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가 조작범 절반이 집행유예…4명 중 1명이 또 저질러

채희만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 부장검사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불법 주식 리딩방 불공정거래행위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채희만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 부장검사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불법 주식 리딩방 불공정거래행위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주가조작 피해자들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소식이 연이어 들리고 있다. 하지만 주가 조작범 또는 일당(주가조작 회사)은 구속됐다는 소식 외에 더 이상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주가 조작범 절반이 집행유예를 받고 4명 중 1명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소식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온다.

- 무더기 하반기 배후 지목된 강 모 씨. 과거에도 유죄 받은 적 있어
- 미국, 금융사기범 150년형….'법 어기면 신세 망친다.' 심리 퍼져


국내 증시에서 또다시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일산업㈜, 대한방직㈜, 만호제강㈜, ㈜방림(이상 코스피), 동일금속㈜(코스닥) 등 5개 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에 금융위, 금감원, 거래소는 이날 5개 종목 주가 급락과 관련해 신속한 거래 질서 정립 및 투자자 보호 방안을 강구 중이며, 이 일환으로 한국거래소는 관련 5개 종목에 대해 해제 필요시까지 매매를 정지하고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3개 종목(동일금속, 방림, 만호제강)에 대해서는 투자주의 종목(소수 계좌거래집중)으로 지정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금융당국은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의심되는 종목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혐의 적발 시에는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중히 조치하고 있음을 알려드린다"라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이번 하한가 사태의 주체로 강 모 씨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를 지목하고 있다. 실제 강 씨는 지난 3년간 해당 주식들의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내용의 글을 통해 투자자에게 매수를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강 씨는 과거 시세조종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이력이 있는 인물이다.

- 미국에 비해 범죄 실형 너무 낮다. 비판 일색

이런 가운데 최근 4년간 주가 조작 등 주식 불공정거래 사건의 재범 비율이 2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긴다. 

증선위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사이 5년간 불공정거래 관련 고발·통보된 사건 중 불기소율은 55.8%로 나타났다. 불공정거래 관련 대법원 선고(2020년 기준) 중 실형은 59.4%(38명), 집행유예는 40.6%(26명) 수준이었다.

현행법상 50억 원 이상의 주가조작 범죄는 5~30년의 유기징역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하지만 무기징역형은 아직 한 번도 선고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국은 금융 사기에 대해 최대 100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일벌백계함으로써 주가를 조작할 엄두를 못 내게 한다.

미국 매체에 따르면 뉴욕의 사업가 출신 숄람 와이스는 2000년 보험 회사를 상대로 한 4억5000만달러(약 6000억원) 규모 사기 혐의로 무려 845년형을 선고받았다. 숄람 와이스의 공범 키스 파운드는 740년 형을 받았다. ‘고수익 보장’ 사기로 수천만 달러를 챙긴 노먼 슈밋(330년형), 텔레뱅킹 사기범 로버트 톰슨(309년형)을 받아 현재 복역 중이거나 옥중 사망한 상태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상습적 주가 조작범에 대한 처벌이 미국에 비해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일반 주주 피해 보지 않도록 보완 마련 시급

정치권도 주가 조작범이 더 이상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나섰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불공정거래 행위자를 자본시장에서 배제하자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주가 조작범은 최대 10년간 자본시장 내 모든 금융투자상품의 신규 거래와 계좌 개설이 제한된다. 금융위원회의 증권선물위원회가 개별 사안별로 제한 기간을 결정하게 된다.

박용진·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부당이득 산정 방식 법제화'도 주목받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부당이득을 주가 조작 등 불법 거래로 발생한 총수입에서 그 거래를 위한 총비용을 공제한 차액으로 규정했다. 부당이득의 정의와 산정 방식을 처음으로 자본시장법에 명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금융당국도 불공정거래 행위 과정에서 일반 주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완 장치 마련에 분주하다.

금융감독원 캡쳐
금융감독원 캡쳐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증권 발 폭락 사태 등 불공정거래와 관련해 시장 교란 세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거의 거취를 걸다시피 한 책임감을 느끼고 중점 정책 사항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원장은 지난 20일 금감원 임원 회의에서 “증권사·자산운용사·사모펀드(PEF) 등 자본시장을 떠받치는 금융투자 회사에 불건전 영업 행위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최근 주가 하한가 사태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와 맞물려 투자자 신뢰를 크게 상실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투자 회사 스스로 소속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 통제 상황을 다시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며 “금융 당국은 새롭게 정비한 조직 체계를 바탕으로 불건전 영업 행위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사후적으로도 신속하고 철저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소속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최근 일부 종목에서 대규모 주식폭락 사태가 발생했고, 그 이면에는 대규모 주가조작 세력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기존의 전형적인 주가조작과 달리 수년간에 걸쳐 1000여 명의 투자자의 휴대전화와 계좌가 이용돼 주가조작을 시도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처럼 주가조작 수법이 조직화, 지능화되는 반면 지난 정부에서 남부지검 금융증권합동수사단 폐지로 주가 조작꾼들이 해방구처럼 손쉽게 활동할 수 있었던 여건이 조성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 시장 감시, 조사, 수사, 처벌에 이르는 주가조작 제재 시스템 전반을 꼼꼼히 살펴보고, 미흡한 점이 있다면 적극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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