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경감이 담뱃불을 붙이는 동안 강 형사가 물었다.
 “2시 20분쯤이었을 거예요. 회사를 떠난 게......”
“맞아요. 여기 도착한 게 3시니까요.”
이이사가 덧붙여 말했다.

“여기서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김박사는 곧 건너갔지요.”
“오렌지 주스라고요? 빈 병은 어디 있지요?”
“병이 아니라 캔으로 마셨어요. 우리 놀던 방에 다 있어요.”
형사가 곧 달려가 모두 수거를 했다.

“서울 사무실서 이사회를 할 때 드신 유자차는 누가 끓였어요?”
추 경감이 물었다.
“제 비서인 미스 구가 끓였어요. 우리가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요.”
변 사장이 굳이 <우리 앞에서>라고 토를 다는 것이 강 형사에게 좀 수상스럽게 보였다.

“그 밖에 달리 먹은 건 없나요?”
“아, 참 인삼캡슐이 있어요.”
장 이사가 탁 무릎을 치며 말했다.
“인삼캡슐?”

“예. 묘숙이가 건강을 위해 특별히 고안해 낸 것인데요, 그래서 항상 자기가 준비를 해서 나눠 주지요. 오늘도 유자차 먹을 때 나눠 줬어요. 우리 회사엔 손님이 와도 그렇게 접대를 잘합니다.”
“희한한 접대도 있군요.”

추 경감은 또 주름투성이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몸에 좋지 않은 커피나 설탕이 들어간 다른 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천경세 씨, 여기 달리 온 사람은 없습니까? 우유 배달부나 집배원이라도. 좋으니.”
강 형사가 물었다.

“어유, 어디유. 암도 오지 않았어유.”
천 씨는 손까지 흔들며 부인했다.
“그럼 외부사람이 들어올 만한 데가 없어요?”
천 씨는 강 형사가 무서웠는지 고개를 내리깔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시면 아시겄지만유 예는 당최 들어올 곳이 없구만유.”

그건 그랬다. 절벽에 둘러싸인 별장으로 하늘을 나는 재주 없이는 정문을 피해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런 걸 자꾸 물어 보시는 건 묘숙이가 실례를 당했다는 심증이 있어서입니까?”
변사장이 갑자기 질린 표정으로 물어 왔다.
“아니, 아닙니다. 그저 물어 보는 거지요.”

추 경감은 두 손을 들어 부인했다. 담배가 타들어오는 걸 발견하고 재빨리 불을 껐다.
“강 형사님, 이런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때 순경 하나가 강 형사에게 다가와 갈색 케이스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주사기 케이스 같습니다.”

“주사기?”
“예. 화장실 휴지통 속에 있었습니다.”
이런 젠장할. 거기까지 뒤졌어."
낮게 중얼댔지만 순경은 알아듣고 겸연쩍게 히죽 웃었다.
“이거 누구 거지요?”

다섯 사람을 돌아보며 물어보았다.
“예, 제 겁니다.”
천 씨가 당황하며 말했다. 직감적으로 뭔가 있다고 여겨졌다.
“왜 갖고 계셨죠? 마약하세요?”

“아, 아닙니다. 저, 저 제 손자 놈이 주사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저 사줬던 겁지유. 껍데기는 필요 없어서 버렸던 거예유.”
“손자라고요?”
강 형사는 반문하며 천 씨를 찬찬히 살폈다. 반백머리와 드문드문 흰털이 박힌 구레나룻. 손자가 있을 법도 한 나이 같았다.
“아, 그래요.”

강 형사는 안심시키는 듯 웃으며 케이스를 챙기도록 명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