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의 지지부진'… 청년 표심 의식 여야, 총선 전 결론 어려울 전망

사진1)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가 열린 지난 10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에 참석한 노동계 위원이 연금개혁에 대한 항의 피켓을 올려두고 있다. [뉴시스]
사진1)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가 열린 지난 10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에 참석한 노동계 위원이 연금개혁에 대한 항의 피켓을 올려두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국민연금 개혁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 10월 27일 국민연금심의위원회는 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안)을 발표하고 30일 국회에 제출했다.

종합 운영계획안에는 노후 소득 보장 강화, 세대 형평과 국민 신뢰 제고, 재정 안정화, 기금운용 개선, 다층노후 소득 보장 정립 등 5개 분야 총 15개 과제를 담았다.

가장 큰 관심사였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 구체적인 수치가 포함되지 않아 ‘맹탕’ 개혁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복지부는 이번 개혁안에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 점진적인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소득대체율 상향 시 미래세대 부담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방향성 정도만 담았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판단이 깔렸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 숫자 빠진 연금안에 혼란 키워…개혁위원회 주도 해외 사례 주목
- 시민단체 "연금 개혁 정부안, 알맹이 없는 내용 짜깁기한 수준"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1년 넘게 논의한 끝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지난 2월 정부에 공을 넘겼지만, 바통을 받은 정부도 결국 핵심 내용이 빠진 '맹탕 안'을 확정해 국회로 떠넘겼다.

이에 야당은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숫자 없는 맹탕'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성주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무언가 실려 있는 수레가 오기를 학수고대 기다렸는데 아무것도 없는 빈 수레를 보내 실망스럽다"며 "(이번 정부 연금개혁안은) 정부가 역할을 포기한, 한 마디로 정부가 없는 무정부 대책"이라고 밝혔다. 김 수석 부의장은 국회 연금개혁특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다.

김 수석부의장은 "정부가 18개의 시나리오만 제시하고 이걸 국회에다가 넘겨서 국민 동의를 얻겠다고 한 것"이라며 "어렵고 중대한 연금 개혁에 정부가 나서지 않고 국회와 국민의 모든 공을 떠넘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2개의 연금개혁안을 내놨을 때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던 사실을 언급하며 "5년 전 문재인 정부보다 더 후퇴한 18개의 가상 시나리오만 제시하고 국회보고, 결정하라고 떠넘겼다"라고도 덧붙였다.

김 수석부의장은 최근 대두되고 있는 보험료율 세대별 차등 인상안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아주 특이한 안"이라며 "청년 세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이것은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설익은 주장으로 보인다"고 했다.

- 연금행동, "소득대체율 50%로 높여야"

노동·시민단체들도 비판 성명을 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최근 '맹탕 연금개혁안,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논평을 통해 "단일 안은커녕,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등 핵심적인 숫자는 아무것도 없고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되는 맹탕 연금개혁안"이라며 "제시된 정보도 잘못됐고 도출한 결론도 이상한 과제 짜깁기 수준의 계획을 정부안으로 제시한 현 정부의 수준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에 따르면 운영안에 담긴 ‘OECD 가입국과 비교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유사’하다는 내용은 틀렸다고 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31.2%로 의무 연금 OECD 평균 51.8%의 60% 수준이라는 것.

또한 ‘기초연금 도입 이후 노인빈곤율이 지속 완화됐다’고 하지만 이는 기초연금만의 효과가 아니며, 상당 부분 66~75세 사이의 국민연금 수급률 제고와 수급액 개선에 의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오히려 DC 전환,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 연령별 차등 보험료 부과 등 국민연금 제도 근간을 흔들고 망치는 국민연금 죽이기 계획"이라며 종합 운영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줄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보장성을 강화하는 안을 담은 대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대안 보고서에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까지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50%까지 높이는 안이 담겼다.

재정계산위가 '2093년까지 적립 기금 유지'라는 개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안으로 제시한 몇몇 시나리오에 비해 보험료율 인상 폭이 작지만 높은 수준이다. 대안 보고서 집필에 참여한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둘은 재정계산위 소속이었으나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소수 안으로 표기하는 것에 항의하며 사퇴한 바 있다. 

정부는 국회에서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를 열어 "정부의 이번 국민연금 종합 운용계획안을 두고 '숫자가 없는 맹탕'이라거나 '선거를 앞둔 몸 사리기'라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면서 "최고 전문가들과 80여 차례 회의를 통해 과학적 근거를 축적했고, 24번의 계층별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의견을 꼼꼼히 경청하고, 여론조사를 실시해 일반 국민 의견도 철저히 조사했다. 이를 기반으로 방대한 데이터 자료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연금 개혁의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우리 정부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정부는 연금 개혁에 대한 의지 없이 4개 대안을 제출해 갈등만 초래했다"면서 "우리 정부는 이러한 전철을 반복하지 않고 제대로 된 연금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착실하게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렵고 힘들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민께 드린 약속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연금 개혁은 법률 개정으로 완성되는 만큼, 정부는 국회의 개혁 방안 마련 과정과 공론화 추진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17년째 포퓰리즘 헛바퀴...언제쯤 개혁될까 

결국 연금 개혁의 ‘공’을 넘겨받은 국회는 이달 말 종료되는 연금 개혁특별위원회의 활동기한을 내년 5월까지 연장하는 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고, 이후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 방향과 향후 과제'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 동안 연금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상황"이며 "재정 안정화, 충분한 노후 소득 보장, 세대 간 형평성 등 3대 연금 개혁 원칙을 완수하기 위해 추가적인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총선을 1년 넘게 남겨놓은 상황에서도 이루지 못한 합의다. 결국 연금 개혁은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넘어가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일본과 영국은 각각 4년과 12년 만에 개혁안을 완수했지만 우리는 17년 동안 포퓰리즘에 헛바퀴를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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