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여러 곳에서 제기된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부당한 공격임이 금방 드러난다. 내용도 제대로 모르면서 정부를 비난하는 부분에 대해 예산당국이 필요한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세금을 내는 국민이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정부에 있다. 실제로 지난 문재인정부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로부터도 국정감사와 결산심사 과정에서 R&D의 낮은 목표와 성과, 단기 현안에만 치중하는 근시안적 몰아주기, 중소기업에 보조금 나눠주다시피 하는 R&D 예산 등에 대한 지적과 비판이 꾸준히 있었다. 과학기술계에서도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결국 이번 R&D 예산 정상화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의미다.

108천억 수준이던 R&D 예산이 2023년에 311천억으로 늘었다. 10조에서 20조로 배 가까이 증가하는 데 11(2008~2019)이 걸렸는데, 20조에서 30조로 늘어나는 데는 고작 3(2020~2023)이 걸렸다. 연간 3조원 이상씩 급격하게 증가해온 셈이다. 게다가 예산이 그만큼 투입되었으면 그에 비례한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2021년의 경우만 보더라도 과제당 2억원이하 R&D 과제가 53천여개로 70.4%나 차지했다. 충분한 과제 기획, 연구, 설계 준비도 없이 그저 나눠주기식으로 사업을 확대해온 꼴이다.

그러다 보니 쉬운 과제만 하고 제대로 평가도 안 되는 잘못된 관행이 만들어지고 도전성과 혁신성은 갈수록 상실됐다. 실제로 2021년의 기초연구 수혜율은 37.2%에 불과했고, R&D 성공률은 99.2%로 나타났다. 하기 쉬운, 하나마나한 연구를 했다는 의미다. 2022년의 경우 상위평가를 받은 과제 129개 중 미흡한 것은 고작 1건이지만, 미국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구축한 국제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인 SCI(Science Citation Index) 논문은 세계 12위에 불과하다. 특히 미국, 일본, 유럽 특허청에 모두 등록된 삼극특허(三極特許)’는 일본이 17천 건, 미국이 13천 건인에 비해 우리는 고작 3천여 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한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원의 R&D 규모는 선진국 수준이지만, 나홀로 연구에 매몰되어 시장성도 없는 소위 장롱 특허만 양산하는 경우가 허다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공공연구소의 2020년기준 기술료 수입은 39천만불에 불과한데, 이것은 미국 1개 대학(텍사스 시스템대학) 수준에 불과하다. 2019년기준 연구비 중 해외재원 비중도 영국이 14.5%, 프랑스가 8.1%, 독일이 7.4%에 이르지만, 우리는 고작 1.6%에 불과한 실정이다. 가만히 앉아서 나라 곳간만 바라본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R&D 예산을 정상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세금을 부담하는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런 내용을 모르는 국민이 야당을 비롯한 일부의 막무가내식 선동에 넘어가 잘못 판단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정부에 있는 것이다. 혈세를 나눠 먹기에 낭비하거나, 실용성도 없는 껍데기 연구개발에 낭비하는 것을 용납할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비효율과 낭비 요인을 없애고 혁신적 R&D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으로 정상화해야만 하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기초연구의 총량은 일부 축소하고 과제당 연구비는 확대하며, 중소기업에 대한 보조금 성격의 R&D도 고위험-고성과 기술과 초기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상화해야만 한다. 아울러 정부출연연구소의 경우도 유사·중복사업을 조정하고, 장비를 공동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등 효율성을 제고해야만 한다.

일부 정부출연연구소나 대학 등에서 연구비 축소에 대한 신진연구자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부와 정부출연연구원, 4대 과학기술원(KAIST, GIST, DGIST, UNIST)은 이미 지난 1011, 내년도 박사후연구원(postdoc) 지원 규모가 축소되지 않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필요시 각 기관이 보유한 기술료 등 준비금과 연구개발 적립금으로 충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각 기관들이 정부 R&D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민간과제 수탁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경쟁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연구비 중 해외 재원의 비중을 확대하려는 노력도 해야만 한다. 정부가 떠먹여 주는 돈만 받아서 연명하겠다는 의존성을 버려야 혁신적 연구환경도 만들어진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연구자 인건비 등 꼭 필요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에 대비한 적절한 보완방안은 미리 강구되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곡식이 자라야 할 논밭에 잡초가 자라도록 비료만 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내실없는 껍데기를 걸러내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직무를 유기하는 셈이다. 잡초는 가차없이 뽑아내고 좋은 작물이 왕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R&D 예산을 정상화하려는 정부 노력에 박수는 못 치더라도 재를 뿌리면 되겠는가. 더군다나 지난 정부 5년간(2018~2022) 평균(243천억)보다 더 많은(259천억) R&D 예산을 이번에 반영한 사실을 국민이 제대로 알고나 있을지 의문이다. 예산 당국의 충분한 국민 사전 설명이 필요한 이유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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