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사연·감사원 “건강보험료 국회 심의 받아 투명성 높여야”
복지부 “건보 재정 국회 통제 시 운용 주체 모호해져”

건강보험공단. [뉴시스]
건강보험공단. [뉴시스]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저출생 및 고령화로 인구 규모가 줄어들고 경제 악화가 심화하면서 건강보험료 재정이 바닥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현재 누적적립금은 24조 원에 달하지만 2032년에는 적자 규모가 62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32년이 되면 법적 상한선인 8%를 넘어서는 액수를 납부해야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재정 관리를 위해 국회 심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국회가 재정을 관리하면 건보 제도 운용이 경직될 수 있다며 일단 선을 그은 상황. 더불어 내년도 건강보험료를 올해와 같이 동결했다.

지난 4일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제2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2024~2028)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급격한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노인인구 증가 등 인구구조의 급변으로 건강보험료 재정 상태가 장기적으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보사연은 보고서를 통해 저출챙, 고령화로 인구 규모가 줄어들고 있으며, 경제마저 갈수록 악화하는 현실에서 건강보험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건보 예산안과 결산안 등을 국회에 보고해 심의, 의결을 받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사연은 건보 재정 상황에 대한 대국민 정보 공개의 범위와 시기를 훨씬 더 확대해, 국민이 건보 재정 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민건강보험은 전 국민의 건강 안전망으로 중요한 의료보장 제도이기에 국회가 보험재정 상황을 점검하고, 문제를 파악해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등 규제와 지원 장치를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감사원 “건강보험, 국민 보건 향상 역할 다해야”

감사원도 비슷한 입장이다. 지난해 8월 발표한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감사보고서에서는 건보 재정을 분석하며, 건보 당국이 국회 등 외부의 통제를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재정을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문제를 삼았고, 강력히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감사원은 “건강보험이 국민 보건 향상이라는 제 역할을 다하려면 무엇보다 재정고갈의 위험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상태가 돼야 한다”라며 “건보 재정의 지속 가능한 운용을 위해서는 국회 심의를 받지 않는 현재의 건보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이 건보료를 조세와 같이 인식하고 있고, 실제 건보 재원 자체가 국민이 의무적으로 내는 보험료로 조성되는 만큼, 기금화해서 대의기관인 국회가 건보 예산과 결산 등 재정 전체를 심의, 의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국회 통제? 신중해야...” ‘부정적 입장’

복지부는 건보 재정에 대한 외부 통제를 강화할 경우 재정 책임을 분산해 주지 균형보다는 지출 위주로 재정을 운영할 우려가 있다며, 보험재정 운용 주체가 모호해질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건보 제도 운용의 경직성도 증가한다고 밝혔다. 코로나와 같은 재난 발생 시 국민 의료수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수 있고, 전문직 의사결정을 왜곡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점 등을 꼽으며 국회의 통제 강화 방안에 반대했다.

우리나라의 사회보험은 총 8개로 건강보험을 비롯해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8개가 있다. 이 가운데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제외하고 다른 6가지 사회보험은 모두 국가 재정에 포함돼 기금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기금운용계획과 결산에 대해서는 국회의 심의, 의결을 거치는 방식으로 통제되고 있다.

건강보험은 사회 보험성 기금과는 달리 건보공단의 일반회계로 운영되며 정부지원금을 제외하고는 예산과 결산에 대한 국회 심의 등 외부 통제를 받지 않고 있다.

현재 누적적립금 24조, 2032년에는 적자 62조

직장가입자의 경우 건강보험이 법적으로 한 달 보수의 8%를 초과해 납부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직장가입자에게는 상한선을 둔 것인데, 2032년도가 되면 건보료율이 8%를 돌파할 것이라는 보사연의 분석이 나왔다.

현재 직장가입자들은 월급의 7.09%만큼을 사측과 절반씩 나눠 내고 있다. 이대로면 9년 뒤에는 대략 8%만큼 떼인다. SBS 취재에 의하면 보사연은 5년(2019~2024년) 평균 인상률 기준으로 2031년이면 8.08%, 10년(2014~2024년) 평균 인상률 기준으론 2032년 8.11%, 8% 상한선을 돌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보사연은 건보료를 더 올리는 방안도 제시했다. 실제 한국의 건보료율은 7.09%지만 독일은 14.6%, 프랑스는 13%, 일본은 9.21%라며 많게는 절반 수준이라고 밝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현재 건보 누적적립금은 24조 원에 달하지만,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급증으로 2028년도에 적립금이 모두 바닥나고 2032년에는 적자 규모가 62조 원에 달할 거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보험료 적정 관리하겠다”

복지부는 지난 9월26일 물가, 금리 등 국민 부담을 고려해 내년도 건보료율을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열린 제19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는 2024년도 건보료율 동결안을 확정해 내년에도 2023년과 같은 7.09%가 적용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2017년 이후 7년 만에 보험료율을 동결하기로 했다”라며 “그 어느 때보다 국민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는 소중한 보험료가 낭비와 누수 없이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필수의료를 위한 개혁 역시 차질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15일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속 가능성 제고 방안을 발표하는 등 보험료를 적정 관리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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