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0년 뛰어넘는 고려거란전쟁서울의 봄교훈...무감각과 무능, 혼선과 측근전횡
- 한반도 군사불안·총선과 당권 극한투쟁·대통령실과 행정부 지휘공백...국정 3각파도 위기
- 모르고 귀찮아 국정·정치개혁 측근맡기면 나라망해...대통령 기댈곳 측근아니라 국민

1009강조의 정변을 시작으로 벌어진 2,3차 거란전쟁을 배경으로 한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198012.12 쿠데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다. 두 작품이 900여년이란 긴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성공(?)한 쿠데타뿐만 아니라 안팎의 시대적 배경과 원인이 비슷한 점들이 많다.

2차 거란전쟁의 빌미가 된 '강조의 정변'은 중추사 우상시 강조(康兆) 서북면 도순검사(西北面 都巡檢使)가 고려 제7대 목종이 시해 당했다는 가짜정보에 속아 군을 움직였다가 천추태후와 김치양 일당은 물론 목종까지 시해하고 후일 현종이 되는 대량군을 왕위에 올리고 권력을 탈취한 고려판 쿠데타다. 이에 거란 요나라 성종은 1차거란전쟁 다시 서희의 담판으로 내어준 강동 6주 탈환을 위해 강조 등 반란군을 징벌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40만 대군을 끌고 침입해 고려는 쑥대밭이 됐고 강조는 성종에게 생포되어 처형당했다.

영화 '서울의 봄'은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과 육군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가 일으킨 군사쿠데타를 배경으로 전두광(전두환) 반란군과 이에 맞선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장태완) 진압군 사이에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숨 막히는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렸다. 전두환과 하나회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일당을 색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쿠데타에 성공했으나 후에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학살 주범으로 처벌됐다.

시작과 끝이 최측근에 의한, 최측근의 반란이라는 점도 같다. 목종은 가장 가까운 어머니와 불륜남에 의해 시해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불러들인 측근 강조에 의해 시해 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최측근인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간의 알력을 관리하지 못해 김재규 부장에게 시해 당했다.

비상시 외적에 맞서야 하는 최전방부대가 쿠데타 핵심전력으로 동원된 점도 같다. 강조는 지금의 평안도 일대와 북쪽 최전방에서 거란침입을 방어하는 서북면을 총괄 방어하는 최고 군 지휘관이었다. 12.12쿠데타에는 후에 대통령이 되는 노태우 장군이 맡고 있던 9사단이 동원됐다. 9사단은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도 우리나라 최전방 예비사단이다.

900여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두 역사물을 단순히 흥행 대작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지금 우리를 둘러싼 안팎의 위기 또한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우려 때문이다. ‘고려거란전쟁서울의 봄이 발생한 근본 원인은 국가지도자의 무능이 불러온 혼란한 국정상황이다.

지금 우리는 북한의 전략핵 고도화, 기한 없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3대 글로벌 이니셔티브' 등 한반도 주변 정세는 극히 불안한 상황이다. 내부는 더 심각하다. 비록 야당이지만 국가안위의 분명한 책임이 있는 절대 다수당 더불어민주당은 오로지 총선과 당권 승리를 향해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언제든지 국민들은 탱크로 밀어버리면...독재의 피, 독재적 발상”(정청래),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것”(김용민), “헌법이 규정한 탄핵 얘기를 안 하면 오히려 직무 유기”(민형배), “하나회와 검찰 특수부와 오버랩"(김남국) 등 국가와 국민은 뒷전이고 총선과 당권잡기에 급급하다.

한심스럽기는 국민의힘이 더 하다. 당내 통합과 혁신을 위해 만든 혁신위원회는 당내 주류 세력은 물론 이준석 전 대표 등 비주류 세력 모두와의 갈등만 증폭시키고 있다.

국가 최후의 보루, 대통령실과 행정부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정부출범 초 내세웠던 '모사드 같은 정보기관 국정원은 개뿔, 아예 인사 갈등에 투서질, 기업 관련 비위 의혹 등 한마디로 (고칠 개)판이다.

대통령실은 몇 달 주기로 거듭되는 김대기 비서실장 사표설에 수석과 비서관들의 총선 출마, 입각설 등으로 어수선하다. 정책을 담당하는 각 수석실은 제각각이어서 사실상 지휘 공백상태다. 대통령의 '세계 4대 방산수출국' 선언에도 최초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초도 생산에 대한 국방부와 한국국방연구원의 잡음도 어이없지만 행정비서관이 사업 입찰가를 알아보는 전화갑질을 하고 있다는 얘기에 기가 질린다.

중앙 부처 역시 마찬가지다. 장관 총선출마 등 개각설로 일선 공무원들은 손을 놓은 상태다. 출마하지 않는 장관들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문제적 정책에 대해서는 보고 금지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대학입시 개편, 공매도 금지, 4대연금, 의대생 증원, 일회용품 규제, 중대재해법과 근로시간 개편 등 뭐 하나 제대로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엉거주춤 이다. 여기에 그때그때 달라지는 용궁의 '방침'이나 뜬금없는 지시는 없는 영혼마저 지치게 만든다.

아무리 큰 배도 삼각파도를 만나면 견디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북한 등 한반도 군사 불안과 총선·당권밖에 없는 여야 극한투쟁, 대통령실과 행정부 지휘공백 등 거대한 3각 파도 한 가운데에 놓인 심각한 국정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국 한나라로부터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푸이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조가 망하는 데는 환관과 내시들의 전횡과 부패가 결정적 원인이었다. 고려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내관과 왕실이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환관과 내시를 동일시하지만 고려시대에는 왕의 시종중 거세된 남성이 환관이다. 내시는 재상에 오른 자가 무려 22명에 달할 정도로 왕명을 전하는 현재의 비서실, 측근 엘리트집단이다. 이름이야 어떻든 환관, 내시, 측근들의 최대 관심사는 왕의 심기다. 이들의 탁월한 능력은 왕의 심기를 불편케할 얘기는 줄이고 우쭐거릴 얘기는 부풀리는 것이다. 국정과 민생은 그 다음이다.

이들에게 둘러싸인 왕과 왕조는 망했다. 모른다고, 귀찮고, 골치 아프다고 측근에게 국정개혁, 정치개혁을 맡겨서는 안된다. 더 늦으면 안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측근들의 장막을 걷어내고 용산 밖의 탄식을 듣고 지혜를 구해야 한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라 하지 않든가. 대통령이 기댈 곳은 측근이 아니라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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