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탐방은 이어진다. 이번 나들이에서 영등포공원과 중마루공원, 영등포시장, 기계공구상가 등 영등포 사람이 사는 모습을 둘러볼 계획이다. 영등포는 여러 색깔을 지니고 있다. 영등포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켜켜이 쌓인 근현대사의 역사를 직접 목격할 수 있는 지역임은 분명하다. 그중 한 곳이 영등포역 뒤편, 영등포공원이다. 기찻길 따라 걸었다. 가끔 기차가 지나는 소리가 들린다. 불과 300m도 가지 않았다. 영등포공원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왔다.

영등포 공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영등포 공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구오비맥주 영등포 공장.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구오비맥주 영등포 공장.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공원내 오비맥주 공장터 안내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공원내 오비맥주 공장터 안내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오비맥주.크라운 맥주 공장, 우리나라 맥주 산업의 출발지
- 서울 25개 행정구 중 산 하나 없는 유일한 구()

영등포 공원 중심인 원형광장에는 신기하게 생긴 커다란 조형물이 있다. 마치 막힌 배수관을 뚫을 때 쓰는 뚫어뻥모양이다. 설명을 듣지 않으면 마치 예술 작품으로 오해될 것 같다. 조선의 일본 식민지 시대에 들어온 신문물 흔적 중 하나다. 바로 순동제 담금솥이다. 이 담금솥 앞에 있는 설명문에는 ‘1933년에 제작해 1996년까지 맥주 제조용으로 사용됐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담금솥은 맥주 제조 공정 중 맥아와 호프, 전분, 양조 용수를 배합해 끓인 후 발효시키는 핵심 설비다. 이 담금솥으로 한 번에 500hl(1hl=100l=50kl)를 끓여냈다.

맥주 제조용 순동제 담금솥신문물 흔적

이 공원 터에 1933년 소화기린맥주와 대일본맥주 공장이 들어섰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뒤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소화기린맥주는 오비맥주로, 대일본맥주는 크라운 맥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97년 오비맥주 영등포공장이 이천으로 이전하며 영등포공원으로 조성됐다. 우리나라 맥주 산업의 출발지임을 알리기 위해 이 담금솥을 남겨둔 것이다.

맥주가 언제 조선에 들어왔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개항기 때일 것으로 짐작한다. 어떻든 일제강점기에 맥주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수입 맥주 한 병 가격이 50전이었다. 쌀이 두 되다. 엄청난 고가품이었다. 맥주 한 병씩을 마실 때마다 서민의 4~5일 양식이 없어지는 셈이었다. 하지만 인기는 대단했다. 주요 고객은 개화한 지식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문에 대일본맥주 광고도 등장한다. 거품이 넘치는 맥주잔과 보리 이삭을 그린 디자인이다. 브랜드 이름 위에 국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일본 제품이라는 뜻이다. 대한제국의 패망을 재확인하게 된다. 19221221일 동아일보 기사는 맥주의 인기를 알 수 있다. 동아일보는 “4~5일 치의 양식값을 치르면서 맥주를 사 마셔야겠느냐라면서 맥주를 마시는 게 얼마나 무서운 죄인 줄 아느냐고 꾸짖고 있다.

영등포 공원내 담근솥.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영등포 공원내 담근솥.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돈 벌 기회를 일본 상인이 놓칠 리가 없다. 소화기린맥주(기린맥주)와 대일본맥주(아사이맥주)가 영등포에 분점을 냈다. 공장도 지었다. 왜 영등포에 맥주 공장을 지은 것일까. 무엇보다 한강을 끼고 있는 영등포는 수질이 좋았다. 수량도 풍부했다. 또 영등포역은 경인선과 경부선이 교차했다. 교통요충지였다. 맥주 공장 입지로는 최적의 장소였던 셈이다.

맥주 한병 50, 조선 노동자 일일 품삯

맥주를 마시는 게 무서운 죄라고? 사실 그랬다. 당시 노동 감수성이나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은 없었다. 노동조건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다. 11시간 일해 돼지우리 같은 곳에 살아도 생계는 어려웠다. 착취를 당한 셈이다. 일본인이 100전을 받는다면 조선 노동자는 70전을, 여성이나 아동 노동자는 50전을 받았다. 일본 기업은 당연히 조선 여성 노동자를 선호했다. 1920~30년 한국 초기 공업화 단계엔 우리 민중의 한이 서려 있었던 셈이다. 거대한 담금솥은 맥주 짜낸 게 아니라 조선 노동자의 땀과 피를 짜낸 것이다. 성공한 우리의 산업화와 공업화의 가치가 값지게 느껴진다.

영등포 시장 내 풍경.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영등포 시장 내 풍경.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영등포시장으로 향했다. 영등포역에서 두 블록쯤 지났다. 길 건너편에 영등포 1956 전통시장이라는 간판이 아케이드형 천장에 매달려 있다. 영등포시장 지하쇼핑센터 8번 출구 바로 앞이다. 시장 골목을 들어섰다. 시장 특유의 향취가 풍긴다. 수많은 가게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시장 중앙 통로에 있는 2열 노점상이 가지런히 줄 서 있다. 서울에서 이처럼 큰 전통시장이 깔끔하게 리뉴얼 된 곳은 흔치 않을 듯하다. 거기다가 공구 및 청과, 화훼 등 전통적 도매상권을 비롯하여 각종 농수산물, 축산물, 건어물, 공산품과 가공품, 전자제품 등 없는 게 없다. 거기다 순대골목 등 먹자골목과 술집이 어우러져 있다. 한마디로 생활밀착형 재래시장이다. 시장 한 바퀴를 다 돌려면 반나절도 부족할 만큼 컸다.

가축시장->5일장->영등포 전통시장 변천

영등포 1956 전통시장’. 영등포시장은 1956년을 기점으로 영등포동에 자리 잡은 재래시장이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무슨 오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영등포시장의 기록은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작은 소규모의 가축시장이 섰다. 영등포역 개통과 함께 자연스럽게 오일장으로 발전했다. 일제강점기 때에 공장지대였던 영등포는 일본인 거주자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일본인들이 점포를 개설하고 자본제 상품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일본인에 의해 영등포시장이 자본주의 시장체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그 산물이 1931년에 개설한 영등포 공설시장이다. 해방과 분단전쟁 등의 숱한 시련을 겪으며 공설시장은 명맥 유지조차 어려웠다.

그 뒤에 만들어진 게 바로 영등포 1956 전통시장인 셈이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영등포 인근에 밀집되어 있던 대형 공장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유입됐다. 영등포 전통시장도 활성화됐다. 지금 채소도매상이 모인 곳을 안양골목이라고 불렀다. 영등포 재래시장은 이곳에서 최초의 장이 섰다.

순대골목.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순대골목.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시장의 명물순대 거리 식당가...성황

재래시장은 우리의 생활문화를 비추는 거울이다. 시장의 풍경은 시대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함과 동시에 삶의 역사와 풍경이 그대로 담는다. 본격적으로 시장 구경에 나서본다. 어느 쪽으로 가도 시장이 연결되어 있다. 귀금속, , 신발 가게 등을 지났다. 꽃 도매 상가나 나왔다. 꽃바구니와 꽃다발에서 줄지어 있다. 꽃향기보다 훌륭한 호객행위는 없을 듯하다.

한순간 통일된 간판이 나타났다. 영등포시장의 명물 순대거리 식당가였다. 가게마다 가마솥에서 흰 김을 피워내고 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가게마다 뜨끈한 국물로 몸을 데우려는 손님이 가득하다. 여유롭게 칼질하며 여주인이 과객에게 웃음짓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하다. 하얀 김이 피어나는 순댓국으로 배를 채웠다.

영등포시장 끄트머리에는 영등포가 자랑하는 영등포 기계공구상가가 있다. 여의도와 신길동 그리고 영등포동이 마주하는 삼거리에 체인이 연결된 형상을 한 푯말이 있다. ‘영등포시장 기계공구상가라고 쓰인 예쁜 안내판이다. 이 기계공구상가는 1991년 개설된 상가건물형 시장이다. 현재는 현재 300여 개 점포가 영업 중이란다.

붕어빵 기계부터 인공위성까지 '전통' 기계공구상가

기계공구상가 입구.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기계공구상가 입구.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이곳에서는 붕어빵 기계부터 인공위성까지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공구 제품을 취급한다. 중고와 신상은 물론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공구 제품도 구할 수 있단다. 공구 상가를 둘러보며 세상이 이렇게 많은 자재와 공구가 있다는 데 놀랍다. 정말 이름 모를 모든 공구가 다 모여 있다. 기름때가 묻은 가게에는 전동드라이버, 해머 드릴, 용접기 연마용 자재, 수압 펀칭기, 앵글 펀칭기 등 산업현장에서 많이 쓰는 공구가 전시되어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모, 조끼, 안전화, 장갑을 파는 곳, 바퀴만 파는 곳 등이 이채롭다. 시장의 재발견이다. 기계 공구 및 산업용품 유통상가단지의 메카라는 자랑이 실감 난다.

영등포 기계공구상가 골목 한편에는 중마루공원이 있다. 면적이 2,000여 평이나 되는 공원이다. 영등포공원처럼 도시의 문화 특징을 살린 공원도 아니다. 트랙이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중마루공원이 있던 곳이 바로 고추말고개다. 이 고개는 도림동과 신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영등포역 일대의 유일한 고개였다. 그러나 이 고개도 1925(을축년) 대홍수에 휩쓸렸다. 그래서 영등포구는 서울 25개 행정구 중 변변한 산 하나 없는 유일한 구가 됐다.

중마루 공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중마루 공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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