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구’ 긴급 생계지원금도 ‘압류’ 대상

취약계층에 지원되는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의 생계지원금이 압류당해, 해마다 3000명 이상이 법률구조공단을 통한 소송절차로 돌려받는것으로 확인됐다. [글=이창환 기자, 사진=박정우 기자]
취약계층에 지원되는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의 생계지원금이 압류당해, 해마다 3000명 이상이 법률구조공단을 통한 소송절차로 돌려받는것으로 확인됐다. [글=이창환 기자, 사진=박정우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위기가구 긴급 생계지원금을 비롯해 저소득층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위해 마련된 각종 지원 급여 가운데 상당수가 압류를 당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급자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압류되는 상황이 발생되더라도, 안정적 생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기초 지원금은 수급권이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에서 지원하는 현금성 복지 급여 가운데 58%가 압류를 차단할 수 있는 압류방지통장 사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지원 현금성 복지급여 중 58% 압류방지통장 사용 못해
연평균 3000명 이상 복지급여 압류 취소소송… 370억 원 넘어

압류방지통장은 말 그대로 어떤 이유로든 압류되지 않도록 만들어진 통장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35조(압류금지)에 따르면, 수급자에게 지급된 수급품과 이를 받을 권리는 압류할 수 없으며 급여수급계좌의 예금에 관한 채권은 압류할 수 없다. 

‘수급권자’란 이 법에 따른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로, 위기가구나 생계유지가 어려운 장애인과 시설퇴소아동 등 취약계층 및 저소득층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지원되는 현금성 급여로는 생계급여를 비롯해 주거·의료·교육·해산(解産)·장제(葬祭)·자활급여 등으로 나뉘며, 각각 정해진 기준에 따라 지급된다. 

문제는 이런 이유 등으로 지원되는 각종 급여 가운데 태반이 압류당할 수 있는 위기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것.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영주 의원이 사회보장정보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국토교통부와 교육부 등 9개 부처가 지급하는 현금급여 95종 가운데 무려 55종이 압류방지통장을 사용할 수 없었다. 

취약계층 생계 직결 ‘정부지원금’ 압류당해

특히 이 중에는 취약계층의 생계와도 직결되는 정부 지원 항목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확인돼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각종 경제활동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급자가 빚을 갚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의 복지급여를 받더라도 이를 압류당하면 급여의 의미는 퇴색될 뿐이다. 

즉 복지급여 수급자가 받은 정부지원금이 압류방지통장이 아닌 일반 계좌에 있다면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즉 위에서 언급한 55종의 지원금은 일반계좌로만 지급이 될 수 있기에 급여 입금 즉시 압류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즉시 생계의 위협이 되는 셈이다. 

이를 두고 김영주 의원은 “단순히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현금급여 압류방지 통장 사용여부 검토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의 수급권 보장을 위해 종합적으로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3000명 이상이 법원으로부터 통장계좌에 복지수당과 같은 압류금지채권 출금 절차인 ‘압류금지채권 범위변경’ 신청을 위해 공단의 문을 두드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압류금지채권 범위변경’이란 정부의 복지 급여를 받은 수급자들이 채권자의 신청으로 법원으로부터 계좌를 압류당한 경우라도, 생계 보장을 위한 최저금액(185만 원)을 출금할 수 있도록 압류명령을 무효 하는 제도다.

법률구조공단, 압류취소 소송, 2018년부터 총 2만 건

이와 관련 법률구조공단이 2018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4년6개월간 압류 취소를 위해 법원에 제출했던 ‘압류금지채권 범위변경 신청서’는 총 2만101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1만9040건(94.7%)이 승소하면서 압류 해제로 수급자가 돌려받은 금액은 무려 373억 원이 넘었다. 

김 의원은 “고물가·고금리에 취약계층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정부 지원급여마저 압류돼 최저생계비라도 돌려받고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라면서 “경기침체 등으로 일반계좌를 이용할 수 없는 신용불량 복지대상자들이 지원금 수령을 포기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보장정보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가 현금급여로 지원하는 ‘급식비’와 ‘고교학비 지원(3종)’ 등 총 4종은 모두 압류방지통장 사용이 불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교육부 교육지원정책과는 일요서울에 “학비 지원, 급식비 지원 그리고 방과후 수강권 등은 저소득층 교육비 지원 사업은 맞다”라면서도 “실질적인 업무는 각 시도교육청에서 담당하고 있는 경우가 있어서 확인해 봐야한다”고 답했다. 

또한 “각시도 교육청에서 조례를 통해 지원하는 부분도 있고 지자체별로 지원 기준이나 항목도 다를 수 있어 교육부에서 일괄 취합하고 있지는 않다”라며 “교육급여 같은 경우는 국민 기초생활보장사업으로 압류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2023학년도부터는 교육급여가 학생들에게 바우처로 지급되도록 변경됐다”고 덧붙였다. 바우처는 계좌로 입금되는 현금급여 방식과 달리 특정한 상품에 대해서만 금전적 가치를 부여해 소비할 수 있는 교환 거래 채권의 일종으로, 상품권의 형태를 띠고 있어 압류당할 위험은 없다. 

보건복지부에서도 압류방지통장에 포함되지 못한 일부 급여 항목을 압류방지통장 사용이 가능하도록 수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는 지난달 29일을 기점으로 “의료급여 압류방지전용통장을 제공한다”며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수급권이 실질적으로 보호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영주, 개정안 발의 예정… 정부부처 동참도 중요

김영주 의원실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구제받은 사례, 즉 이런 제도를 활용한 수급자 수가 매년 3000명에 이른다”라면서 “실제로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훨씬 더 많은 수가 지원받은 급여를 압류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압류방지통장 사용범위를 복지급여 전체로 확대해 저소득 위기가구의 복지 사각지대 방지를 위해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라면서도 “국회에서 법안 발의를 통해 해당 급여(약 50종)를 수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가 자체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방안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복지부나 교육부 등 정부의 각 부처와 관련된 법안을 일일이 나열하고 개정안을 발의해 수정해 나가는 것은 결과를 얻어내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하지만 앞선 사례처럼 교육부가 바우처로 전환하고, 복지부가 자체적으로 방안을 마련하는 등 부처가 직접 나서서 개선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수월하다. 

한편 복지부 현금급여 전체 58종 중 30종(52%)이 압류방지통장 사용이 불가했다, 이 중 위기장애인급여(지자체), 시설퇴소아동자립정착금, 장애아동 양육수당 등 압류로 생계를 위협할 수 있는 주요 복지급여도 포함됐다. 사회적배려대상 지역난방 열요금 지원(산업통상자원부), 청년월세(국토부), 생활지원(여성가족부) 등 대부분 부처에서 기초생활 유지를 위해 지원되는 복지급여가 압류방지통장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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