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넥슨·한미약품 상속세 내려 주식 매각... 짊어진 짐만 수두룩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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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 서울ㅣ이지훈 기자] 지난 7월 유산취득세 도입은 불발됐다. 이달부터 기획재정부는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개편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시작할 방침이다. 하지만 상속세 개편 필요성에 대한 여당 안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리며 향후 논의에 먹구름이 낀 상태다. 일각에서는 “다음 정부로 상속세 개편 문제가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며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 “‘경영권 약화 현실화’ 우려... 개편 필요성 거듭 강조
- ‘높은 상속세율로 인해 정부가 2대 주주 자리에 올라’

최근 삼성, 넥슨, 한미약품은 재산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주식을 매도했다. 우선 삼성그룹 오너일가는 상속세 마련을 위해 그룹 지배력의 ‘코어(대상의 중심부, 핵심)’라고 평가되는 삼성물산 주식을 처분했다. 

지난 6일 재계에 따르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지난 10월 31일 하나은행과 보유 중인 삼성물산 주식 120만5718주(지분 0.65%)를 처분하기 위해 유가증권 처분 신탁(공채, 사채, 주식 따위의 유가 증권을 신탁 회사에 맡겨 관리ㆍ운용ㆍ처분하게 하는 신탁하는 행위) 계약을 체결했다.

이 사장은 삼성물산 주식 이외에도 삼성전자(지분 0.04%), 삼성SDS(지분 1.95%), 삼성생명(1.16%)까지 4개 회사 지분을 분할적으로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장과 함께 홍라희 전 라움 관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도 10월31일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하나은행과 유가증권 처분 신탁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이 사장이 처분한 삼성물산 주식은 화두에 올랐다. 삼성물산의 지분 일부 매각이 결정되면서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 및 특수 관계인의 지분율 감소의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경영권 약화 현실화’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해외 자본의 삼성그룹 주식 매수세가 이어질 수 있고, 이에 따라 이재용 등 오너 일가의 삼성 지배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넥슨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2월 별세한 김정주 넥슨 창업자 유족이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에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 지분 29.3%(지분 가치:4조7000여억 원)를 물납(현금 대신 다른 재산으로 세금을 내는 것)했다. 

지난 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자산관리(캠코)는 “외부 회계 기관에 의뢰한 NXC 물납 주식에 대한 지분 평가 작업을 이달 말까지 끝낼 것이다”라고 밝혔다. 내달 말 정부가 보유한 넥슨 지주사 NXC 지분 29.3%를 온비드(On-Bid)를 통해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하기로 공고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NXC 전체 지분의 29.3%에 해당하는 85만2190주를 보유해 2대 주주가 됐다. OECD 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높은 상속세율로 인해 정부가 국내 최대 게임업체의 2대 주주 자리에 올라서는 유례없는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NXC 지분 매각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NXC 주식은 비상장주식이며 매각 예정 금액도 4조 원 중반대에 달하는 상황에서 매수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지난 5월 물납 당시 국세청은 NXC 지분 29.3%의 가치를 4조 7358억 원으로 평가했다. 주식 평가액에서 20%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한 금액이다.

한미약품의 오너일가는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사모펀드(PEF)에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약 3100억 원)를 매각했다. 과거에는 환매조건부계약과 주식담보 대출 등을 통해 상속세를 마련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높은 금리와 한미 사이언스 주가(지난 5월 기준)가 상속 당시의 금액을 밑돌아 결국 상속받은 주식을 매각해 상속세 자금 마련에 나섰었다.

추경호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추경호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대한민국의 상속세 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50%)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최대 주주의 주식에 대해 상속세율을 추가 부과하는 '최대 주주 할증평가 제도'로 인해 최대 상속세율은 60%까지 치솟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직계비속에 대한 기업 승계 시 한국의 실효세율이 58%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분석 결과를 내놨다. 주요 해외의 세율 같은 경우 미국은 40%, 독일은 30%, 영국은 20%로 한국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음을 알 수 있다. 

상속세의 명분은 부의 재분배를 통한 구조적 불평등 해소이다. 하지만 상속세가 불평등을 개선하는 효과보다는 소비 ·투자·고용 등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과도한 상속세는 편법·불법의 궁지로 기업을 내몰 수밖에 없다.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을 내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 등 우회로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2월 국제 출판 기업 와일리 블랙웰이 발행하는 학술지 퍼시픽이코노믹리뷰에 중소기업 전문 민간 연구기관인 파이터치연구원의 라정주 원장이 쓴 ‘가업 상속세 감면의 거시경제적 효과’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 시 상속세를 50% 감면하면 일자리가 0.13%, 총 실질 투자가 1.88%, 매출은 0.15%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택스파운데이션은 “상속세를 폐지하면 10년간 일자리가 약 15만 개 생기고, 경제 성장에 따라 소득세와 법인세 수입이 늘어 상속세 감소분을 상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속세의 명분은 부의 재분배를 통한 구조적 불평등 해소이다. 하지만 상속세가 불평등을 개선하는 효과보다는 소비 ·투자·고용 등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지난 10월20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추경호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속세 개편에 대해 “늘 논의를 진전시키다 보면 ‘부(富)의 대물림’에 대한 반감으로 벽에 부딪힌다”며“국회도, 사회적 여건도, 이를 받아들일 태세가 조금 덜 된 것 같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상속세 개편과 법인세 인하 불발에 대한 짙은 아쉬움을 담아 말했다.

추 부총리는 “상속세가 전반적으로 높고 개편에 관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점에는 큰 틀에서 공감한다”며 “지금 연구용역을 하고 있다. 상속세 전반보다는 유산세와 유산취득세 문제가 중심이긴 하지만, 우선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작업부터 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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