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 국회입법조사처는 국회의원의; 언어의 품격을 다룬 이슈와 논점을 발간했다. 영국 하원의 경우 의원의 막말이나 폭언을 비의회적인 언어(unparliamentary language)로 규정하고, 회의장 퇴장이나 호명(naming) 및 직무정지 등의 징계를 통해 엄격하게 제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의장 직권으로 회의장 퇴장 등의 제재를 받은 발언을 보면 멍청이·거짓말쟁이·겁쟁이·부랑아·배신자·쥐새끼 등이 있으며, 심지어 총리가 하원을 호도하고 있다(Prime Minister misled the House)”는 표현조차도 부적절한 발언으로 제재를 받았다고 한다. 부끄럽지만 우리 국회에서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이고,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평범한 언어로 취급받을 말들이다.

올해 외신에 보도되었던 일 몇 가지만 살펴보자. 싱가포르 여당인 인민행동당(PAP) 소속 탄 추안 진(陈川仁) 국회의장과 쳉 리 후이 의원이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오다 동반 사퇴했다.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영국 총리가 일명 파티게이트와 관련한 의혹을 조사받으며 사퇴했다. 내용은 별 게 아니다. 코로나 때 파티했다는 것이다. 연방 파푸아뉴기니의 저스틴 트카첸코 외무장관은 영국 찰스 3세 국왕 대관식에 자신의 딸을 데려갔다는 이유로 사퇴했다. 영국 총리의 최측근인 도미닉 랍(Dominic Raab) 부총리는 직원들을 괴롭혔다는 조사보고서가 나온 뒤 사퇴했다. 베트남 국가서열 2위인 응우옌 쑤언 푹(Nguyen Xuan Phuc) 국가주석은 공직사회 부패 스캔들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다들 염치와 양심은 살아있는 셈이다.

만약 이재명이라는 존재가 스웨덴이나 핀란드 등 유럽 선진국에서 태어나, 지금까지와 같은 삶을 살아왔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그렇게 살아올 수도 없었겠지만, 공적인 자리 근처도 못 갔을 것이다. 김남국은 한동훈 법무부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15차례, 법사위 국정감사 도중 26차례, 심지어 이태원 참사 현안보고 중에도 7차례 코인거래를 했다. 온갖 거짓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꼬리 자르기를 당했다. ‘역대급 딴짓가난팔이로 윤리특위 자문위의 제명처분 권고까지 받았지만, ‘불출마 눈물쇼와 친정인 더불어민주당의 비호(庇護)로 위기를 넘긴 상황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에 남아 있거나 탈당한 인사들 중에 이런 부류들이 차고 넘친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면, 대한민국 국회의원 절반 이상은 북유럽 국가에선 아예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희귀 외래종이라는 사실이다.

청렴한 국가로 유명한 스웨덴. 1995년 사민당 출신 모나 살린(Mona Sahlin) 당시 부총리는 총리 지명 1순위였으나, 한 대형 슈퍼마켓에서 조카에게 줄 기저귀와 초콜릿, 식료품 등 생필품 2000크로나(34만원 가량)를 공공 카드로 구입한 사실이 밝혀져 결국 부총리직에서 낙마했다. 2006년 총선 승리로 새롭게 임명된 마리아 보레우스(Maria Boreus) 산업부 장관과 세실리아 실로(Cecilia Stegö Chilò) 통상부 장관은, TV 시청료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임명된 지 6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이렇게, 스캔들로 낙마한 스웨덴 정치인들을 보면 이권개입, 권력남용, 횡령 등과 같이 조직적인 부패에 개입하거나 연루된 사안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법인카드 개인 유용과 TV시청료 미납, 주차위반요금 미납, 유모 영수증 미처리, 주택지원금 과다 수령 등 일상생활과 관련한 사소한 사안들이다. 스웨덴 정치인들이 불명예로 낙마하는 경우의 대다수는, 까다로운 윤리적 잣대로 정치인을 평가하는 국민 정서 때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조사에서 최근 매년 공동 1위인 뉴질랜드의 경우 지난 2004년 지방 시찰 중이던 헬렌 클라크 총리에게 과속으로 벌금형을 내린 적이 있다. 뉴질랜드 국회의원이었던 타이토 필립 필드는, 지난 2008년 불법 체류자인 태국인에게 불법비자를 발급해 주고 집수리 등을 시킨 혐의로 징역 6년의 실형을 받았다. 핀란드의 경우는 누구나 타인의 납세 내역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하여 확인 가능하며, 세금, 주식거래, 허가 관련 정보 등 모든 정보를 공개토록 하고 있다. 공직자에게는 명예박사학위 수여도 뇌물로 간주할 만큼 공직부패 근절에 대한 확고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독일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2022년 국가 청렴도순위에서 가장 청렴한 나라로 덴마크가 꼽혔다. 덴마크에 이어 2위부터 10위까지 최상위권 국가는 대부분 북유럽 국가가 차지했다. 덴마크가 이렇게 청렴한 국가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언론과 사법기관의 부패 감시 공조 체제를 통해 부패를 예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의 사법기관과 언론의 꼴은 어떠한가. 진영의 도구 또는 주구(走狗) 노릇을 자처하며 불법과 타락, 부패를 부추기는 집단으로 인식될 정도다. 검찰수사와 재판을 농락하고 비아냥거리는 자들이 득실거리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싶다. 습한 음지에 곰팡이가 가득하고, 오물통에 똥파리가 꼬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치인과 관료의 부패는 사법부와 언론이 건강해야만 방지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지금의 대한민국 사법부와 언론의 가혹한 자기반성과 자아비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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