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군 군동면 용소라 안지마을의 농기는 농업의 신()인 신농씨를 그린 신농기(神農旗). 크기는 세로 379cm, 가로 394cm로 어마어마하게 크다.(사진 1) 안지마을에서 5km 거리의 장흥군 남외리의 부호가 기증한 것으로 제작연대는 1933년이다. 지금은 서울 농업박물관에 기증되어 있어서 12년 전에 가서 촬영한 적이 있신농(神農)이란 누구 길래 이런 농기에 그려졌을까. 이 농기에 그려 진 신농씨, 그의 지물(持物)인 살포, 용의 모습, 주변의 갖가지 구름 모양, 용 밑의 물고기와 거북이 등에 관해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한다. 누구도 체험해 보지 못했던 흥미진진한 세계다. 용어들과 설명이 낯설어서 처음에는 당황할지 모르나 내가 그림을 그려서 채색해가며 친절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사진1, 강진 용소농기.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1, 강진 용소농기.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2, 우주에 가득찬 영기를 문양화한것.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2, 우주에 가득찬 영기를 문양화한것.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3, 영기문에서 용을 타고 있는 신농씨가 홀연히 나타남.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3, 영기문에서 용을 타고 있는 신농씨가 홀연히 나타남. 사진=강우방 원장

농업의 신은 왜 용을 타고 있으며 살포는 왜 들고 있을까
- 농기에 그려진 조형성과 그 상징성을 밝히면 위대함 체감

우선 이 농기의 주인공인 신농씨부터 알아보자. 왜 신의 모습을 신농씨(神農氏)라고 부르는지 모르나 농민들이 가장 친근감을 느껴서 그렇게 불렀는지 모른다. 앞으로 신농씨라 부르기로 한다. 중국 신화시대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삼황의 한 분으로 농업과 의약을 창시했다고 한다. 그만큼 위상이 가장 높은 분 중 한 분으로 고대에는 농업이 가장 중요하므로 그런 신화적 인물이 탄생했을 것이다. 그 신농씨가 농기에 그려졌는데 주변에 이상한 구름모양이 가득하다.

누구도 체험못한 흥미진진한 신농씨 지물

나는 신농씨를 지우고 이상한 문양만 가득 그려보았다.(사진 2) 이런 문양의 의미를 내가 고구려벽화를 연구하며 조형성과 상징성을 처음 밝혔다. 이 화면에 가득한 문양들은 자세히 보면 질서가 있다. 이 대우주에 가득 찬 기운을 가시화한 것으로 나는 신령스러운 기운이란 뜻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일괄적으로 영기문(靈氣文)이라 부르고 있다. 이 농기는 바로 이런 영기문에서 용을 타고 있는 신농씨와 물고기, 그리고 거북이가 펑!하고 홀연 나타나는 장엄한 광경을 보여준다.(사진 3)

거대한 용 밑 부분에 물고기와 거북이가 있다. 특히 용과 물고기는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용이 물을 상징하듯 물고기도 물을 상징하지만, 물고기의 위상이 더 높다. 민화에서는 물고기 입에서 거대한 용이 생겨나는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다.

사진4-1, 용을 타고 있는 신농씨.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4-1, 용을 타고 있는 신농씨. 사진=강우방 원장
4-2. 용의 보주. 사진=강우방 원장
4-2. 용의 보주.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4-3, 도 4-3.  용을 타고 있는 모양이 아니고,서 있는 신옹씨, 웃긴다.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4-3, 도 4-3. 용을 타고 있는 모양이 아니고,서 있는 신옹씨, 웃긴다. 사진=강우방 원장

그런데 신농씨가 용을 타고 있는데, 용이 물을 상징하고 있으므로 당연한 결합이다.(사진 4-1) 용 얼굴 부분을 살펴본다. 용의 입에는 육각형 모양이 있다.(사진 4-2) 무엇일까요? 육각형은 물을 상징한다. 4세기에 중국에서 보주를 육각형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여 매우 다양하게 변해 왔다. 그 보주로부터 위아래로 두 갈래 제2영기싹이 튕겨 나가는 듯하다. 그리고 용머리 앞에 둥근 원이 있고 양쪽으로 역시 제2영기싹이 탄력 있게 발산하고 있다.

용의 입에서 보주가 나온다는 것을 알면 인류의 역사가 바뀔 만큼 중대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용을 압축하면 보주가 되니까요. 이런 어려운 용 이야기는 차차 알게 된다.

신농씨 머리 양쪽 제1, 2영기싹 뻗어있는 이유

그런데 신농씨만 두고 보면, 머리 양쪽으로 제1영기싹이 뻗어있고, 옷에는 제2영기싹 문양으로 가득하다.(사진 4-3) 그러므로 신농이란 신()은 보주이며 거기에서 제1영기씩과 제2영기싹이 발산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연잎을 표현할 때 중심에 보주를 두고 사방으로 잎맥이 제2영기싹 모양으로 뻗어가는 모양으로, 민화나 궁중화에서 흔히 표현하는데 그 문양과 신농씨의 옷 문양과 똑 같아서 매우 놀랐다.(사진 5-1)

 

사진 5-1. 연잎을 위에서 본 것으로 중앙의 보주로부터 잎맥이 제2영기싹으로 사방으로 뻗어간다.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5-1. 연잎을 위에서 본 것으로 중앙의 보주로부터 잎맥이 제2영기싹으로 사방으로 뻗어간다.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5-2. 신농씨 얼굴은 여래처럼 둥근 보주가 되고 머리 위로는 삼중으로 보주가 연이어 나오고, 머리 보주 양쪽으로는 각각 제1영기싹이 뻗어나가고 있다.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5-2. 신농씨 얼굴은 여래처럼 둥근 보주가 되고 머리 위로는 삼중으로 보주가 연이어 나오고, 머리 보주 양쪽으로는 각각 제1영기싹이 뻗어나가고 있다. 사진=강우방 원장

그리고 신농씨의 얼굴을 역시 문양화하면 보주인 얼굴 위로 층층이 세 번 보주가 나오는 모양이 석가여래의 얼굴 표현과 같다.(사진 5-2) 역사적으로 모든 신의 얼굴은 모두 보주로 표현한다.

보주(寶珠)라는 것은 보배로운 구슬이 아니라, 대우주에 가득 찬 기운을 압축한 것이다. 보주의 이런 의미는 옛 사람들이 문자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조형언어로 마음껏 표현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 이런 농기도 풀어내고 있다. 대체로 민속학자들이 농기에 관한 글을 역사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지만, 농기에 표현된 용의 조형성에 관한 연구는 오로지 25년째 용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나의 몫이다. 용어가 없으므로 내가 지어서 설명하고 있어서 낯설어서 이해가 어렵지만, 연재를 통해 차차 아시게 될 것이다.

신농씨 살포를 지물로 들고 있는 까닭은 무엇?

신농씨는 살포를 지물(持物)로 들고 있는데 무엇일까. 마을의 이장(里長)은 살포를 들고 다니며 논에 비가 내리면 위 논에는 물이 많으나 아래 논에는 물이 부족하므로 이장이 살포로 물꼬를 터주어서 마을 전체에 물이 골고루 흐르게 하여 풍년을 기원한다. 그림만 보면 무엇인지 잘 모르므로 채색분석하면 뚜렷이 보인다. 우리는 이 기회에 살포에 대해 상식으로 알아두기로 하자.

사진 6-1 황남대총 발견 금제 허리띠.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6-1 황남대총 발견 금제 허리띠.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6-2, 내림띠 중 살포 위끝에 둥근 보주.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6-2, 내림띠 중 살포 위끝에 둥근 보주. 사진=강우방 원장

이미 삼국시대 5세기에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발견된 국립박물관 소장 보물 제629호 금제 허리띠 내림 장식들 가운데 살포가 있지 않은가.(사진 6-1) 깜짝 놀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살포 맨 위에 둥근 보주가 있다.(사진 6-2) 보주 안에는 우주의 기운이 가득 있다고 밝혔는데, 가시적으로 바닷물이 가득 차 있어서 살포의 날과 보주를 함께 표현했던 것이다. 아마도 고대에 농업이 중요하여 이장이 살포를 들고 마을을 관장하듯, 국가의 왕이 나라를 관장하는 상징을 띤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왕이 신농씨의 위상을 띠고 있는 셈이다.

사진 7-1, 의자와 살포.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7-1, 의자와 살포.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7-2 살포의 날 밑부분에 각진 보주 있음.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7-2 살포의 날 밑부분에 각진 보주 있음. 사진=강우방 원장

통일신라시대에 김유신 장군이 사직을 청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고 의자와 살포를 하사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현종은 1668년에 영의정까지 지냈던 이경석에게 궤장(机杖), 즉 의자와 지팡이 겸 살포를 하사했다. 살포 길이는 190센티. 경기도 박물관 소장으로 보물 제930호다.(사진 7-1, 7-2) 이 살포에서도 날과 보주를 함께 만들었는데, 보주를 모 죽인 각진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로 보아 살포의 역사가 이렇게 길구나.

서강대 박물관 놀라운 살포...농기 소모품 이상

10년 전에 서강대학 박물관에서 놀라운 살포를 본 적이 있다. 살포의 긴 대에 두 용이 가운데에 보주를 향해 두 용이 있는 모습을 조각한 놀라운 살포였다.(사진 8-1, 사진 8-2) 정선용 교수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탁본했는데, 지금 내 연구원에 배접하여 벽에 걸어놓고 있다.(사진 8-3)

사진 8-1, 서강대 박물관 소장 살포를 들고 있는 필자.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8-1, 서강대 박물관 소장 살포를 들고 있는 필자.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8-2 살포의 날.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8-2 살포의 날.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8-3, 살포 봉에 조각된 용과 보주 필자 그림.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8-3, 살포 봉에 조각된 용과 보주 필자 그림. 사진=강우방 원장

우리가 농기를 다룸에 있어서 민속학적 접근이 물론 중요하지만, 농기에 그려진 조형성과 그 상징성을 밝히면 위대한 농기가 단지 소모품으로 머물지 않을 것이다.

강우방
·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국립경주박물관장
· 이화여대 초빙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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