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哀者)이고 싶은 교자(驕者) 이재명의 1년 
①사법리스크 ②영수회담 ③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시스]

[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취임 일성으로 '민생'을 말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1주년을 맞은 자리에서 '국민 항쟁'을 선언하며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다만 단식의 의미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정권의 탄압에 맞서는 가여운 자(哀者)의 모습인지, 검찰 수사의 정치적 도피를 위한 교만한 자(驕者)의 책략인지 혼동되면서다. 확실한 것은 새로운 논쟁은 아니라는 점이다. 

① 사법리스크 
이 대표의 법적 의혹은 지난 20대 대선 당시부터 불거진 문제다. 그 결과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부터 '사법리스크'가 있는 이 대표가 당권을 쥐는 것에 대한 우려도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를 견제할 만한 후보군이 없는 상황에서 ‘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으로 화자되는 그의 대세론에 힘입어 77.77%의 압도적인 득표율 속에 당대표에 취임한다. 

그 뒤 이 대표는 현실이 된 사법리스크의 여파로 인해 헌정사상 첫 야당대표 검찰 조사·구속 영장 청구라는 수모를 겪는다. 다만 혹자는 당대표로서 사법리스크에 직면하는 상황이 이 대표에게 마냥 손해는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1년 내내 펼쳐지는 사정정국 속에서 이 대표와 민주당은 검찰의 수사를 두고 무도한 야당 탄압이라는 프레임을 공고히 했다. 그 틀 안에서 친명계(친이재명계) 의원들은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청을 항의 방문하고 농성을 펼치기도 했다. 

방점은 강성 팬덤의 활약이다. 구속 영장이 청구된 이 대표의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을 두고 이탈표가 많은 턱걸이 부결이 결정되자, 강성 팬덤의 색출과 공격은 당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은 부결표를 던졌다는 해명에 나서는 것에 분주했다. 

이렇다 보니 이 대표가 민주당을 통해 얻는 이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 대표를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 영국의 야당들은 차기 집권을 대비해 예비내각을 구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곧 야당의 목표가 집권 세력의 실패를 지적하고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대안임을 증명하는 것에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법리스크는 그 대안으로서의 선택을 주저하게끔 만든다. 야권의 유력주자에 대한 우려와 함께 대여투쟁의 진실성을 오해하도록 만든다. 아울러 사법리스크가 이 대표 개인의 문제를 넘어 당내 비위에 대한 대처 능력을 저하시킨다.

민주당이 당의 도덕성을 실추시킨 사건을 대처할 때 기준점은 민주당이 사법리스크를 대처할 때와 동일한 잣대를 가지는지에 맞춰진다. 다르면 '내로남불', 같으면 '방탄'이다. 

지난해 한국갤럽이 2022년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64%인 가운데 민주당의 지지율은 36%를 기록했다. 

1년 뒤인 현재 한국갤럽이 지난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59%인 가운데 민주당의 지지율은 27%를 기록했다. 1년간 민주당의 지지율은 큰 변화 없이 저공비행을 지속했다. 그 사이 유의미한 증가세를 보인 것은 무당층이 유일하다. 

결국 이 대표 체제 아래 민주당은 현재 집권 여당에 대한 국민적 시선이 긍정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1년간 민주당에 일어난 변화는 강성 팬덤의 스타가 문재인 전 대통령에서 이 대표로 이동했다는 점뿐이다. 지난 20대 대선 패배 이후 한 달간 민주당의 신규 당원은 14만여 명에 달하고 그 중 4만여 명은 이 대표의 강성 팬덤이다. 

②영수회담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우리 정치사에서 대통령과 야당대표의 영수회담이 성사되기까지 걸린 최장기간은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의 110일이다. 현재 영수회담이 성사되지 않은 채 1년을 넘은 상황이므로 매일이 신기록 달성인 것이다. 그간 이 대표는 수차례 영수회담을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이제 이 대표도 더 이상 영수회담을 제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오히려 검사와 피의자의 관계에 가까운 모습이다. 실제로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월경 "(이 대표를) 만나는 것이 공정한 사법절차에 대통령으로서의 잘못된 시그널을 주는 것도 걱정하시는 것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국민의힘도 사법리스크를 통해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살펴본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지난 20주간 최대 38%, 최소 30% 수준에서 맴돌았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의 지지도도 최근 6개월간 최대 39%, 최소 31%를 기록해 정부여당이 동반 부진에 빠진 것이 파악된다. 

따라서 여권도 자체적인 긍정 요소가 없는 상황에서 사법리스크라는 공격 대상이 없는 경우 무방비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여당 내 수도권 위기론의 논란 속에서 다수의 여권 인사들이 사법리스크 없는 국민의힘의 나약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최근 여권의 이념 논쟁도 집토끼 단속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확장성이 없는 상황에서 지지층에 기댄 여야의 행보가 반사이익 구조로 치닫는다는 시선이다. 이와 관련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경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혐오정치와 검사정치는 찰떡궁합"이라며 "여당은 법무부와 검찰이 큰집이다. 큰집에 고발장 내면 큰집이 와서 처리를 해준다. 굳이 정치인끼리 만나서 복잡하게 토론하고 표결할 필요가 없다"고 해석했다. 
 
③포스트 이재명 
물론 '이재명 없는 민주당'이 협치의 대상이 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이미 이 대표가 당권을 잡기 전부터 여야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획득해 공룡 정당으로 거듭났다. 민주당이 보유한 180석의 힘은 문재인 정부 아래서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강행으로, 윤석열 정부 아래서는 거부권 행사 유도로 귀결된다. 이미 양당은 서로가 사정기관의 힘과 입법 독재의 힘을 통한 비대칭전략을 사용한다고 믿고 있다. 

결국 '이재명 없는 민주당'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민주당이다. 이 대표를 대체할 인물이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 대표 체제 아래서 치러질 22대 총선에서 발생할 잡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가령 이 대표가 비명계(비이재명계) 의원의 지역구에 지원 유세를 나선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그 자리에서 강성 팬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예 지원 유세를 하지 않을 것일까.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다.

현실적으로는 공천 과정에서 계파 갈등을 정리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대표적인 비명계 의원들의 지역구에는 다수의 원외 친명계 인사들이 도전장을 내밀고 기다리는 상황이다. 앞서 이 대표는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이기는 민주당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밝히며 공천 학살이라는 단어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치열한 계파 갈등 끝에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도 패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협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18대 총선에서의 친박 학살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민주당은 커지는 계파 갈등 속에서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거론되는 분당론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현재 민주당은 당비를 납부하는 권리당원의 수만 250만 명이며, 지난해 민주당이 지급 받은 국고보조금은 685억 원에 달한다. 민주당의 마지막 분당이 발생한 2016년과 비교하면 민주당의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이렇다 보니 비명계도 먼저 당을 떠날 가능성은 적은 만큼, 포스트 이재명을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국회 본청 앞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이 대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총선 전까지 당권을 쥔 채 존버(버틴다는 뜻의 속어)할 공산이 크다.

※ 해당 여론조사들의 자세한 결과는 중앙선거관리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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