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168석 민주당과 ‘이념 전면전’ 선포...與 결집 속 중도 이탈은 반대급부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7개월여 앞둔 시점에 공식 석상에서 집권 당정의 이념과 철학 방향성을 강조하며 사실상 야당과의 헤게모니 전면전을 선포했다. 총선 전 이른바 ‘집토끼’로 불리는 보수진영 총결집을 시도하는 한편, 야권 정치공세에 물러서지 않고 강경 대응하며 총선 국면을 압도하겠다는 결의로 읽힌다. 이념을 고리로 보수정권의 정체성과 내부 결속을 공고히 하면서 대야(對野) 거대 전선을 구축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다만 이로 인해 여야간 사생결단 구도가 짙어질수록 중도층 민심이 당정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은 반대급부다. 또 총선 최대 분수령이자 전체 의석수의 약 40%에 달하는 수도권의 표심 향배도 뒤틀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尹, 야당과의 이념戰 기수 자처하며 보수진영 결집 시도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우리가 매몰됐고, ‘우리 당은 이념보다는 실용’이라고 하는데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는 실용이 없다. 여소야대 국회에다 언론도 전부 야당 지지세력이 잡고 있어서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지난 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 만찬에서 여당 의원들과 각료들 100여 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내비친 일성이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은 이날 문재인 정부와 야당, 야권 성향의 언론들까지 총망라한 대야 규탄 메시지를 쏟아내며 이에 대한 강경 대응 의지를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회에다가 언론도 전부 야당 지지세력이 잡고 있어서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며 “돈은 없는데 사장이 어디 ‘벤츠 600’ 이런 고급승용차 막 굴리고 이런 식으로 해서 안 망한 기업이 없지 않느냐. 정부도 마찬가지”라고 전임 정부의 포퓰리즘식 재정 살포에 날을 세웠다. 

윤석열 정부는 내년도 국고 지출증가율을 역대 최저 수준인 2.8%로 묶으며 예산 총액을 올해(약 638조 원) 대비 19조 원가량 늘은 657조 원 규모로 책정했다. 전 정부발(發) 400조 원에 달하는 국가부채 등 재무 리스크에 역대급 세수펑크가 맞물려 긴축 재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현 정부의 설명이다. 윤 대통령의 이날 ‘벤츠’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전 정부의 코로나19 민생지원 등을 위시한 퍼주기식 재정 운용을 꼬집은 것으로 읽힌다.     

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이처럼 고강도 메시지를 낸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정의 이념 정체성을 굳히며 진영 결집을 유도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아울러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만큼, 윤 대통령이 몸소 야당과의 이념 전면전에서 선봉을 자처하며 진영 결집 시너지를 극대화하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의힘 친윤(친윤석열)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윤 대통령은) 정치 기반이 전무한 상태로 국정 최고의사결정 지위까지 로얄로더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소위 ‘뉴 브리드’(New breed, 신종)로 불리는 보수정권으로서 자잘히 흩어진 구 보수권을 한 데 묶는 작업이 우선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아직 내년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반년 이상 남지 않았나. 안방부터 단속하고 국정 어젠다인 3대 개혁을 중심으로 외연 확장에 나서도 늦지 않다”고 관측했다. 윤 대통령이 이른바 ‘선(先)보수, 후(後)중도’라는 큰 틀의 총선 전략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보는 시각이다.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도 윤 대통령이 띄운 이념전쟁의 연장선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당초 색깔론으로 비춰질 것을 우려해 흉상 관련 언급을 자제했던 국민의힘도 이날 윤 대통령의 대야 선전포고 이후 흉상을 이전해야 한다는 취지로 점차 말문을 여는 모양새다.

구 보수정당 출신의 한 정계 원로는 윤 대통령의 최근 행보에 대해 “전 정부를 거치면서 이념이 한 쪽으로 과하게 쏠렸던 부분들을 하나씩 ‘정상화’하는 수순”이라며 “윤 대통령의 이번 퍼포먼스가 누군가에게는 극단적 이념 갈라치기로 치부되겠지만, 보수진영에서는 소신과 강단 있는 리더십으로 비춰지며 결집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샤이(shy) 보수들의 노선 합류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중도‧수도권 표심 이탈은 어쩌고” 與 일각에선 우려도

윤 대통령의 작심 발언에 이날 현장에서는 박수와 우려가 교차했다. 일부 의원들은 “맞습니다”라며 윤 대통령의 발언을 지지한 반면, 일부 의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집권당을 관통한 ‘수도권 위기론’은 22대 총선 최대 캐스팅 보트로 지목되는 128석 수도권과 중도층 민심 사각지대가 크다는 여권 내 위기의식의 발현이다. 당 내부에서도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무당층에 최적화된 혁신공천 단행으로 인물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른다. 

이날 연찬회에 참석한 윤상현‧안철수 의원 등도 수도권, MZ(20‧30세대), 무당층에게 소구력을 가져갈 수 있는 인사 발탁을 위해선 당내 혁신위원회 발족이 시급하다는 취지로 공개 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연찬회 만찬에 앞서 진행된 지역별 분임토의에서도 ‘중도 포섭을 위한 당 차원의 촘촘한 전략 구상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들이 나왔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이 꺼내든 이념 승부수는 여당의 총선 예열작업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내부 쓴소리도 나온다. 중도‧실용층을 겨냥한 외연 확장이 절실한 시점에 돌연 등장한 용산발 ‘이념 매뉴얼’이 무당층의 거부감을 부추기며 내년 총선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 

당내 소장파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의 이날 만찬 발언을 복기하며 “(윤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셌다. 현장에 있었던 일부 의원들도 흠칫했을 정도다. 총선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야당을 적대시하는 말을 하는 것은 양날의 검”이라고 우려감을 내비쳤다.  

실제로 윤 대통령의 이번 고강도 퍼포먼스가 내년 총선에서 역작용을 불러 일으킬 것이란 공개 지적도 나온다. 안철수 의원(3선‧성남 분당갑)은 “합리적인 성향의 중도층이 떠나면 총선에서 승리할 방법이 없다”고 했고, 국민의힘 소속인 김태흠 충남지사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충청권과 수도권이 같이 맞물려 있다. 집권여당으로서 국정운영을 어떻게 갈 것이냐, 방향과 목표 비전을 제시를 제대로 안 했다”며 흉상 이전은 악수가 될 수 있다고 회의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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