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는 300,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나조차도 모르는 의원이 태반이다. 특히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의원 수가 많아 의원 개개인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민주당 유정주 의원을 보라. 한달여 전에 한동훈 장관을 향해 정치를 후지게 만드는 너라는 뻘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쳤으리라. 김남국, 장경태 등이 무식한 발언을 4년 내내 해온 것은 그것 말고는 자신의 존재를 알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정의당은 다르다. 전체 의원 숫자가 6명에 불과한 소수정당인데다, 언론과 시민사회는 정의당이 하는 일에 비해 과한 대접을 해준다. 류호정은 2020년 정의당에서 비례대표 1번을 받고 국회의원이 됐다. ‘예술계 이슈를 언급할 때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더니, 한동훈에게 한 마디 하니까 갑자기 관심을 보인다고 말한 유정주와 달리, 28세의 여성 국회의원 류호정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의정활동을 시작한 거다. 그녀가 의미있는 성취를 이룬다면 그녀를 향한 우려가 찬사로 바뀌는 것은 물론,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픈 청년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수 있을 터였다.

아쉽게도 류호정은 그 일을 잘 해내지 못한 것 같다. 20208, 그녀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나왔다. 옹호하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의정활동을 통해 청년정치를 구현하는 대신 의복을 이용해 어그로를 끄는 게 아닌가 싶어 아쉬웠다. 과문한 탓에 류호정이 다른 의미있는 일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설령 내가 모르는 뭔가를 했다고 해도, ‘류호정의 청년정치는 실패했다고 단정지어도 될 듯하다. 요즘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이 구태 정치인 뺨칠만큼 비열하기 때문이다. 현재 류호정은 금태섭이 주도하는 신당 새로운 선택에 합류했다. 정의당 이름으로 비례대표가 된 이가 다른 당의 발기인대회까지 참석했으니, 탈당하는 게 이치에 맞다. 그런데 류호정은 탈당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정의당이 탈당을 요구하고, 징계위에 회부하겠다고 하는데도 그녀는 요지부동이다. 이유가 뭘까. “가라앉고 있는 배에서 진보 집권을 꿈꿨던 동지들을 구출하는 것이 제 사명이라 여기고 있다.”는 말처럼, 그녀는 정의당 당원들을 신당으로 가게끔 설득하기 위해 당에 남아있는 거란다. 황당한 얘기다. 몇 석 얻을 것 같지도 않은 신당을 엘도라도처럼 표현하는 것도 어이없지만, 꼭 정의당 당적이 있어야만 당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게 아니잖은가? 그래서 사람들은 더 그럴듯한 해석을 찾는다. 비례대표로 의원이 된 이가 탈당을 하면 의원직이 상실되지만, 당에서 제명이 되면 의원직을 유지하니, 제명하기만을 기다리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속내가 뻔히 보임에도 류호정은 앵무새처럼 기존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눈물, 실제로 류호정은 지난주 한 라디오 프로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려 진행자를 당황시켰다. 평소 ‘Girls can do anything’이라고 말하지만, 난관에 봉착하면 여성성에 호소하는 게 바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 류호정이 이 치트키를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류호정은 왜 신당으로 가려 할까? 내 추측은 이렇다. 관례상 비례대표는 한번만 할 수 있다. 이미 비례대표로 의원이 된 류호정이 재선을 하려면 지역구에 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불가능한 건 류호정 본인도 안다. , 국회의원 개꿀인데, 한번 더 하고 싶은데, 어디 방법이 없을까? 있다. 새로운 당에 가서 비례대표를 또 하는 것. 현행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이 유리하고, 비례 1번과 3번은 반드시 여성을 공천해야 하니, 류호정이 여기 포함된다면 재선이 불가능한 게 아니다. 이제 류호정이 몇 개월 안 남은 의원직에 연연하는 이유도 추측해 보자. 원래 총선 때는 새로운 당이 여럿 만들어진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으면, 선거 기호에서 밀린다. 기호 23번보다는 기호 4번인 게 유권자에게 어필하기 유리한 바, ‘새로운 선택이 필요로 하는 것은 국회의원류호정이지, 민간인 류호정이 아니다. 류호정이 탈당 대신 제명시켜 달라는 것도 이런 꼼수를 기대해서가 아닐까. 만일 이게 맞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대한민국 청년정치는 죽었다. 그리고 그 주범은, 류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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