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민원’ 사례, 폭언·폭행·업무방해 등 제각각
국세청은 “대안 마련 중”, 국회는 ‘입법 준비’

국세청이 공무원에게 지급한 녹음기. [뉴시스]
국세청이 공무원에게 지급한 녹음기. [뉴시스]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지난 7월 학부모 등의 악성민원에 시달리던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악성민원인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거센 가운데, 지난 8월16일 민원인을 대응하던 세무서 공무원이 실신해 입원 치료 중 결국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폭언, 폭행, 업무방해’ 등 제각각 악성민원 사례가 기록돼 있지만, 여전히 공무원 처우 개선은 시급한 상황. 국세청은 ‘부랴부랴’ 대안 마련에 나섰고, 국회는 관련 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지난 7월18일 서울서이초등학교 교사 A씨가 재직 중인 학교 교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의 조사 결과 A씨는 ‘악성민원’에 시달렸다. 특히 이른바 ‘연필사건’과 관련해 생전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7월12일 B학생이 C학생의 가방을 연필로 찌르다가 C학생의 이마를 긁으면서 다툼이 발생했고, 학생들의 부모들은 여러 차례 고인에게 연락을 취했다. 특히 고인은 학부모들이 자신이 알려주지 않은 연락처까지 알고 있어 동료들에게 불안감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이 ‘JTBC 뉴스’를 통해 공개한 문자 메시지에서도 고인의 고통이 나타났다. 고인은 ‘연필사건’의 학부모와 상담이 있었던 당일 모친에게 “너무 힘들다”라는 답장을 보냈다. 이밖에도 고인의 업무 수첩에는 학급에서 발생한 일들과 학부모 민원에 대한 고충이 적혀 있었다.

서이초 교사 A씨의 사망은 다른 교사들의 사망사건을 수면 위로 올리기도 했다. 지난 7월24일 진행된 ‘교권 회복 방안 발표’ 자리에 참석한 한 남성은 “내 딸도 똑같이 죽었다. 같이 조사해 달라”라며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였던 딸이 ‘교권 침해 문제’로 6개월 전 사망했다고 밝혔다.

2021년 경기도 호원초등학교에서도 초임 교사가 학부모 항의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일이 알려졌다. 해당 교사의 휴대전화에는 사망 직전 부재중 전화와 숨진 직후에도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유족 측이 공개한 녹취록으로 학부모가 교사 사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교사 이어 국세청, 공무원까지 사망

지난 8월17일 국세청에 따르면 경기 동화성세무서 공무원 민원봉사실장 D씨가 지난 8월16일 오후 1시50분경 사망했다. D씨는 소리를 지르는 악성민원인을 응대하다가 실신했고,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끝내 숨졌다.

동화성세무서에 부동산관련서류를 떼러 온 민원인은 “법적요건이 안 돼 발급이 어렵다”라는 직원의 이야기에 강한 어조로 소리를 질렀다. 이에 D씨는 상황 수습을 위해 대신 응대에 나섰다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당시 민원인은 쓰러진 D씨를 보면서 “쇼하지 말라” 등 조롱 섞인 발언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민원봉사실장 D씨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성실한 근무 태도로 평소 모범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샀다.

해당 사건 이후 일선 세무서를 중심으로 악성민원의 고질적인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국세청은 지난 8월4일 전국 133개 세무서 민원봉사실에 세무 공무원들이 민원인을 응대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녹음기를 보급했다.

‘악성민원’ 사례 살펴보니 충격적

국세청 악성민원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국세청에서 발간한 자료 ‘안전한 근무환경 조성을 위한 민원응대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사례를 보면 ‘악성민원 응대요령’, ‘민원조정위원회 및 악성민원 전담반’, ‘민원공무원 보호 조치’ 등이 서술돼 있다.

자료 악성민원 사례를 살펴보면 더욱 충격적이다. 배우자의 민원서류를 교부받기 위해 방문한 민원인에게 공무원이 위임장 제출요구를 하자 마스크를 벗고 폭언을 하며 민원실 직원들에게 폭행을 가했다.

타인의 사업자등록증 교부 시 필요한 위임장 제출요구에 불응하며 폭언을 시작했고, 해당 세무서 민원실장이 사건 해결을 위한 중재에 나섰으나, 직원들과 다른 민원인들 앞에서 인격 모독적인 언행을 취했다.

이어 강화유리 보호막을 내리칠 듯이 행동하며 민원실장을 불러세워 주먹으로 내리치려는 행동을 수차례 반복했다. 당시 상황이 녹음된 녹취파일 및 CCTV 자료를 근거로 해당 민원인은 벌금형에 처해졌다.

또 신고창구에서 신고상담 중 민원인이 업무 공간을 침범해 직원을 밀치는 등 폭력을 행사한 사건도 발생했다. 민원인이 신고의 번거로움에 대해 불평을 하다가 직원에게 서류를 던지고 불쾌한 언사를 행했고, 가림막과 모니터를 넘어뜨리며 업무공간을 침범, 직원의 얼굴과 어깨 등을 밀치는 등 폭행을 가했다.

다년간 수백 회 이상의 전화 및 지속적 방문으로 반복민원을 제기한 사건도 있었다. 민원인은 주 3회 이상 전화해 동일한 민원을 제기했으며, 매월 2~3회 방문해 동일 내용의 다수 진정서를 제출해 불만을 제기했다.

해당 청 감사관실에서 업무집행방해죄로 고발해 형이 확정되자, 동일한 방법으로 수백 회 이상의 전화와 수십 차례 이상 세무서를 방문해 민원을 제기했고, 세무서 서장실에 방문해 항의했으며, 난입하는 과정에서 직원을 밀치는 등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세청 “대안 마련 중” 국회, 법 개정으로 대응

국세청 관계자는 일요서울 취재진의 ‘동화성세무서 사건 이후 국세청에서는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가’ 질의에 “조만간 발표할 예정, 아직은 비공개 상태”라며 “(민원인의 폭언이나 폭행 상황 등을 기록할 수 있는) 녹음기는 기존에 소량 있었으나, 현재 전부 배포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악성민원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회는 법 개정을 통해 악성민원 대응에 나선다. ‘민원처리법’을 개정해 모든 정부 부처가 민원 담당자 보호조치를 마련하고, 매년 해당 부처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 8월21일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양기대 의원이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행정기관의 장이 민원 담당자의 보호 방안을 수립해 매년 담당부처 장관에게 보고해야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라고 밝혔다.

양기대 의원은 “최근 경기도의 한 세무서에서 민원실 팀장이 민원인을 상대하던 중 쓰러져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라며 “이에 민원처리법 개정안을 발의해 민원 담당자 보호조치를 강화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악성민원에 시달려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시급히 민원인 대응 시 공무원의 처우 개선과 보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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