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일, 오리온 사외이사 재직 중 '오너 횡령' 혐의 변호 관여…. 2년간 수사 중지
- KT새노조, 법조인단 대거 영입…. 호텔신라·현대에너지솔루션도 법조인 사외이사 영입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독립적인 위치에서 기업과 경영진을 감시해 기업 경영에 투명성을 높이는 '사외이사들.' 그런데 이들이 기업으로부터 수임료를 받고 변호인단에 참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논란의 사례처럼  법무 관련 부서가 아닌 사외이사로 법조인이 재벌 기업에 취직하면서 사외이사 역할론에 대한 필요성마저 도마 위에 올렸다.. 일각에서는 '무용론'과 함께 '기업 내 검찰 공화국이 판친다'라는 말까지 회자한다.

[일요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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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외이사의 오너지킴이 논란에 불을 붙인 건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다. 그는 2016년 부산고등검찰청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로 일했다. 이 시기부터 지난해 3월까지 오리온 그룹의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사외이사로 재직하면서 오리온그룹의 오너 일가인 이화경 부회장의 200억 원대 횡령 사건을 변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이목을 집중시킨다. 당시 이 부회장은 2018년 개인 별장을 지으며 법인자금 203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 오너 그룹 변호…. 이해충돌 오해 소지 충분

일부 매체를 통해 알려진 김 위원장 인사청문회 당시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를 보면 당시 경찰이 신청한 이 부회장 구속영장이 검찰에서 반려됐을 때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질문에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라고 적시됐다.

사외이사가 경영진 핵심인 오너 그룹 변호에 참여한 것이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이 부회장 혐의가 인정돼 검찰로 사건이 넘어갔지만, 검찰은 수사 끝에 결국 이 부회장을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했다.

현행법은 회사와 중요한 이해관계에 있는 법인의 피용자는 사외이사로 선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 후보자의 행보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문제는 다른 기업 사외이사 리스트에도 법조인이 대거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이들 회사는 사정당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3일 KT새노조에 따르면 감사실장(전무)에 특수통 검사 출신의 추의정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컴플라이언스추진실장(상무)에 검찰 출신 허태원 변호사(법무법인 아인)가 영입됐다.

추의정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부 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등을 역임했다. 2021~2022년 방송통신위원회에 법률자문관으로 파견돼 미디어 업무를 담당했다.

KT는 지난해 11월 김영섭 대표 체제 첫 번째 인사에서 법무실장(부사장)에 검찰 출신 이용복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 경영지원 부문장(부사장)에 이명박 캠프 특보(홍보단장) 출신 임현규 씨를 영입했다. 이용복 실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한 특검보 중 한 명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지난해 열린 기업별 정기주총에서도 법조인이 대거 사외이사로 영입됐다.

신동아에 따르면 지난해 3월 17일 호텔신라는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현웅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와 국회사무처 입법차장 출신 진정구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바른은 호텔신라가 HDC와 합작 설립한 HDC신라면세점의 밀수 사건 형사재판에서 HDC신라면세점을 대리했다. 김 변호사는 담당 변호사였다. 광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오너 일가에 대한 변호를 맡은 바 있다.

현대에너지솔루션은 같은 달 22일 오동석 김앤장법률사무소(김앤장)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오 변호사는 2009년부터 2년간 현대에너지솔루션 모회사 현대중공업 상무를 지냈다. 이튿날 국토교통부 차관 출신 여형구 김앤장 고문은 현대로템 사외이사에 재선임됐다. 김앤장은 현대중공업 관련 소송을 맡은 바 있다. 현대로템 모회사 현대차와도 자문 계약 관계다.

- 사외이사 거수기 노릇 여전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사외이사로서의 기업 견제가 가능할 리 만무하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이사회에 오른 안건의 99.3%(7282건)는 원안대로 가결되며 이사회 견제 기능이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연말 공시대상기업집단 82곳 중 신규 지정 집단과 농협을 제외한 73개 집단 소속 2735개 계열사를 분석해 내놓은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회사당 평균 3.26명의 사외이사가 선임됐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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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1년 동안 이사회에 오른 안건 7837건 중 7782건(99.3%)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55건(0.7%)에 불과했다. 이 중 사외이사가 반대한 안건 수는 16건(0.2%)에 그쳤다.

해당 회사들의 이사회 내 사외이사(1008명) 중 과거 당사·계열회사의 임직원으로 재직한 경력이 있거나 거래관계(건당 1억 원 이상)가 있는 사외이사는 총 44명(4.4%)이었다.
또 이사회 내에서 지배주주·경영진 견제 기능을 수행하는 이사회 내 위원회는 관련법상 최소 의무 기준을 상회해 설치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사회 내 위원회 안건 중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총 26건이며, 그중 22건은 총수 있는 집단에서 발생했다.
홍 과장은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과 관련해 "2019년에 0.36%였던 게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0.36%에서 0.7%까지 오르긴 올랐는데 여전히 미흡한 수치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기업은 모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견해다. 김 위원장 측은 오리온이 소송과 관련해 법무법인 세종과 수임 계약을 맺은 것은 일회성이므로, 사외이사 요건에 규정된 '주된 계약'으로 보기 어려워 관련 법령을 위반한 건 아니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 독립성 결여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에게 돌아간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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