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기우 언론인]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쇄신안이 잇따라 파열음을 내면서 당이 둘로 쪼개졌다. 인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괜찮은 스타 의원들이 어려운 곳, 서울로 오는 게 상식 아닌가. 주호영도, 김기현도 스타라며 영남권 중진 의원들의 험지 출마를 촉구했다. 이어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연임 금지카드를 꺼내 들었다. 혁신위에 주어진 최대 과제이자 민감한 현안을 건드렸다는 평가다. 그런데 인 위원장은 이 인터뷰가 오보라고 하는가 하면, 국민의힘 영남권 의원들이 혁신안에 반발하며 인 위원장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인 위원장의 혁신위가 민심과 괴리된 환부를 과감히 도려낼 목적으로 출범했지만 당초 의도와 달리 민심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부작용을 낼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여권 내에선 인 위원장이 지목한 김기현 대표부터 수도권 출마 선언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위원장이 귓속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위원장이 귓속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3선초과 연임금지까지 인요한 혁신안 영남중진들, “물갈이 수단
김기현 대표 수도권 출마시 영남권 중진들 도미노 출마이어질듯

인요한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스타들은 서울에서 출마해야 한다”,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은 인터뷰를 통해 김기현 대표와 주호영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기도 했다. 인 위원장은 최근에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공무원도, 구청장도 3번 이상 못 한다“3번 하고 지역구를 옮기든지 굉장히 많은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오가고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처음에는 통합, 그 다음에는 희생이라며 “(3선 이상) 인기 있고 노련한 분이면 지역구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사실상 김기현 당 대표를 비롯해 장제원 의원 등 윤핵관도 포함된다.

인요한 혁신위에 반발하는 영남권

당내에서는 인 위원장의 발언을 반기는 분기였지만 영남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김용판 의원은 인 위원장이 낙동강 하류 세력 운운하며 TK시도민들에게 깊은 영혼의 상처를 줬다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TK신도민들은 우리 당이 어려울 때 우리 당을 지켜왔고 자유우파 대한민국을 지켜온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낸 곳도 TK”라며 그런 자긍심을 갖고 있는데 뒷전 서란 말 자체가 마치 잡아놓은 고기 취급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승만 정권 때도 4·19 혁명에 앞서 대구 학생들이 봉기한 ‘2·28 민주운동이 일어났을 만큼 대구는 깨어있는 곳이라며 요즘 대구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기각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에, 거기에 기름부은 것이 인 위원장의 낙동강 하류 세력 뒷전발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인 위원장이 우리 당 잘 되라고 좋은 취지로 말했다지만 중요한 것은 말한 사람의 취지가 아니라 듣는 사람의 입장이라며 “TK시도민들을 잡아놓은 고기 취급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건 해당행위에 준하는 언동이다. 인 위원장이 정중히 사과하는 게 맞다고 재차 주장했다. 우리 당이 영남당이미지를 탈피해야한단 지적엔 큰 틀에서 동의한다면서도 영남권 탈피 전략이 영남권 무시하고 잡아놓은 고기로 취급해서 민주당 잘 되게하는 것으로 가면 실패한다고 했다.

5선인 조경태 의원은 수도권만 험지라는 인식은 맞지 않다민주당이 점유한 영남 험지 지역에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그게 빠져 있다고 했다.

여권 위기 본질 외면한 혁신위

영남 중진들의 수도권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 지난 총선에서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중진 의원들을 험지로 보냈지만 실패했다. 서초갑에서 3선을 한 이혜훈 의원은 서울 동대문을, 경북에서 3선을 한 김재원 의원도 서울 중랑을에서 떨어졌다. 당 대표까지 지낸 황우여 전 의원도 야당 세가 강한 인천 서구을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민주당에서는 김부겸 전 총리가 군포에서 3선을 한 뒤 고향인 대구로 출마해 낙선했다가 2016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당선되기도 했지만 그 이후엔 대구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이와 관련, 홍준표 대구시장은 콜로라도 주 의원을 워싱턴 D.C에 갖다 놓으면 선거가 되겠냐라고 비꼬았다. 영남권 중진 의원들도 영남 중진이 그렇게 만만하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수도권 승리 전략보다 영남권 물갈이 수단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의원은 과거에도 수도권 험지 출마론은 누군가를 빼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면서 영남 지역구 출마를 노리는 신인에겐 무혈입성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영남은 전체 65석 중 56(86%)을 국민의힘이 차지했을 정도로 여권에선 꽂으면 당선되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여권 내에선 대통령실 인사들이 영남권에서 총선 출마 채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용산 인사들을 앉히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김 대표가 고개숙여 전화를 받고 있다. 뉴시스
김 대표가 고개숙여 전화를 받고 있다. 뉴시스

특히 혁신위의 대사면(징계 일괄 해체)’ 추진에 대해서도 우려를 제기했다는 후문이다. 실제 인 위원장이 혁신위 첫 공식일정으로 광주를 찾아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을 참배했는데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할 수 없다등 설화로 지난 5월 당원권 정지 1년을 받아 내년 총선 출마가 어려운 김재원 전 최고위원의 출마 길을 열어주는 게 쇄신책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나아가 용산 대통령실과 여당의 수직적 당정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화하지 않고선 내년 총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다. 국민의힘 수도권 원외 인사들도 수평적 당정관계 재정립같은 쇄신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수직적 당정관계 개선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혁신위가 들어서면 친윤계가 압박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있었지만, 현재까지는 그런 움직임이 없다. 이에 대해 김용남 전 의원은 지금까지의 왜곡된 대통령실과 당의 관계에 책임있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혁신위가 제안한 영남 중진 의원 수도권 차출설부터 삐그덕거리는데 친윤계를 압박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과 함께 혁신위가 여권 위기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기현 수도권 출마 받고 혁신위 힘 실어주나

이 같은 논란이 일자 당내에서는 김기현 대표가 혁신위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김 대표는 인 위원장에게 전권을 주겠다고 강조한 만큼, 김 대표가 결단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김 대표가 수도권 출마를 선언해야만 그 울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김 대표에게 총선 승리를 위해 수도권 출마 결단을 내려 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에 김 대표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강서구청장 패배 직후 이철규 전 사무총장이 수도권 민주당 중진 의원의 지역구 출마 선언으로 김 대표와 함께 선거 패배 책임에 대한 배수진을 치려 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험지 출마는 위험한 도박과 같기 때문이다.

다만 단번에 대선 잠룡으로 몸값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다. 대표적 사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98년 서울 종로에서 보궐선거에 당선됐으나, 16대 총선에서 험지인 부산 북·강서을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워 무모한 도전에 나섰던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때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었고, 2002년 대선에서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런 가운데 김 대표가 정치적 결단을 보여줄 기회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서구청장 패배로 수도권 민심이 야당으로 이동한 것을 확인한 김 대표로서는 서울로 지역구를 옮기는 전략적 선택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당내에서 영남권 인사가 총선을 이끌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만큼, 수도권으로 출마해 이 같은 비판을 피하는 동시에 수도권에서 당선될 경우 국민의힘 내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30경기 김포시가 서울시에 편입될 수 있도록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김포지역 출마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수도권 출마는 험지가 아닌 사지찬반 팽팽

수도권 출마를 선언한 부산 지역구 의원 하태경 의원. 뉴시스
수도권 출마를 선언한 부산 지역구 의원 하태경 의원. 뉴시스

다만 김 대표가 혁신위가 거론한 수도권 출마 카드를 받을지 말지에 대한 여부를 놓고 당내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윤상현 의원은 영남 의원들이 수도권에서 당선될 만한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서울 출마는 험지가 아니라 사지라며 김 대표가 쉽게 결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김 대표가 총선을 5개월 앞둔 현 시점에서 결단을 내리기에는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한 최고위원은 대표가 총선에 임박해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칼을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도 의미가 있다너무 일찍 다 써버리면 진짜 위기가 왔을 때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가 공천이 본격화되는 연말 연초가 되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혁신위에서 아직 제안해온 바가 없다제안을 정식으로 해오면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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