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진영갈등 극단으로 치닫자 박근혜‧문재인 소매 걷어붙여

박근혜 전 대통령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여야 정치권이 22대 총선을 앞두고 극한의 진영대결에 돌입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 전쟁’ 발언을 신호탄으로 여야가 저마다 지지층 결집에 공을 들이며 총선민심 우위 선점에 나선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을 필두로 ‘반공’(反共) 키워드를 띄운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무기한 단식농성을 매개로 정권 규탄 총력전에 나섰다. 그러나 때아닌 여야 이념 갈등은 총선 캐스팅 보트인 수도권‧중도 민심과 민생을 배제한 ‘집토끼’ 행보라는 점에서, 무당층 및 여야 샤이(shy) 지지층과의 이격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혼돈 양상이 짙어지는 가운데, 전직 대통령들도 최근 운신의 폭을 넓혀가는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직접 대여 공세 메시지를 방출하며 야당을 후면지원하고 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대변인 격인 유영하 변호사의 입을 빌어 ‘친박(친박근혜)은 없다’며 심처에 깔린 구 친박‧친이(친이명박) 역학으로 내부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여당에 단합을 주문하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날갯짓이 총선 나비효과로 이어질 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내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을 포함한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흉상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뉴시스]

 

‘반공’ 키워드로 진영결집 시도하는 與

집권 당정은 최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과 윤미향 무소속 의원의 친북 논란 등을 매개로 ‘반공’ 이슈에 매진하고 있다. 여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 스스로가 선봉을 자처한 ‘이념 전쟁’이 총선을 앞둔 당정의 퇴행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용산발 지령’에 여당은 이미 노선을 확고히 굳힌 모양새다. 

홍 장군 흉상 이전을 적극 지지하고 나선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초선‧비례대표)이 차기 국방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도 당정의 이러한 스탠스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최근 국방부 장관 교체를 통한 안보라인 개편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복수의 여권 인사들이 하마평에 올라와 있지만, 신 의원이 ‘윤심’(尹心‧윤 대통령의 의중)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분석이다. 신 의원은 흉상 이전 이슈로 윤 대통령이 선포한 대야(對野) 이념전에 적극 호응하고 나선 만큼, 대통령실이 두터운 신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나아가 흉상 이전 찬성으로 안보관 검증을 마친 신 의원을 반공 최전선에 있는 안보라인 1선으로 전격 배치하며 한동훈‧원희룡 장관과 더불어 대야 삼각편대를 구성하려 한다는 게 윤 대통령의 속내라는 관측도 이어진다. 

신 의원은 육사 37기 출신으로, 군 현역 시절 수도방위사령관과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등을 지냈다. 당초 유승민계로 분류됐던 그는 지난 1월 유승민 전 의원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친윤(친윤석열) 노선을 타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불거진 윤미향 무소속 의원의 친북 논란도 당정발(發) 반공 전선의 한 축으로 급부상했다. 민주당에서 출당 조치된 윤 의원은 최근 친북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주최한 행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되는 등 당정의 집중공세를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를 ‘반국가 행위’로 규정하기도 했다.

무기한 단식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 설치된 단식 농성 천막을 지키고 있다. [뉴시스]
무기한 단식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 설치된 단식 농성 천막을 지키고 있다. [뉴시스]

野 “日 원전수 방류 찬성한 정부, ‘파시즘’” 尹 탄핵 시사도

반면 민주당은 단식농성에 나선 이재명 대표를 필두로 정권 규탄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결정을 묵인한 현 정부를 ‘파시즘’으로 규정, 촛불집회 등 광장 정치를 주도하며 고강도의 비판 메시지를 쏟아내는 모습이다. 

이 대표는 최근 한 매체 인터뷰를 통해 윤 대통령 탄핵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 설훈‧김두관 민주당 의원 등도 지난 5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홍범도 장군 논란을 거론하며 탄핵 군불때기에 나섰다.

이 대표 격려차 농성 현장을 찾은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을 비롯해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 야권 원로급 인사들도 대여 공세에 적극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이로써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여 결사항전 의지를 내비치며 야권 총결집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의 이념전 선포에 맞서 이 대표가 몸소 단식농성에 나선 만큼, 지난 20대 대선에 이어 여야 정점 간 대치 구도가 재형성되며 정치권이 전면전에 돌입한 양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뉴시스]
문재인 전 대통령 [뉴시스]

여야 극한 대립 속 장외 행보 나선 文‧朴

여야가 퇴로 없는 힘싸움에 골몰 중인 가운데, 과거 여야 각 진영을 대표했던 전직 대통령들의 장외 행보도 주목을 받고 있다. 여야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에서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외 행보를 시작한 것. 이에 두 전직 대통령의 극적 등판이 여야 정통 지지층의 감정선을 건드리며 22대 국회의원선거 판세를 좌우할 변수를 창출하고 있다는 관측도 잇따른다.

문 전 대통령은 최근 단식농성 중인 이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윤석열 정부의 폭주가 너무 심해 제1야당 대표가 단식하는 상황이 염려스러워서 전화를 드린다”고 격려한 한편, 자신의 SNS를 통해 각종 쟁점 현안과 관련해 정부를 직격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에 대해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흉상 철거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한 데 이어 지난 3일에는 “대통령실이 나서서 논란을 정리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발언 수위를 높인 바 있다.  

박 전 대통령도 지난 4일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친박은 없다’는 취지의 대국민 담화를 다가오는 추석 전후로 내겠다고 밝혔다. 여야 정쟁 일선에 나선 문 전 대통령과 달리 현실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여전히 정통보수층 사이에서 미묘한 경계선으로 작용하고 있는 친박‧친이 갈등사를 총결산하며 총선 전 보수권 내부분열 방지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보수진영의 본산인 TK(대구‧경북)를 중심으로 박 전 대통령 탄핵에 관여한 윤 대통령을 포함해 과거 친박과 대척점에 섰던 친이계를 향한 반감이 상존하는 만큼, 총선 예비시즌을 맞아 진영 내 해묵은 감정을 해소시키며 보수 대통합을 주문하려는 게 박 전 대통령의 의중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박근혜 청와대‧정부 출신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총선 출마설이 도는 상황에서 ‘친박 세력화’와도 조기에 선을 그으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두 전직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외형상 결이 다르지만 여야 각 진영의 결집 동력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의 경우 이 대표에게 직접 손을 내밀며 친명-비명 계파 갈등에 쏠린 민주당의 시선을 대정부 총력 투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박 전 대통령도 ‘친박 퇴진’이라는 대승적 메시지를 통해 보수진영 총결집을 주문하며 당정의 총선 승리를 물밑지원하고 있다는 게 정가 중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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