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의 해,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 첫걸음을 금천구의 호암산 등산으로 시작했다. 호암산 정상은 새해맞이 해돋이 명소 중 하나다. 늦은 산행이라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는 없었다. 새해를 등산으로 시작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새해의 희망을 다지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호암산.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호암산.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정상.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정상.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 새해 맞이 서울 산 중 해돋이 명소 중 하나 유명
고구려 금천구 잉벌노현’(仍伐奴縣, 뻗어나가는 땅)

지하철 1호선 석수역에 내렸다. 필자와 같은 생각인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석수역에서 등산복 차림의 중년이 곳곳에 모여있다. 호암산으로 가기 위해선 석수역 육교를 건너야 한다. 이 육교가 서울과 경기 즉 금천구와 안양시의 경계다. 육교에서 본 시흥대로는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있다. 넓다. 지역주민은 시흥대로를 ‘50m 도로라고 불렀다. 1981년 개통됐던 당시 폭 50m, 왕복 10차로 설계된 도로다. ‘불필요하게 넓다라는 불만이 담겨 있었다.

정조대왕 능행길 이었던 시흥대로

만일 주민들이 시흥대로의 역사를 속속히 알았다면, 불평을 토로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흥대로는 그 자체가 서울의 기념물(모뉴먼트)’이다. 시흥대로는 1795년부터 시작된 정조대왕의 능행 길이었다. ‘시흥 능행 길은 순조 연간에 확장됐다. 일제강점기 때는 신작로로 발전했다. 경부선 철로도 이 길을 따라 건설됐다. 시흥대로는 국도 1호의 출발점이다. 일찍부터 대한민국의 가로 교통을 담당한 교통의 중심축이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등산이 시작된다.” 알프레드 프레더릭 머메리의 말이다. 호암산도 그랬다. 호암근린공원을 지나자 호암산 입구다. 산은 높지 않았다. 해발 393m. 그런데 정상까지 거리가 3.3km나 됐다. 생각보다 긴 코스다. 시작부터 돌계단이다. 마치 개울가에 있는 돌다리처럼 검고 납작한 돌이 끝도 없이 포개져 있다. 산세가 호랑이를 닮아 호암산이라더니 허언이 아닌 듯하다.

호암산 능선에 도착했다. 호암산 능선은 호랑이 등줄기다. 호랑이 등줄기가 흠뻑 젖어 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다 녹은 탓이다. 능선은 마치 길고 곧게 뻗은 오솔길 같다. ‘오솔길엔 온 세상으로 열려 있다. 시선만 돌려도 겨울나무 사이로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능선길이 전망대다. 눈을 돌리면 서울 시가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관악산 연주대가 솟구친다. 한강은 굽이친다. 맑은 날에는 인천 앞바다까지 보인단다.
 

시흥대로,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시흥대로,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특히 눈 아래로는 금천구 도심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그렇다. 고구려는 금천구 일대를 잉벌노현’(仍伐奴縣)으로 불렀다. ‘뻗어나가는 땅또는 넓은 들이란 뜻이었다. 눈이 황홀하다. 휴식을 취할 겸 벼랑에 매달린 평평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녹지 않은 눈밭에 누군가 일필휘지로 한자를 써 두었다. 새해를 맞는 다짐을 담은 명구가 아닐까. 궁금했다. 글자를 알아볼 수 없다. 그늘에도 새해의 밝은 빛이 닿아 있었다.

신라시대의 산성 호암산성 발굴현장보니...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정상까지 1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났다. ‘접근금지표시가 된 가림막이 나왔다. 사람 눈 모양의 가림막이다. 호암산성 발굴 작업 현장이다. 안내판에는 호암산성 남문 추정지라고 적혀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신라시대의 산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등산길 내내 둘러보고 살폈다. 산성은 보이지 않았다. 등산객에게 물어봤다. 원하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남아 있는 성벽의 길이가 1,016m라는 얘기는 뭔가?

혹시 능선 자체가 성벽이 아닐까. 사방의 시야를 띄어준 호암산 능선 자체가 하나의 요새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렇다고 치자. 어떻든 호암산 정상 부근 능선에 신라시대의 산성이 있다는 것은 이곳이 삼국시대 군사전략 요충지임을 알려준다. 민가의 보호를 위한 것이었다면 굳이 산 정상부에 축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상 근처에서 보면, 소래 포구와 남양만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적으로 내륙교통로와 한강 수로, 서해 해로를 방어하고 공격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호암산성의 역사적 가치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규모도 크다. 호암산성은 성벽 둘레가 무려 1.547, 면적이 133,790에 이른다. 한강 유역의 신라시대 성곽 18곳 중 4번째란다. 금천구는 오는 2034년까지 호암산성을 금천구 대표 역사공원으로 조성할 방침이란다.

신랑.각시바위일명 사랑바위 기암 곳곳

사랑바위.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랑바위.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산성 성문터 인근 절벽에는 신랑·각시바위’, 일명 사랑바위가 있다. 제목이 아니라도 사랑하는 남녀가 절벽에 서 있는 모습임을 직감할 수 있다. 마주 보고선 두 신랑·각시는 조선시대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집안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낭자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 목숨을 끊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온다. 신랑은 우여곡절 끝에 행방불명된 사랑하는 각시를 이곳에서 찾는다. 이들의 사랑 얘기는 달님에게 전해졌다. 달림은 두 사람이 영원히 사랑할 수 있도록 이곳에 바위로 만들었다. 신랑·각시바위는 젊은 남녀가 서로 꼭 껴안은 채 마주 보고 서 있다. 모든 사랑하는 연인은 사랑바위의 전설을 쓰고 싶어 한다. 연인이 이 바위 앞에서 사랑 고백하면 백년해로한다고 한다. 필자의 자녀에게도 이 전설을 전해주고 싶다.

호암산은 산 전체가 문화재 발굴 현장이었다. 남문 추정지 이외의 또 다른 문화재 발굴 현장을 만날 수 있었다. ‘2의 한우물이다. 2의 한우물에 앞서 제1한우물을 얘기할 필요가 있다. 공사 현장에서 약 200m 더 올라가면 제1한우물이 있다. 불영암 바로 앞이다. 산꼭대기에 우물이 있다. 해발 355m. 호암산성 내 시설임을 직감할 수 있다. 군사용 우물이라는 얘기다. 직사각형(동서 22m, 남북 12m) 모양의 우물이다. 우물은 살짝 얼어 있는 듯했다. 눈이 우물을 덮고 있었다. 우물의 한쪽 모퉁이에 갖은 멋을 부린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솔향에 젖은 우물물 한 사발 마시고 싶다. “국가사적임을 알린 안내판은 우물을 오염시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국가사적 군사용 우물 한우물과 소나무

제1한우물.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제1한우물.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제2한우물.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제2한우물.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우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연못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두 가지다. 하나는 한우물’, 즉 큰 우물이다. 다른 하나는 하늘 연못(天井)’이다. 그런데 어떻게 산꼭대기에 이렇게 큰 우물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거기에 더 신비로운 일이 있다. 한우물은 한여름이나 한겨울이나 물의 양의 변화가 없단다. 큰 가뭄에도 물이 마른 일이 없단다. 이 우물은 호암산성보다 조금 뒤인 통일신라시대 때 축조됐다고 한다.

한우물이 호암산성 안에 두 개가 있었다. 1한우물보다 200m 아래 있는 제2한우물(해발 335m)이 그것이다. 지난해 이뤄진 학술탐사에서 6월에 두 번째 한우물을 찾아냈다. 2한우물은 제1한우물의 절반 크기(동서 10m, 남북 13m). ·외벽과 담장기초 건물터까지 확인했다.

석구상.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석구상.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1한우물이 들어가는 입구에 예사롭지 않은 동물 석상 하나가 있다. 돌로 만든 개, 석구상이다. 호암산은 산세가 호랑이를 닮았다. 또 호암산 북쪽에 호랑이를 꼭 닮은 호랑이 바위가 있다. 호암산은 호랑이 기운이 넘친다. 이 기운이 한양을 도읍으로 삼으면 화를 부를 수 있다고 여겼다. 호랑이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호암산 북쪽에 돌사자를 묻고, 남쪽에 개로 만든 상을 묻었다. 이는 시흥읍지에 나오는 얘기다. 석주로 둘러싸인 석구상은 호랑이 기세에 전혀 눌리지 않을 만큼 당당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발과 꼬리도 명확하다.

호암산 정상까지는 300m 남았다. 여기부터 험산에 꼭 있는 깔딱고개다.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도착했다. 수많은 바위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이리저리 정상석을 찾아봤지만, 그것은 없었다. 우뚝 솟은 바위에 국기 게양대가 서 있고 태극기나 휘날리고 있다. 정월 초하루에 호암산 정상에서 만난 태극기가 더 자랑스럽다.

설악산 이어 흔들바위...갑진년 행운석

흔들바위. ​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흔들바위. ​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호암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절벽에 매달려 있다. 흔들바위다. 두 쌍의 부부가 이리저리 바위를 밀더니 흔들린다라고 외쳤다. 그들에게 올 갑진년은 행운이 있을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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