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가고 나면 열리는 법‘이라고 루쉰(魯迅)이 말했다. 우리 역사에서 ‘전인미답(前人未踏)’ 길을 개척한 전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구도(求道)의 길을 따라 인도까지 걸어서 갔다 온 순례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신라 사람 아리나발마(阿離那跋摩)는 불교의 본모습을 보러 중국에 유학하였는데, 마침내 ‘오천축국(五天竺國, 인도 북부지방의 부처님 출신국을 비롯한 다섯 나라)’까지 이르렀다.

인도까지 ‘구법(求法, 불법을 구함)여행’을 한 신라 승려들은 아리나발마를 비롯해 무려 9명이나 된다. 그러나 구법의 길을 나선 대부분의 승려는 생불(生佛)이 되는 대신 사막에서 해골이 되었다. 아리나발마는 ‘돌아오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나란타사(那蘭陀寺)에서 죽었다.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사막에서의 체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막에는 악령의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홀려, 길을 잃고 죽어간다.” 일연 스님은 ‘귀축제사(歸竺諸師, 끝내 돌아오지 못한 길)’ 조의 끝에 이런 시 한 구절을 남겼다. “외로운 배 달빛 타고 몇 번이나 떠나갔건만/이제껏 구름 따라 한 석장(錫杖, 승려의 지팡이)도 돌아오지 못했네.”

인도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했는지는 1,300여 년 전 혜초(慧超, 704~787)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 실린 시 한 편이 잘 나타내 준다. “차디찬 눈은 얼음과 엉기어 붙었고/찬바람은 땅을 가르도록 매섭다/넓은 바다 얼어서 단을 이루고/강은 낭떠러지를 깎아만 간다.” 열다섯 살의 나이에 당나라에 들어가 5년 동안 수도한 다음 결행한 4년간의 인도 여행을 어렴풋이 전해준다.

지난 2015년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했던 모디 인도 총리가 “혜초 스님이 예전에 인도를 다녀가셨던 베나리스가 바로 제 선거구이다.” “우리는 한국 전화로 통화하고, 한국 차를 타며, 한국 컴퓨터로 일하고, 한국 TV를 본다.”라며 한국과 인도의 오랜 인연과 ‘신성한 연결고리’를 강조한 바 있다.

혜초는 밀교(密敎)를 연구한 통일신라의 승려로, 704년에 태어났다. 719년(성덕왕 18)에 당나라로 건너가 인도 승려 금강지(金剛智)의 제자가 되었고, 그의 권유로 19세 때 인도로 목숨을 건 ‘구법여행’을 떠났다. 혜초는 어느 날 순례길에 티베트 승려를 만나서는 이렇게 읊었다.

“그대는 티베트가 멀다고 한탄하나/나는 동쪽으로 가는 길이 멀어 탄식하노라/길은 험하고 눈 쌓인 산마루는 아득히 높고/ 골짜기엔 도적도 많은데/나는 새도 놀라는 가파른 절벽/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는 건너기 힘들다네/평생에 울어본 기억이 없건만/오늘따라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네”

혜초는 당나라 남쪽 바닷길로 인도에 가 약 4년 동안 다섯 천축국의 불교 성적(聖跡)과 8대 영탑(靈塔)을 두루 순례하였고, 돌아올 때는 대식국(大食國, 아라비아), 파사국(波斯國, 페르시아)을 거쳐 파미르고원을 넘어 둔황을 지나 장안에 도착했다.

‘세계 4대 여행기’ 중의 하나인 <왕오천축국전>은 원래 3권이었지만 현재는 복사본 1권만 전해지고 있고, 227행 6,400여 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프랑스 학자 펠오(Pelliot, Paul)에 의해 1908년 중국 간쑤성(甘肅省)의 둔황석굴(敦煌石窟)에서 발견되었다.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의 인도 및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각국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종교, 풍물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역사적인 책이다. 하루빨리 프랑스 파리의 국립박물관에 있는 <왕오천축국전>을 되찾아와야 한다.

혜초는 당나라 장안 천복사(薦福寺)에서 금강지, 불공(不空)과 함께 경전 편찬과 번역에 힘쓰다 83세(787)에 입적했다. 동서 교섭사(交涉史) 연구에 귀중한 불후의 명저를 저술한 우리 역사상 ‘최초의 세계인’. 혜초 스님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渡唐志學海東生(도당지학해동생) 15세에 당나라로 건너간 혜초는 신라 사람으로

弱冠向西未踏行(약관향서미답행) 20세에 인도를 향해 전인미답의 길을 떠났네

故國天涯思慕切(고국천애사모절) 고국 신라는 하늘 끝에 있어 그리움 절절하며

異邦地角法求精(이방지각법구정) 타국 모퉁이 땅에서 구법 여행에 정진했네

海南莫莫風波苦(해남막막풍파고) 남쪽 바다는 아득해 사나운 풍파 괴로움이고

砂北洶洶險塞荊(사북흉흉험새형) 북쪽 사막은 흉흉하여 험한 변방 가시와 같네

出自震方飛五竺(출자진방비오축) 신라에서 출발해서 인도 오천축국을 답사한

稀奇巡禮永傳名(희기순례영전명) 드물고 기이한 성지순례는 영원히 명성 전하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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