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삭감이 확정되자마자 내부에서 대책회의가 열렸다. 신규 사업은 아예 편성할 수가 없고, 박사후연구원이나 학생연구원은 상당수 내보내야 할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가 내년도 R&D (연구개발) 예산을 13.9% 삭감한다는 발표가 난 뒤 정부출연연구소 고위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는 “대통령이 과학기술을 강조하는데 정작 예산을 수십년 만에 대폭 삭감하는 정 반대의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으니 이해할 수가 없다”고도 했다. 별다른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었던 비결은 뛰어난 기술력을 가졌기 때문, 이 지위를 유지하려면 앞으로도 기술개발에 돈을 써야 하는 건 당연하다. 국난이라 할 1997년 외환위기 때마저 많은 과학자가 ‘이럴 때 R&D 예산을 줄이는 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 적 있는데, 우리나라가 21세기 들어 G7에 맞먹는 세계적인 강국이 된 비결도 R&D 예산을 지속적으로 늘린 덕분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91년을 제외하면 국가 차원의 R&D 예산이 삭감된 적은 한 번도 없어서, 2008년 10조원을 넘긴 데 이어 박근혜 정부 때는 16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연구개발 분야가 만능은 아니다. 쓸 곳은 많고 쓸 돈은 부족한 현실에서, 연구개발비라고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2010년대 들어 대한민국은 이미 연구개발비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였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GDP대비 연구개발비 비중 순위는 2013년 2위에서 2014년 1위, 2015년 2위, 2016년 2위였다.” 그 이듬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5년간 국가부채가 400조 늘어나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돈 잔치가 벌어진 그 시절, R&D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7년 19조 5천억이던 국가 R&D 예산은 2022년 29조원을 넘어섰다. 불과 5년만에 10조원이 늘어난 것이다. 예산이 늘어난 만큼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높아졌다면 모르겠지만, 기술력이란 게 돈을 무한정 쓴다고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그 대신 눈먼 돈을 노리는 세력만 파리떼처럼 몰렸다. 반일 광풍이 불던 2019년, KBS가 보도한 ‘주인 없는 돈’을 잡아라…R&D 브로커 기승‘이란 기사를 보자. “특별법까지 만들며 20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소재·부품 산업이 일본의 수출 규제 한방에 맥없이 흔들리자,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소재·부품 연구개발에 5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예년에 비하면 배 가까이 늘어난 금액인데요. 시장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갚을 필요도 없고, 결과가 미흡해도 ‘가능성을 봤다’고만 하면 넘어갈 수 있는 돈, 이런 돈이 넘쳐날 때 못받는 게 바보다. 하지만 이 돈을 따내려면 준비할 서류가 준비할 서류가 많으니, 브로커가 이 작업을 대신해주고 연구개발비의 6%를 받는다는 게 KBS 기사내용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연구비를 부정하게 사용하는 일도 빈번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신재생에너지 연구개발(R&D) 자금'을 부정사용한 사례가 최근 3년간 급증한 것으로 18일 조사됐다.” 브로커가 돈을 따주고, 기업은 그 돈을 빼돌려 엉뚱한 곳에 쓰는 상황에서 유의미한 성과가 나올 리가 있을까? 당시 국제사회에선 <코리아 R&D 패러독스>라는 말이 나돌았단다. 한 해 30조에 달하는 돈이 R&D 분야에 쏟아지고, R&D 성공률도 99.5%에 달하지만, 실제 사업화에 성공하는 비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다고 조롱하는 말이었다. 사업화 성공률은 영국 70.7%, 미국은 69.3%, 일본도 54.1%지만, 우리는 20% 언저리에 불과했으니, 조롱할 만도 했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말을 했을까? “국가가 출연한 연구소의 연구과제 성공률이 무려 99.5%에 달합니다. 저는 이 수치가 자랑스럽지 않습니다.” 자랑스럽지 않다면 그때라도 정책을 바꿨어야 하지만, 문재인의 선심은 임기 말까지 계속됐다. 자, 다시 물어보자. 저 무의미한 돈잔치가 윤석열 정부에서도 계속되는 게 맞는가? R&D 예산 삭감이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폭거라고 우기는 민주당 분들께 다음 질문을 드린다. 그렇게 R&D가 중요하다고 하는 분들이 왜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 때는 과학자들의 말을 무시한 채 선동만 해댔니? 니들, 혹시 RD (Real Deungsin)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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