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자본주의 병폐에도 불구하고 ‘제1의 경제대국’으로 군림하는 원동력은 자발적 ‘기부문화’를 들 수 있다. 앤드루 카네기,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 미국의 세계적인 대부호들은 한국의 대기업 총수들처럼 부를 대물림 하지 않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했다. 재산의 95%를 사회에 환원하며 미국에 기부문화를 정착시킨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죽은 뒤에도 부자인 것처럼 부끄러운 일은 없다.”라는 어록을 남겼다.

버핏은 “많은 돈은 자식을 망친다.”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으며, “유산보다 성과에 의해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한 그는 검소한 삶을 살지만, 자선재단을 설립해 막대한 돈을 기부하고 있고,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부자증세’를 주장한다.

우리나라에도 경주 최부자는 12대 3백 년 동안 ‘베풂의 도(道)’를 실천했다. 최부자는 국운이 기울자 의병을 지원했고, 경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고, 국권을 강탈당하자 임시정부와 해외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했다.

220여 년 전. 시대를 앞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제주 의녀(義女) 김만덕(金萬德, 1739~1812)은 ‘나눔과 봉사’의 표상으로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진 선각자이다.

그녀는 1739년(영조15) 제주 구좌읍에서 김응렬과 고씨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2살에 양친이 모두 사망하여 기생의 수양딸이 되었으나, 20세 때 기적(妓籍)에서 빠져나와 여성 기업인으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였다.

만덕의 거상(巨商) 운영 방침은 ‘박리다매(薄利多賣)’ ‘적정가격’ ‘신용본위’ 세가지였다. 만덕과 동시대를 살았던 정약용은 <경세유포>에서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미역을 조선 사람 절반이 먹는다.”라고 기록할 정도였다.

정조 19년(1795)에 제주에 큰 흉년이 들게 되니, 백성들이 서로를 베고 누워 죽어갔다. 만덕은 유통업으로 이룬 막대한 부를 굶주린 제주도민 1,100명을 살려내는데 기부했고, 전국적인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만덕은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정조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고, ‘의녀반수(醫女班首)’라는 여성 최고의 벼슬에 올랐다. 정조가 소원을 묻자 만덕은 “한양에 가서 궁궐을 보는 것과 금강산 구경”이라고 대답하였다.

당시 제주 여성은 1629년(인조 7년)부터 출륙금지(出陸禁止)를 당해 250여 년 동안 섬에 갇혀 살아야만 했다. 이 기간에 공식적으로 제주도 밖으로 나간 여성은 김만덕 한 사람뿐이었다.

만덕이 세상의 본보기가 되자, 영의정 채제공은 <만덕전>이라는 전기를 썼고, 제주에 유배온 추사 김정희는 ‘은광연세(恩光衍世,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퍼지다)’라는 찬양의 글을 지어 만덕의 후손에게 전했다. 형조판서를 지낸 이가환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헌정하였다. “돌아오니 찬양하는 소리가 따옥새 떠나갈 듯하고/ 높은 기풍은 오래 머물러 세상을 맑게 하겠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올해 처음 2%를 밑돌고 내년엔 1.7%로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가 생존전략의 밑그림을 새로 짜야 한다. OECD는 2030년까지 한국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남성 수준으로 올라가면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의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향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 여성기업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요구된다.

현대 여성 기업인들의 ‘롤 모델’이자 시대를 뛰어넘은 주체적인 삶의 개척자. ‘조선 최초의 여성 기업인’ 김만덕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可憐解語敎坊依(가련해어교방의) 가련한 미녀는 기생이 되어 (힘든 몸) 의지했고

換骨成功莫着緋(환골성공막착비) 기적에서 벗어나 성공했으나 비단옷을 입지 않았네

救濟蒼生常願夢(구제창생상원몽) 이재민을 구호하여 늘 품고 있는 소원 꿈 이루었고

御前拜謁宿望希(어전배알숙망희) 임금을 뵙고 오랜 소망(금강산 구경) 이루었네

揚揚驂馬蓬萊向(양양참마봉래향) 득의한 모양으로 참마 타고 봉래산으로 향하니

耿耿千峯楓嶽暉(경경천봉풍악휘) 높고 먼 수많은 봉우리 풍악산은 빛나네

大德淸流今不渴(대덕청류금불갈) 큰 덕은 맑게 흘러 지금도 다함이 없으며

三無傳統蔚然歸(삼무전통울연귀) 도둑, 거지, 대문 없는 ‘3무 전통’ 크게 성했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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