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사기행각에 억울함이 없도록 잘 살펴봐 달라”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지수(ELS)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거나 손실 위기에 처한 약 100명의 투자자들이 지난해 12월 15일  금융감독원 본원 앞에 모였다.[뉴시스]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지수(ELS)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거나 손실 위기에 처한 약 100명의 투자자들이 지난해 12월 15일  금융감독원 본원 앞에 모였다.[뉴시스]

[일요 서울ㅣ이지훈 기자]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사 현장검사에 착수한 가운데 그동안 비이자 수익 확대를 위해 고위험 상품 판매를 늘려왔던 은행권은 식은땀을 흘리는 상황이다.

투자자들은 은행권의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며 원금 보상과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홍콩 H지수 ELS 시한폭탄'이 결국 올 상반기 터질 것으로 예상한다. 일요서울은 H지수 ELS 상품에 투자한 투자자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 ‘불완전판매'… 예금보다 높은 이자로 중년층·노년층 현혹  
- 금융사 수익 증대를 위해 무리하게 고위험 상품 판매 논란


대구에 거주 중인 A씨(49세, 전업주부)는 “ELS 상품을 설명할 때 직원이 고위험상품이라는 설명은 없었다. 해당 직원은 6단계 중 3단계로 중위험이고, 이 상품이 왜 위험한지 모르겠으나,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손실이 없다고 해서 투자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 투자할 때 분명 투자성향을 안전 추구형으로 설정했는데 두 번째 가입 시부터 직원이 공격형 투자 방식으로 수정했다"며 "따로 변경 서류를 작성한 적도 없는데 두 번째 상품설명조차 해주지 않았다. 매번 그냥 ‘지수가 얼마고, 얼마 되면 상환돼요’라고만 이야기했다”라고 밝혔다.

A씨는 “해당 직원이 불완전 판매(은행[금융 기관]이 금융 상품에 관한 기본 내용이나 투자 위험성 따위에 대해 제대로 안내하지 않고 고객에게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일)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은행 직원, 금융지식 적은 중ㆍ노년층에게 ‘불완전 판매’

해당 직원은 A 씨에게 낙인(기초자산의 가격이 특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안내도 하지 않은 채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A 씨는 “집을 팔고 나온 돈 4억 원가량을 직원의 말을 믿고 맡겼는데 피해 보상은커녕 자기가 가입시킨 ISA도 판매도 한 적 없다고 발뺌하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홍콩 H지수 ELS 피해자가 보내온 '불완전판매' 자필 사례.
홍콩 H지수 ELS 피해자가 보내온 '불완전판매' 자필 사례.

김해진영 거주 중인 또 다른 피해자 B 씨(48세, 직장인)는 “2020년1월31일에 정기예금하러 갔는데 이자 많이 주는 거 있다”며 “요즘 돈 있는 사람이 가입하는 상품이 있다고 운을 뗐다. 예금 기간도 6개월 기준이고 6개월마다 해지하고 가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라고 홍콩 지수 ELS 투자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B 씨는 “저금하기 위해 은행에 방문한 것이지 투자를 하려고 방문한 것이 아니다. 상담사는 ‘투자’라는 말도 안 했고 손해를 볼 수 있다거나 주식이라던가 원금 손실이 될 수 있다는 말 한마디조차 없었다. 담당자는 고위험이니 손해 구간이란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전혀 들은 바 없다”라고 말했다.

-몇십 년 피땀 흘려 모은 돈 없어질 상황

두 피해자 모두 금융당국이 H지수 ELS 판매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시행한다는 소식에 “선량한 서민들의 무지로 인한 은행의 사기행각에 억울함이 없도록 잘 살펴봐 달라”며 “우리가 돈이 많아서 투자한 것이 아니라 안 먹고 안 입고 안 자고 모은 피 같은 돈 몇십 년 몸 바쳐 일하고 모은 사연 있는 돈이다”라고 간절함을 전했다.

금융권이 판매한 홍콩 H지수 기초 ELS 총판매 잔액은 19.3조 원(2023년11월15일 기준)으로 알려졌다. 2024년1월부터 만기가 도래하며 대규모 투자자 손실 가시화되는 상황이다. 지난 11일 금감원은 1월 중 12개 판매사 검사를 순차적으로 진행하며 불완전판매와 위법 사항 등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ELS는 기초자산이 되는 지수가 만기까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약속한 수익률을 지급하는 상품이며, 지수 변동에 따라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고위험 상품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현장 조사실시,,,'손실대응 TF' 설치

금융감독원 H지수 ELS 대응 T/F [제공 :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H지수 ELS 대응 T/F [제공 :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은 지난 2023년 11월 말부터 12개 주요 판매사(KB, NH, SC, 신한, 하나 등 5개 은행사, KB, NH, 미래에셋, 삼성, 신한, 키움, 한국 투자 등 7개 증권사)에 대한 현장 및 서면 조사를 실시해 ELS 판매 의사결정 프로세스, 인센티브 정책, 영업점 판매 프로세스 등을 중점 점검 중이다.

금융당국은 H지수 기반 ELS 투자자 손실 현실화 시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민원 및 분쟁조정, 판매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 및 조치 등에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금융감독원에 ‘H지수 ELS 대응 TF’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TF 팀장은 금감원 은행 담당 부원장보가 맡고 ▲은행·금투검사국▲자본시장감독국▲분쟁조정국 등으로 TF를 구성하고 있다.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는 "국민은행의 경우 변동성이 30% 이상 확대되면 자체적으로 한도 내 목표 금액의 50%만 판매하겠다고 내부 규정에 정했는데 2021년에 많이 팔리니까 그것을 80%까지 끌어올려서 판매한 사례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이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이 지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판단했어야 하는데 많이 팔린다는 이유로 판매 한도를 80%로 늘린다든지 하는 부분은 본점 차원에서 리스크 관리가 부실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부원장보는 "통상 은행권 KPI가 1000점 만점인데 고위험 ELS나 주가연계신탁(ELT) 상품 판매와 관련해서 직·간접적으로 연계되는 주요 지표 점수 비중이 30~40% 정도 된다"며 "특히 국민은행의 경우 1000점 만점에 약 410점이 ELS 판매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