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비명(非明) 탈당시계 빨라지자 이재명 직격...‘호남 신당’ 포석?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뉴시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비명(비이재명)계 집단 탈당’이라는 시한폭탄을 품은 모양새다. 민주 비명계는 최근 자체 모임인 ‘원칙과 상식’을 출범시키며 당 도덕성 회복과 친명 지도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에 정치권에선 비명계가 탈당을 매개로 당을 향해 사실상 최후통첩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비명계 중진인 이상민 민주당 의원도 최근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과 만나 답답한 내부 상황을 토로하는 등 여당으로의 이적 가능성을 적극 타진하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귀국 후 몇 달간 정중동 행보를 보였던 이낙연 전 대표가 민주당 세 분화의 구심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 부상하고 있다. 그가 최근 한 언론을 통해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당의 도덕적 감수성을 퇴화시키고 있다”, “국민들이 민주당에 지쳤다”는 등의 수위 높은 메시지를 방출하는 등 돌연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직격하면서다. 이에 이 전 대표의 이러한 돌발 행보에는 탈당 확률이 수직상승 중인 비명계를 결집시키며 제3지대 진출을 노린 계산이 깔린 게 아니냐는 분석이 파다하다.

22대 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비명계 모임 출범부터 당내 비주류에서 대표성이 뚜렷한 이상민 의원의 ‘12월 거취 결정’ 발언에 이르기까지 중대 시그널이 다수 포착된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여권 인사 탄핵안 등 주요 당론마다 친명(친이재명)-비명 간 마찰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민주 총선기획단의 ‘현역의원 하위 평가 감산 확대’ 등을 골자로 한 공천 룰 변경 기조에 비명계의 저항이 거센 상황이다. 더욱이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딸)과 친명 원외조직 등을 중심으로 비명계를 향한 당 퇴출 요구와 비난이 쇄도하는 등 내부 진통이 극심한 양상이다.

민주 친명-비명 갈등, ‘봉합 불가’ 수준

심지어 일각에선 민주당 친명 지도부가 이제는 ‘계륵’을 넘어 ‘통제 불가’ 수준에 이른 비명계를 공천 전까지 어떻게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친명 원외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비명계 의원 지역구에 총선 출사표를 던진 것도 이러한 시그널로 해석됐다. 

이에 비명계 의원들도 당 주류와의 재화합은 불가하다고 판단, 탈당 가능성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민 의원은 비명계 지역구를 겨냥한 친명계의 자객공천 가능성을 거론하며 조정식 사무총장을 교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지도부 등 당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이 의원은 현재 탈당 후 국민의힘 입당을 사실상 결심한 상태다.

실제로 민주당 양대 세력은 이미 관계 회복이 힘든 지경에 접어들어 비명계 탈당은 기정사실화됐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비명계가 이르면 12월, 늦어도 1월 초에는 대거 탈당 수순을 밟을 수 있다”라며 “친명‧비명 관계는 이미 강을 건넜다고 봐야 한다. 당 지도부도 이상민 의원 등 비명계 목소리에 입과 귀를 닫은지 오래고, 비명계 이탈 대응에 방점을 둔 총선 전략까지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단식투쟁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단식투쟁천막에서 이낙연 전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단식투쟁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단식투쟁천막에서 이낙연 전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비명계 탈당 임박 속 이재명 때린 이낙연의 속내

민주당 내홍이 심화하는 가운데, 그간 활동이 잠잠했던 이낙연 전 대표의 최근 동향이 심상찮다. ‘친명 정점’인 이재명 대표와 친명 일색인 민주당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내며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한 것. 

그는 지난 11월 1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통해 민주당 지지율이 정체된 이유에 대해 “이제까지 국민이 봐 왔던 민주당과 다르고, 국민 일반이 가진 상식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라며 “국민이 (민주당에) 좀 질려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표) 본인의 사법 문제가 민주당을 옥죄고, 그 여파로 당 내부의 도덕적 감수성이 퇴화했다”라며 “사법적 문제가 다른 것을 가리는 현상이 장기화하고 있다. 굉장히 심각하다”고 이재명 체제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이 전 대표는 이재명 지도체제의 지나친 ‘획일성’도 문제 삼았다. 당 지도부를 포함해 총선기획단, 인재영입위 등 당내 기구들이 모두 친명 인사들로 채워졌다는 점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의 지난 6월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에 대해서도 “굉장히 인상적으로 민망했던 국면”이라며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서 공언했을 정도면 지켰어야 옳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아울러 그는 제3지대의 역동성을 강조하며 내년 총선의 최대 변수는 ‘제3신당 의석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전 대표는 “역대 총선 평균보다는 더 많을 것 같은 느낌은 든다”며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자가 많다. 직접 만나보면 꽤 공고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무당층마저도 진영화하고 있다고 하더라”라고 제3지대 역할론을 띄우고 나섰다.  

해당 인터뷰 내용을 종합해 봤을 때, 이 전 대표는 결국 현재 민주당 비명계가 주장하는 논리와 큰 틀에서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를 두고 야권에선 이 전 대표가 탈당을 고심 중인 민주 비명계를 끌어안으며 제3지대로 향할 것이란 관측이 고개를 든다. 이준석‧유승민 개혁보수 신당, 금태섭‧양향자 신당, 조국‧송영길‧추미애 신당 등 여러 군소집단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3지대에서 비명계 현역을 주축으로 새 물줄기를 트겠다는 이 전 대표의 구상이라는 분석이다. 이후 제3지대에서 이들 세력과 합종연횡을 시도하거나 ‘비명 신당’을 창당하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직격 인터뷰’ 이후에도 이 전 대표는 지난 11월 20일 설훈 의원 등 당내 친낙(친이낙연)계 의원들을 포함한 비명 측근들에게 “전우들의 시체 위에서 응원가를 부르지 않겠다”라며 ‘비명계 공천학살’이 현실화할 경우 내년 총선 유세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정치권에서 단순 유세 불참을 넘어 비명계 집단 탈당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시사한 발언으로도 해석됐다.  

민주당 비명계 모임인 '원칙과 상식' 멤버인 윤영찬 의원(좌)과 조응천 의원(우) [뉴시스]
민주당 비명계 모임인 '원칙과 상식' 멤버인 윤영찬 의원(좌)과 조응천 의원(우) [뉴시스]

비명계 핵심이자 이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윤영찬 민주당 의원도 이 전 대표가 사전에 ‘원칙과 상식’ 모임 취지에 동조했다고 밝히며 공개적으로 운을 띄운 바 있다. 이는 사실상 이 전 대표를 ‘비명계 리더’로 인정한 셈이기도 하다.  

야권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이 전 대표는 비명계와 꾸준히 소통을 이어가며 공천 리스크, 탈당 후 거취 결정 등에 대해 물밑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야권 고위 관계자는 “12월이면 이상민 의원의 탈당을 신호탄으로 비명계 (탈당)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 경우 이낙연 전 대표가 비명계와 함께 호남계 신당을 꾸리며 조국 신당 등과 적극 연계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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