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 원심 판단은 법리 오해...고법 판결 파기·환송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대법원이 4년 전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 이하 ‘공정위’)가 ㈜한국씨티은행(이하 ‘씨티은행’)과 제이피모간체이스은행(이하 ‘제이피모간’)을 대상으로 내린 담합 제재 처분에 대해 적법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13일 대법원은 지난 8월 31일 씨티은행과 제이피모간에 대한 공정위의 통화스왑(두 개의 상이한 통화로 표시된 ‘원금’과 ‘원금에 대한 이자’를 주기적으로 상호 교환하기로 두 당사자 간에 맺은 금융계약을 의미) 입찰담합 제재와 관련해 공정위가 패소했던 원심(서울고등법원) 판결을 승소 취지로 파기하고 해당 사건들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하는 판결을 내렸다.

앞서 공정위는 한국수력원자력(주), 한국도로공사(이하 발주자) 등이 각 실시한 총 4건의 통화스왑 입찰에서 담합한 4개 외국계 은행들을 적발해 2020년 3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13억 2100만 원을 부과했다.

당시 한국씨티은행과 홍콩상하이은행은 한국수력원자력(주)이 원전 건설 자금 조달 등을 목적으로 발행한 달러 표시 사채를 원화 부채로 전환하기 위해 실시한 1억 달러 상당의 통화스왑 입찰에서, ㈜한국씨티은행이 낙찰받을 수 있도록 홍콩상하이은행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이를 실행했다.

또한 ㈜한국씨티은행, 홍콩상하이은행, 제이피모간 등 3개 은행은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건설 자금 조달 등을 목적으로 발행한 달러 표시 사채를 원화부채로 전환하기 위해 실시한 2건의 통화스왑 입찰(총 1억 8000만 달러)에서 홍콩상하이은행이 낙찰받을 수 있도록 투찰 가격을 합의하고 이를 실행했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수력원자력(주) 등 고객들은 보다 낮은 원화 금리로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할 목적으로 입찰을 통해 거래 은행을 선정하고자 했으나, 은행들이 사전에 투찰 가격 및 낙찰 은행 등을 담합함에 따라 그러한 효과가 나타나는데 장애로 작용했다. 

그러나 씨티은행과 제이피모간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2020년 5월 서울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각각 제기했다. 이듬해인 2021년 5월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공정위가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 결과 이번에 대법원이 공정위 처분이 적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한 것이다.

애초 원심에서는 각 발주자가 특정 은행과 이 사건 통화스왑 거래를 하기로 구두로 합의했고 이는 실질적으로 수의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있는데, 입찰절차를 거쳤다는 증빙을 남기기 위해 입찰을 시행하지 않은 채 원고와 다른 은행으로부터 입찰제안서를 제출받는 등 마치 입찰이 있었던 것처럼 외형을 갖추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통화스왑 입찰은 경쟁입찰의 실질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다.

[제공 :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 공정거래위원회]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 통화스왑 입찰의 경우 내부 규정이나 실무 관행에 따라 발주자가 입찰에 부치게 되어 있는데, 두 사건 모두 입찰을 전혀 실시하지 않은 채 형식적인 입찰서류만을 작성해 입찰이 있었던 것처럼 조작한 경우와는 달라 입찰이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대법원이 각 발주자와 낙찰 은행 사이의 이 사건 통화스왑 거래에 관해 체결된 수의계약은 당사자 사이에서만 구속력이 있을 뿐 그 이후에 진행된 입찰절차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이 사건 공동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다른 은행이 유효한 경쟁관계를 전제로 입찰에 참가하거나 이 사건 공동행위에 가담한 다른 은행이 합의를 파기하고 발주자보다 더 낮은 원화 고정금리로 견적서를 작성·제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부당한 공동행위 등을 규제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고자 하는 공정거래법의 입법목적에 비추어 보면, 발주자(한국도로공사 건)가 행한 같은 방식의 입찰 역시 규제할 필요가 있으며 “입찰 자체의 경쟁뿐만 아니라 입찰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경쟁도 함께 보호할 필요가 있음(한국수력원자력 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당 사건 파기환송심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공정위 처분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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