 전 정부에서 초대 관세청장을 지낸 김영문 동서발전 사장을 비롯해 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남부발전 사장은 20214월 임명돼 2024년까지가 임기다.

특히 임기를 연장한 사례도 적잖다. 문재인 정부에서 연임된 건설근로공제회에선 민변 출신 전형배 비상임이사를 비롯해 강현수 국토연구원장과 변호사 출신인 고윤덕 환경보전협회 비상임이사 등도 연임됐다.

정체성 안맞는 인사 필요 없다인사 속도전

이런 환경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재인 정부 출신 공공기관장들을 솎아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59일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후 비공개 자리에서 “(새로운 국정 기조와 맞지 않은 관료가 있을 경우) 억지로 설득해서 데리고 갈 필요 없다고 했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 국정 기조를 확실히 밝혀온 만큼 이제부터는 관료 사회 안에서 이에 협조하지 않고 지시를 불이행하는 경우 단호하게 처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업무를 맡기면 역량을 발휘하도록 기회를 부여하면서 분위기 쇄신 차원의 인사와는 거리를 둬 왔던 것으로 알려진 윤 대통령 인사 철학과는 사뭇 다르다.

앞서 윤 대통령은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탈원전, 이념적 환경 정책에 매몰돼 새로운 국정 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stance)를 취한다면 과감하게 인사 조치를 하라고 말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전한 바 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실질적인 민생 성과를 내기 위해 정부·여당이 합심해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정부 출신 기관장들을 하나 둘씩 지워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전기요금 인상을 앞두고 사의를 표명한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의 사직서를 재가했다. 산업부 주요 보직과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을 거친 정 사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5월 한전 사장에 임명됐다.

한상혁방통위원장. 뉴시스
한상혁방통위원장. 뉴시스

윤 대통령은 또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면직안을 30일 재가했다. 한 위원장은 2020년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변경 과정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검찰에 기소됐다.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지휘·감독 책임과 의무를 위배해 3명이 구속 기소되는 초유의 사태를 발생시켰다본인이 직접 중대 범죄를 저질러 형사 소추되는 등 방통위원장으로서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러 면직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한 위원장은 1일 면직 처분 취소소송 및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했다. 한 위원장 측은 위법하고 위헌적인 처분이라며 방통위는 합의제 행정기관이며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공소를 제기했고 대통령은 공소가 제기됐다는 이유만으로 무죄추정의 원칙, 직업선택의 자유 등 헌법적 가치를 침해하면서 면직 처분을 했다고 했다.

선관위 자녀특혜 채용 노태악 위원장 사퇴 압박

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 대한 사퇴 여론도 불거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현직 고위직 간부 11명을 둘러싸고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실제 박찬진 선관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 신우용 제주 상임위원, 김세환 전 사무총장 등 4명의 자녀가 선관위에 채용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경남 선관위 간부와 퇴직한 세종시 선관위 상임위원도 자녀가 채용되는 과정에서 사적 이해관계 신고서를 접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여권에서는 노 위원장을 향한 책임론을 꺼내며 사퇴 압박에 나섰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외부인 사무총장이 들어온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선관위가 개혁될지 의문이라며 새 사무총장을 임명한 뒤 노 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원 전원이 일괄 사퇴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 위원장은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여권의 사퇴 요구에 대해선 일축했다.

국민의힘은 선관위를 대상으로 국정조사까지 추진하고 있어 노 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 전현희 권익위원장에 대해서도 사퇴압박을 가하고 있으나 오는 627일 임기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전 위원장의 경우 지난해 8월부터 근태 업무와 관련해 감사원의 유례없는 고강도 감사를 받았지만 뚜렷한 문제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윤석열 정부 들어 새롭게 임명된 김태규 권익위 부위원장이 전 위원장의 업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임기 마지막까지 불편한 관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종 칼끝 정연주 위원장 총선전 방송장악 의도

정연주 위원장, 뉴시스
정연주 위원장, 뉴시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 인사 솎아내기 최종 칼끝은 내년 7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정연주 방심위원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공영방송의 편파, 왜곡을 제기하며 정 위원장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미 국민의힘은 KBSMBC 등 공영방송의 편파왜곡을 지적하며 정 위원장에 대한 직간접적인 공세 수위를 높여나가고 있다. 국민의힘은 최근 KBS·MBC 라디오 패널 구성이 편향적이라며 방심위 심의를 신청했다.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은 “KBS, MBC, YTN 등 언론사들이 이념적으로 좌편향됐다. 이는 방심위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한 탓이라며 정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여당은 공영방송의 라디오 패널 구성이 편향적이라며 방심위에 심의를 신청하기도 했다.

여당의 공세에 야당은 총선에 앞서 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정부가 집권세력의 사적이익을 위해 권력남용을 심각하게 저지르고 있다노골적인 방송장악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민생경제가 파탄난 위급한 때에 정부는 국가 역량을 방송장악에 허비하고 있다정권의 부당한 언론탄압 방송장악 기도에 물러서지 않고 맞서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