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大文豪) 이문열 선생은 2023년 10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사회 분위기상 우리나라의 절반 이상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며 “자기가 좌익 활동을 하는 줄 모르면서 좌익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탄식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지금 극렬한 간첩 활동만 아니면 좌익에 대해 굉장히 관용하는 사회가 됐다. 예전에는 골수 좌익만 하던 발언들을 지금은 우리가 예사롭게 듣고 대하는 세상”이라며 “전체적으로 국민들이 너무 (좌익 위협에) 둔감해져 있다”고 염려했다.

이러한 현실은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학교에서 좌 편향된 역사교육을 시킨 업보이고, 우리의 근·현대사가 이념과 사상으로 왜곡되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결과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역사전쟁 중이다. 역사인식의 차이에 기인해 국론은 사분오열되고 지역간, 세대간 갈등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진영에 갇힌 자들은 협치를 할 수 없고 포용력을 갖는 것도 불가능하다.

역사는 미래를 여는 창이며 이정표이다. 이제 ‘좌 편향된 역사’에서 탈피, 이념과 포퓰리즘에 갇힌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한강의 기적 및 경제성장에 대한 자긍심을 가르쳐 민족과 국가의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은 고려 중기의 역사가·정치가로 유교적 합리주의자다. 1075년(문종 29)에 신라 태종무열왕의 후손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 자는 입지(立之), 호는 뇌천(雷川),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13·14세 무렵에 아버지 김근(金覲)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22세에 과거시험에 합격했고, 4형제 모두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였다. 얼굴이 검고 우람하였으며, 고금의 학식에 있어 김부식을 당할 사람이 없었다.

인종(仁宗) 4년(1126)에 ‘이자겸(李資謙)의 난’으로 개경의 궁궐이 불에 타자, 묘청(妙淸)이 ‘서경천도론(西京遷都論)’을 주장하였는데, 천도가 어렵게 되자 묘청은 1135년(인종 13) 서경에서 난을 일으켰다. 이때 김부식은 ‘묘청의 난’을 진압하여 문하시중에 올랐다. 이 사건은 고려사회가 유교 중심의 문벌주의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김부식은 68세에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인종의 명령을 받아 1145년에 <삼국사기> 50권을 편찬했고, <예종실록>과 <인종실록>도 편찬했다. 삼국시대의 정사인 <삼국사기>는 본기 28권, 지 9권, 표 3권, 열전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부식은 왕에게 올리는 표문에서, “우리나라의 학자들이 중국의 경전과 역사에는 능통하나 우리 역사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개탄하면서, 첫째, 중국 문헌들은 삼국의 역사를 지나치게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으니 우리 것을 자세히 써야 한다, 둘째, 예부터 전해 오던 <고기(古記)>의 내용은 빠진 내용이 많아 다시 서술해야 한다. 셋째, 왕·신하·백성의 잘잘못을 가려 행동규범을 드러냄으로써 후세에 교훈을 삼고자 한다.”고 했다.

이것이 <삼국사기>의 편찬 목적이며, 김부식의 당당한 역사관이다. 김부식은 자신의 한시 ‘결기궁(結綺宮)’에서 “국왕이란 백성을 헤아려서 선정을 베풀면 후세까지 칭송받지만, 백성들을 괴롭히면 곧 망한다.”고 풍자했다.

송의 서긍(徐兢)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김부식을 이렇게 평하였다. “박학강식(博學强識)해 글을 잘 짓고 고금(古今)을 잘 알아 학사의 신복(信服, 믿고 복종함)을 받으니, 그보다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또 이기백(李基白) 교수는 자신의 논문 ‘삼국사기론(1978)’에서 “<삼국사기>는 합리적인 유교사관에 입각하여 씌어진 사서로 이전의 신이적(神異的)인 고대 사학에서 한 단계 발전한 사서이다.”라고 평가했다.

<삼국사기>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 삼국의 역사를 동등하게 다루고, 중국의 역사와 대등하게 인식했던 뇌천(雷川)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天生强記莫能追(천생강기막능추) 천생 널리 읽고 잘 기억하여 능가할 이 없었고

慨歎時流國史卑(개탄시류국사비) 우리 역사를 비하하는 당시 풍조를 개탄했네

出帥忠君期統合(출사충군기통합) 임금에게 충성 위해 출병하여 국민통합 꾀했고

進軍討逆破分離(진군토역파분리) 역적토벌 위해 진군하여 ‘서경천도’ 막았네

黎民濟度終塗炭(여민제도종도탄) 백성을 제도하여 도탄을 끝냈고

社稷昇平繼善治(사직승평계선치) 조정이 태평하여 선정이 계속됐네

不朽三長文武赫(불후삼장문무혁) 불후의 삼장(재·학·식)으로 문무에 빛났고

吾東正史向金枝(오동정사향금지) 우리나라 정사는 금지옥엽으로 대접받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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