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자느니, ‘불체포특권을 없애자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물갈이’, ‘새 인물수혈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듣기는 그럴싸한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헛다리 짚은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안이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정수는 지금도 많은 게 아니다. 다만 엉뚱한 일에 내몰리느라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안하거나 못하기 때문에 문제다. 우리 헌법이 불체포특권을 만들어 놓은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토록 문제가 된다면 개헌해서 없애거나, 그냥 당에서 출당시키면 된다. 헌법이 그대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다수당 되었다고 법 개정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갈이역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에 백날 해도 효과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 국회는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크게 다섯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첫째, 정당의 문제다. 지금과 같은 중앙당 중심의 구조는 비효율의 극치다. 시도 때도 없이 국회의원들을 정쟁의 한복판으로 내몬다. 장외집회에 수시로 인원동원을 요구한다. 지방에서 버스로, 기차로 당원들을 실어 나른다. 여기에 돈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시간 낭비는 또 얼마나 많은가. 총선을 제외하고도 지방선거, 대통령선거에 총동원된다. 하다못해 일개 구청장 선거에까지 전국 당원을 동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당원의 질이 아니라 모집한 숫자로 국회의원의 당 기여도를 평가하는 구조는 또 어떤가. 당원 자신이 당원인 줄도 모르는 사람이 지천에 널렸다. 왜 이런 구조를 혁신하지 않는가. 중앙당을 최대한 축소하고 원내정당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개별 당원협의회를 관리하는 구조를 없애고 시·도당 중심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구조로 싹 바꿔야 한다. 상대당에 대한 저격수, 공격수 역할에 올인하는 국회의원을 고평가하는 수준 낮은 행태도 바꿔야 한다. 이것들부터 약속해야 한다.

둘째, 인력의 문제다. 현재의 국회 인력 구조는 생산성이 거의 없다. 우선, 자기 손으로 운전하는 국회의원이 거의 없다. 운전을 전담하는 직원이 7, 5급 공무원 대우를 받으며 주야로 운전한다. 주말에 골프장까지 데리고 다닌다. 선진국 어디에 이런 인력 운용을 하는 나라가 있는가. 스스로 운전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모두 퇴출시켜야 한다. 게다가 국회 인턴이나 9급은 국회 내에서도 의원을 수행한다. 국회의원이 국회 안의 길도 모르는 바보들도 아닌데, 5, 10분이면 오고 갈 국회 내 회의장을 일없이 따라다니며 시간을 낭비한다. 비효율의 극치요 인력 낭비다. 국회 내 수행도 원천적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할 일이 없으니 쓸데없는 입법 남발, 특별법 제정에 정신을 파는 것이다. 21대 국회 법안 발의 건수가 110일기준 24,616건이나 된다. 이중 가결된 것이 8,099건에 불과하다. 21대국회 임기동안 혼자서 325(원안가결 1)을 대표 발의한 의원도 있다. 두 번째가 281(원안가결 0)을 발의한 의원이다. 이건 정상적 입법행위로 볼 수 없다. 법은 최소한, 꼭 필요한 법만 만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도 법은 너무 많아서 차고 넘친다. 비싼 밥 먹고 할 일이 없으니 이런 일이나 하는 것이다. 입법총량제도 반드시 공약해야 한다.

셋째, 지역의 문제다. 지역관리에 대한 부담이 과도하다. 지역구별로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대여섯 명까지 지역에 혈세로 봉급 주는 보좌진을 상주시키는 이유다. 국회의원은 온갖 지역행사에 수시로 불려 다닌다. 주민들의 온갖 사소한 민원까지 차고 넘친다. 책 읽고, 공부할 시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지역구 지방의원과의 정기적 월례 회의만으로도 지역의 민원, 정책협의는 충분하다. 제도적으로 국회의원과 시··구의원들의 역할 분담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의 개인적 민원과, 지역발전을 위한 제도와 정책개선 과제를 분리해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도대체 지방자치제를 도입한 이유가 무엇인가. 회기 중 지역구 행사 참석도 원천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이 옳다. 지역 당협을 없애고 시도당 체제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속히 검토해야 한다.

넷째, 자금의 문제다.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돈 없이 정치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후원금 모으고, 국고에서 경비 지원받아서 빵 사 먹고 자기 배 불리는 게 아니다. 매년 의정보고서 만들고 배부하는 데 수천만 원씩 든다. 지역 사무실 유지에도 연간 1~2천만 원 든다. 지방선거와 대선, 선거 때마다 버스로 인력 동원하려면 돈이 든다. 언론인과 밥 먹는데도 돈이 든다. 당에서도 의원들에게 당비, 의연금, 심사료, 당내선거비 등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아 간다. 지역의 경조사도 알음알음 챙겨야 한다. 이런 고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 특권 운운하며 손가락질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번 국민의힘 당비 90만 원과 공천심사료 200만 원은 적은 돈인가?

다섯째, 언론의 문제다. 우리 언론은 소리없이 헌법과 국회법이 명령하는 임무에 충실한 국회의원에게 별 관심이 없다. 저질스럽게 싸우고 소란을 피우는 자들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게다가 그런 자들을 존재감이 있다고 평가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일례로 국정감사 때만 봐도 그렇다. 국리민복을 위한 정책감사에 집중하는 의원에겐 별 관심이 없다. 고함치고 윽박지르며 싸우는 자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런 자들의 얼굴이 신문과 방송에 도배된다. 국민은 욕하면서도 그런 자들만 기억한다. 인지도가 팍팍 올라가는 것이다. 언론의 이런 행태가 국회를 타락으로 이끄는 원인이다. 언론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라면 전과 4범이 광역단체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올바른 언론이라면 저질인 빈 깡통이 아니라, 소리없이 유능한 정치인에게 집중해야 한다.

결국 국회를 개혁하는 방법은 의외로 아주 단순하다. 헌법과 국회법이 국회의원에게 명령하는 임무로 그 업무영역을 한정시키면 된다. 그 일만 제대로 하는 것도 사실은 벅차고 고단하다. 그 일을 제대로 안하거나 못하기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이다. 예산서, 결산서, 법안자료, 국정감사, 각종 보고서 따위를 제대로 읽는 국회의원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엽말단적인 것을 본질과 섞지 말라.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릇(시스템)’이 문제다. 모든 국회의원은 누구나 처음엔 새인물이었다. 4년마다 물갈이를 해왔지만 우리 국회는 오히려 점점 더 나빠졌다. 거기서 왜 배우지 않는가. 어설픈 쇼로 국민을 현혹시키지 말라. 일이 너무 힘들어서 국회의원 하기 싫은 국회를 만들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공약도 정도(正道)로만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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