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월22일 자 동아일보 제호와 41년 후인 2023년 5월25 조선일보 기사는 그 사이 한국 근로자들의 달라진 노동윤리를 극명하게 반영했다. 1982년 동아일보는 ‘韓國人은 세계서 가장 부지런, 週 男52.8 시간 - 女53.5 시간 일해’ 제목을 달았다. 세계에서 한국인이 가장 부지런했다는 제호였다. 그러나 41년 후인 2023년 조선일보는 ‘실업급여 반복 수령 4년 새 24% 늘어⋯ 회사에 해고해 달라 요구도’의 제호를 붙였다. 너무 나태해졌다는 고발이었다.

이 두 기사들은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 근로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견뎌냈는데 반해, 이젠 그들의 후손들이 선대들이 피땀 흘려 일궈놓은 번영과 풍요 속에 배가 불러 쇠락해졌음을 드러냈다. 거기에 우리나라 금년 경제지표는 침몰하고 있어 걱정된다.

  필자가 1965년1월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날 때만 해도 서울-김포공항 도로는 포장도 못한 자갈길이었다. 김포공항 청사는 오늘의 고속터미널 보다 작았고 초라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NP)은 100달러였다. 필자가 유타 주 브리검영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마치고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 박사과정에 있었을 때였다. 1967년 가을 아내와 함께 수퍼마켓에 들렸는데 매장 입구엔 저렴한 와이셔츠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호기심에 라벨을 들쳐보았다. ‘Made in Korea’가 적혀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필자는 너무 반갑고 자랑스러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의 가난한 조국 대한민국도 이젠 수출국이 되었다는 자긍심에서 였다.

한국이 북한의 6.25 남침 잿더미 위에서 일어서기 시작한 건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부터였다. 그 해 1인당 GNP는 82달러였고 국가재정의 절반이 미국 원조에 의존했다. 미국 무상원조로 들여온 버터와 치즈가 굶주리던 한국인들의 유일한 프로테인 보양원이었다. 박정희 정부의 7차례(1962-1996년) 경제개발 계획은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솟게 한 기반이 되었다. 2022년 한국의 1인당 GNP는 3만3000달러로 일본과 엇비슷하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 근로자들은 세계 최장시간 중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980년 기준 집계한 통계였다. ‘한강의 기적’은 저 같은 우리 근로자들의 세계 최장 노동시간과 인고의 근로열기가 가져다준 열매였다.  

필자도 1960년대 미국서 공부할 땐 새벽 3시 20분에 기상해 3시간 대학 교실 청소하거나,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대학 구내식당에서 접시닦이 하면서 학비를 보탰다. 강의 듣고 숙제하기 위해 하루 서너 시간만 자거나 아예 이틀씩 잠을 자지 못하기도 했다. 여름방학 땐 식당 ‘버스보이(웨이터 조수)로 3개월 반 일해야 했고 하루 16시간 두 잡을 뛰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일부 젊은이들은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사장에게 해고해 달라고 요구까지 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던 국민이 가장 게으른 인간으로 퇴락하고 만 것이다. 저런 나약한 사람들이 빈둥대는 한 한국 경제는 ‘한강의 기적‘을 이어 갈 수 없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수출은 연속 감소세이고 내수도 부진하다. 올해 경제 성장률은 2%대의 잠재성장률 보다 낮은 1.4%대로 전망된다. ‘한강의 기적’이 침몰하는 게 아닌가 두렵다.

‘한강의 기적’은 어느 날 갑자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갖다 준 선물이 아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견뎌내며 성취한 인고의 결정체이다. 물론 우리 국민들이 가장 긴 노동시간으로 되돌아가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다만 헐벗고 굶주리며 춥거나 덥거나 쉬지 않고 땀 흘린 선대들의 극기력을 잊지 말고 부지런히 살기 위해서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경구를 덧붙여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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