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윤석열 대통령이 확 달라졌다. 내년 422대 총선에서 비상등이 깜박거리면서 국정운영 기조를 전면 전환했다. 핵심은 이념에서 민생으로. 분수령은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다. 접전 예상과는 달리 참패를 기록하면서 후폭풍이 극심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통령 지지율 하락 총선 패배 조기 레임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갈 길 바쁜 윤 대통령으로서는 반전의 승부수가 필요했다. 그동안 공산전체주의 세력과의 전면전을 선언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미중 패권경쟁의 가시화 속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의 여파로 대내외적인 경제환경은 여전이 녹록지 않는 상황이다. 특히 외식·장바구니 물가급등에 따른 민심 이반도 적지 않다. 야당의 공세 역시 윤 대통령의 경제성적표를 정조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에 민생경제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로 위기를 탈출하겠다는 전략이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윤 대통령의 승부수를 파헤쳐봤다.

국회 시정연설하는 윤 대통령. 뉴시스
국회 시정연설하는 윤 대통령. 뉴시스

지지율 하락에 총선 위기감민생 위주 국정기조 대전환
공산전체주의이념 벗어나 연일 민생현장 챙기며 강행군
- 카카오·은행 독과점 질타소상공인·자영업자·서민 지원 강화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이념과 민생 사이에서 다소 애매한 스탠스를 취해왔다. 지난 8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8월 말에는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과 지향할 가치에서 중요한 게 이념이다.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 실용은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강력했던 이념전선은 허물어졌다. 극적인 스탠스 변화는 내년 총선의 위기감이다. 30%대 초중반의 지지율 정체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정치적 텃밭인 대구경북(TK)에서마저 경고등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최근 윤 대통령의 주요 일정을 살펴보면 키워드는 소상공인·자영업자·서민이다. 통치의 근본은 민생경제라는데 방점을 찍고 있는 모양새다.

, 보선참패 비상등 민생현장 더 파고들겠다

윤 대통령이 최근 민생경제 최우선주의를 내건 표면적 이유는 강서구청장 참패다. 윤 대통령은 선거 패배 이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된다 저와 내각이 돌이켜보고 반성하겠다 등 낮은 자세를 강조했다. 이후에도 반성과 소통을 강조했다. 내년 총선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국정기조의 대전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이념을 강조해왔던 모습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 이후 강도 높은 이념전쟁을 이끌어왔다. 야당이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윤 대통령은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이러한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맹종·추종 세력들에게 굴복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전임 문재인정부와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정조준한 것이었다. 이어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도 비슷한 기조는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격언을 소개한 뒤 날아가는 방향에 대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우리는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뒤로 가겠다고 하면 그것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우리가 매몰됐다우리 당은 이념보다는 실용이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는 실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국가정체성과 이념을 강조한 윤 대통령의 노선은 역풍을 맞았다. 특히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을 둘러싼 반대여론과 맞물려 지나친 이념대결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 정부의 이념 위주 강경노선은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로 이어졌다.

이후 윤 대통령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국정의 무게 중심은 이념에서 민생으로 확실하게 이동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참모진들에게도 탁상행정을 경계하면서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를 강조했다. 민생현장에서 국민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다지이다. 윤 대통령은 용산의 비서실장부터 수석, 비서관 그리고 행정관까지 모든 참모도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국민들의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 살아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으라고 강조한 뒤 나부터 어려운 국민들의 민생 현장을 더 파고들겠다고 다짐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다독이기카카오·은행 직격탄

격려사하는 윤 대통령. 뉴시스
격려사하는 윤 대통령. 뉴시스

민생기조 전환은 윤 대통령으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는 대통령 지지율 조사에서 잘 드러난다.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국갤럽의 103주차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지난주보다 3% 포인트 하락한 30%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42주차 조사에서 27%르를 기록한 이후 6개월 만에 최저치였다. 반면 부정평가는 60%를 상회했다. 주요 이유는 경제·민생·물가분야에 대한 불만이었다.

윤 대통령이 선거패배 이후 꺼내든 카드는 의대 증원이슈였다.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난제였지만 과감하게 메스를 꺼내든 것이다. 실제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은 겉보기와는 달리 속으로 썪어가고 있다. 특히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와 수도권 빅5 대형병원으로의 쏠림이 가속화되는 지역의료 붕괴 위기는 심각하다. 무엇보다 의사들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다만 국민적 찬성 여론과 여야의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의대 증원은 의사들의 거센 반발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가 모두 실패했던 의대 증원 이슈를 윤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경우 재임 중 최대 치적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평가마저 나올 정도였다.

민생을 키워드로 국정기조 전환에 성공한 윤 대통령의 발걸음은 이후 현장을 향했다. 연일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개최한 비상경제민생회의였다. 이는 국민들이 실생활 속에서 겪은 어려움을 대통령이 직접 청취한 뒤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동안 비상경제민생회의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로 열렸지만 현장을 찾은 것은 생생한 소통을 위한 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 자리에는 택시기사, 자영업자, 주부, 회사원, 대학생 등이 대거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서민들의 삶을 살뜰히 챙기는 민생 대통령의 면모를 부각시켰다. 특히 카카오 택시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가 너무 심하다는 개인택시 기사의 하소연이나 대출을 많이 받았는데 금리가 껑충 뛰다 보니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젊은층의 하소연에도 귀를 기울였다.

윤 대통령은 회의 도중 독과점의 문제점을 강력하게 지적했다. 특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고금리·고유가·고물가로 고통을 겪은 가운데 시중은행은 사상 최대의 실적 속에서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것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은행의 독과점 행태는 정부가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월에도 예대마진에 따른 은행의 이자장사를 비판하면서 돈잔치라고 꼬집은 바 있다. 또 플랫폼기업의 독과점 횡포에 약탈적 가격이라고 해서 돈을 거의 안 받거나 아주 낮은 가격으로 해서 경쟁자를 다 없애버리고,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에 독점이 됐을 때 가격을 올려서 받아먹는 것이라면서 카카오의 택시에 대한 횡포는 매우 부도덕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기업명을 언급하면서 단호한 조치를 촉구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윤 대통령의 질타는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수수료 체계 전면 개편을 위해 택시 기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긴급 간담회를 개최하기로 했다며 전면적인 수수료 체계 개편을 약속했다. 금융당국 역시 시중은행들의 수신경쟁 심화에 따라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대출이자 부담이 늘지 않도록 적극적인 후속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상경제민생회의 개최해 일반시민과 대화하는 윤 대통령. 뉴시스
비상경제민생회의 개최해 일반시민과 대화하는 윤 대통령. 뉴시스

이재용·최태원·구광모 비공개 만찬위기극복 SOS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의 최근 변화가 눈부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난달 31일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도 눈여겨볼 만하다. 윤 대통령은 경제 23, 민생 9, 물가 8번을 각각 언급하면서 물가와 민생안정을 최우선에 두고 총력 대응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취임 첫해인 2022년 국회 시정연설에서 방만 재정이라는 표현으로 전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강도높게 비판한 것과 대비된다.

시정연설 후일담도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요청에 응하지 않았지만 이날 이재명 대표와 3차례의 악수를 비롯해 사전환담을 나누면서 협치의 물꼬를 튼 것도 주목받았다. 또 시정연설문 초안에는 문재인정부를 겨냥한 비판 문구가 있었지만 윤 대통령이 초안을 검토한 뒤 직접 삭제했다는 에피소드로 알려졌다. 민생경제를 위한 여야 협치를 강조하는 마당에 민주당을 또다시 자극할 경우 또다시 이념대결이 우려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의 민생행보는 이후 탄력이 붙었다. 3일에는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에 참석, 대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소상공인 대회는 올해 18년째를 맞았지마 현직 대통령의 참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윤 대통령은 소상공인의 금융 부담 완화를 위해 저리융자 자금 4조 원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고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특단의 지원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소상공인에게 지원의 손길을 힘껏 내미는 따뜻한 정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다급한 윤 대통령은 재계총수들에게도 SOS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과 재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을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비공개 만찬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표면적인 이유는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여러 차례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뒤풀이 차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민생경제 회복과 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인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을 당부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정치는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중도층으로의 외연확대는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게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나타난 민심이라면서 대내외적인 경제환경의 악화 속에서 민생 위주로 국정 기조를 전환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대통령의 정치적 승부수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념에서 민생으로 급반전한 대통령의 변화를 민심이 어느 정도 진정성있게 받아들이느냐는 최대 관건이라면서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보다는 민생경제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나간다면 야권 우위로 예상되는 내년 422대 총선 판세 역시 적잖은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