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 언론인] 예산전쟁이 막바지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여야의 극한대치가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을 여야가 어떻게 확정짓느냐는 매년 되풀이되는 연말 국회 최대 쟁점이다. 내년도 예산안 규모는 657조원이다. 악화된 경제사정에도 매년 여기저기서 돈을 달라는 곳은 많다 보니 천문학적인 규모의 예산안 배분을 놓고 치열한 제로섬 게임이 벌어진다. 여야의 국정철학과 비전·가치에 따라 주요 예산이 늘기도 하고 때로는 대폭 삭감되기도 한다. 특히 여야의 이견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헌법이 정한 예산안 법정 통과시한인 122일을 넘기는 경우도 다반사다. 총선을 앞둔 여야가 정치적 이슈에 함몰돼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예산안 심사를 날림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올해 역시 소소위에서 짬짜미 밀실 흥정으로 예산안 처리가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말 예산전쟁을 둘러싼 여야의 속내와 파워게임을 집중 분석했다.

내년 예산관련 시정연설중인 윤 대통령. 뉴시스
내년 예산관련 시정연설중인 윤 대통령. 뉴시스

이동관·검사탄핵 등 정치공방에 122일 예산안 법정처리시한 넘겨
R&D예산, 권력기관 특수활동비, 지역화폐·원자력·새만금예산 공방 치열
, ‘예산 수호 예산 삭감’ vs , 수적 우위 앞세워 상임위 단독처리

최대 쟁점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예산안의 처리 여부다. 국민의힘은 이른바 윤석열표 예산을 지키고 이재명표 예산 삭감 기조다. 민주당은 정반대의 기조다. 특히 과반이라는 수적 우위를 앞세운 민주당은 예산전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다. 정부가 대폭 삭감한 연구개발(R&D) 예산 및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의 부활을 강조했다. 특히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 이재명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지역화폐 예산은 국민의힘의 거센 반발에도 단독 처리했다. 윤 대통령의 상징이랄 수 있는 권력기관 특수활동비도 논란이다. 상임위 예비심사 단계에서 여야 충돌에 이어 예산국면 막바지에도 대립은 지속되고 있다. 내년 4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치열한 자존심 싸움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예산전쟁법정시간 122일 못지켜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국회 상황은 그야말로 시계제로였다. 민주당의 탄핵 추진에 반발한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사의 표명을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 수용했기 때문이다. 또 윤 대통령은 야당의 강력 반발에도 노란봉투법과 방송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메가톤급 이슈들이 얼키고설키면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는 후순위로 밀렸다. 탄핵 국면의 장기화에 여야의 예산안 협상이 사실상 올스톱된 것이다. 여야 정쟁 심화에 연말국회 최대 현안인 예산안 처리와 민생법안 처리가 물건너갔기 떄문이다.

여야는 이 과정에서도 상호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탄핵 추진에 매달리면서 예산안 처리는 뒷전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탄핵 추진을 막기 위해 예산협의를 고의로 지연시켰다고 꼬집었다.

여야의 예산전쟁은 해매다 되풀이된다. 다만 올해 상황은 예년보다 더 심각하다.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및 대장동 50억클럽 등 이른바 쌍특검 법안 처리가 최대 뇌관인 가운데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논란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내년도 예산안의 지각처리는 기정사실이다. 특히 민주당의 이동관 위원장 탄핵 추진 및 손준성·이정섭 검사 탄핵소추안 발의에 따른 강대강 여야 대치로 정국이 급랭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에는 여야 이견으로 1224일에야 예산안을 처리했을 정도다. 법정시한을 3주 가량 넘겼다. 실제 2014년 국회법 개정 이후 정부 원안의 자동부의제까지 도입됐지만 예산안이 법정시한 내에 처리된 것은 2014년과 2020, 두 번 뿐이다.

예산안 처리 과정은 국회법에 명시돼 있다. 1130일까지 국회 예결위의 예산심사 종료에 이어 법정시한인 122일까지 처리해야 한다. 지켜지지 않으면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에 처리해야 한다는 헌법 제45조가 사문화될 수밖에 없다. 애초 정부 예산안이 지난 9월초에 국회에 제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야가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본격적인 예산심사는 11월 들어서야 시작됐다. 지난달 1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소위를 열어서 내년도 예산안 세부심의를 지속해왔지만 쟁점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예결위 예산소위는 국회 예산심사의 최종 관문인데 주요 쟁점에 대한 여야의 이견차는 적지않다. 내년 총선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여야의 줄다리기에 공전만을 거듭했다.

여야는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129일 예산안 처리를 목표로 협상을 이어나간다는 방침이지만 강대강 대치 국면이 지속될 경우 합의 처리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정기국회 이후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별도 임시국회를 소집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내몰릴 수 있다.

악수하는 윤 대통령괴 이 대표. 뉴시스
악수하는 윤 대통령괴 이 대표. 뉴시스

R&D·지역화폐·특수활동비여야, 예산갈등 지뢰밭 즐비

여야의 예산안 심의는 충돌의 연속이었다. R&D(연구·개발) 예산 권력기관 특수활동비 원전·재생에너지 예산 새만금사업 관련 예산 등과 관련해 팽팽한 대치를 이어왔다. 여야 간사간 합의를 위해 노력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결국 예결위 활동시한인 지난달 30일까지 불발에 그쳤다. 민주당 9, 국민의힘 6명 등 15명으로 예결소위는 진지한 논의보다는 파행과 논란만을 겪었다. 이에 정의당은 국민의힘은 시간을 끌며 예산안 본회의 자동부의만 노리고, 민주당은 윤석열표 예산만큼은 깎겠다며 감액 수정안 엄포를 놓는다며 거대 양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여야는 이 과정에서 상대를 향한 비난을 쏟아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이름이 붙은 사업이면 묻지마 삭감을 하고 자당 대표 이름이 붙은 사업이면 단독 처리까지 불사하는 독단적 예산 심사를 벌인다고 성토했다. 민주당도 이에 맞섰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야당의 예산·법안 심사 요구를 피해 도망 다니며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지 않는 등 정부·여당이 국정의 발목을 잡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여야 예산전쟁의 최대 쟁점은 R&D예산과 검찰·경찰·감사원 등 사정기관 예산이다. 우선 국민의힘은 민생예산 보완을 기조로 민주당의 분야별 예산감액 요구를 비판했다. 특히 권력기관 예산삭감은 기능 약화 의도라며 구체적으로 대통령실 해외순방 예산은 국익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또 R&D 예산 삭감 논란과 관련, 일부 비판적 여론을 고려해 인재양성 분야에서는 증액을 추진 중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나눠먹기식 카르텔 해소를 위해 정부안의 기조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국회 예결위 국민의힘 간사인 송언석 의원은 권력기관 예산을 깎겠다는 민주당의 발상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권력기관 예산의 대폭 삭감을 공언했다. 용산 대통령비서실과 법무부, 감사원 등의 업무추진비와 특정업무경비 중 불요불급한 예산을 최소 5조원 가량 칼질하겠다는 것이다. 조정식 민주당 사무총장은 특히 검찰과 국정원, 경찰 등 14개 정부 기관의 특수활동비와 관련, “정부가 검찰 특수활동비는 올리고 불필요한 홍보성 예산을 늘리는 몰염치를 보였다. 국민을 기만하는 예산은 철저히 검증해 삭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를 기반으로 정부 예산안에서 대폭 삭감된 연구개발(R&D) 예산 지역화폐 예산 새만금 사업 예산 반드시 증액한다는 입장이다. 또 청년표심을 겨냥해 3만원만 내면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인 청년패스 예산 도입도 촉구했다. 국회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강훈식 의원은 국민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하되, 미래와 민생에 필요한 예산은 꼭 살릴 것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지역화폐와 원자력관련 예산안 관련 상임위 단계에서 수적 우위를 과시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석열정부가 전액 삭감한 내년도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의 7000억원을 증액했다. 민주당의 힘자랑을 열흘 후에도 이어졌다. 지난달 2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생태계 조성 관련 예산 1831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국민의힘 소속 산자위 의들은 이에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는 외면하고 재생에너지 만능주의만 고집하는 거대 야당의 시대착오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카톡·쪽지 밀실담합 의혹예결위 소소위 개편 필수

여야갈등의 장기화로 예산안 처리가 속도를 내지 못하자 약방의 감초처럼 ()소위가 가동됐다. 소소위는 예결위 소위원회 내부의 또다른 작은 소위원회다. 참여 인원은 극소수다. 민주당 소속 서삼석 예결특위위원장, 예결위 여야 간사인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과 강훈식 민주당 의원, 기획재정부 2차관 등이다. 다만 소소위는 법적 근거없이 임의로 열린다. 이 때문에 비공개로 진행되는 것은 물론 회의록도 작성하지 않는다. 언론과 시민단체감시의 눈길이 전혀 닿지 않기 때문에 온갖 흥정과 민원이 오간다.

소소위는 한국 정치의 최대 악습 중 하나다. 기원은 200818대 국회 정기국회 시절이다. 여야가 예산안을 놓고 접점을 마련하지 못하자 예결위 소위 내의 작은 소위원회라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이후 여야의 예산논의가 매년 다람쥐 쳇바퀴를 돌 때마다 관행으로 굳어지면서 소소위는 사실상 상설화됐다. 서삼석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소소위의 쪽지예산 우려에 예산심의는 공개적인 회의를 통해 투명하게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부 쟁점은 불가피하게 위원장과 간사 등 소수 위원이 위임받아 효율적으로 논의할 필요성도 있다면서도 밀실 협의, 쪽지예산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논의 대상이 사전에 투명하게 확정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삼석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장과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 및 여야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2023.11.20. 뉴시스
서삼석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장과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 및 여야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2023.11.20. 뉴시스

현실은 정반대다. 공개적인 예산심의 국면에서 여야는 서로의 명분을 내세우며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인다. 다만 밀실 짬짜미 심사라는 혹평이 나오는 소소위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총선을 겨냥한 여야가 서로 선심성 포퓰리즘 예산을 주고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호 총선용 예산 증액을 눈감아주는 정치적 흥정이 만연하는 것이다. 대내외적인 경제환경 악화에도 아랑곳없이 너도나도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나서는 것이다. 때로는 여야의 실세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타내기 위해 쪽지예산 경쟁이 과열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카카오톡을 통한 민원이 빗발치면서 카톡예산이라는 신조어마저 생겨났다. 정의당은 이에 예산심사에서 소소위의 비공개 활동 제한을 골자로 하는 예산정상화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예산심의권은 입법부인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주요 권한이다. 국가정책의 기본적 설계와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을 되살릴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는데 매년 늑장심사는 기본에 졸속 부실심사가 지속되고 있다수출·내수의 쌍끌이 부진으로 최악의 세수부족에 직면한 만큼 혈세를 보다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여야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657조원 규모의 천문학적인 예산이 극소수의 인사만이 참여한 소소위에서 밀실흥정으로 결정되는 것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코미디같은 상황이라면서 예산안 졸속심사와 포퓰리즘 방지를 위해 소소위의 비공개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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