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여의도 정치와는 달리 서초동 출신들의 검찰 정치는 쾌도난마같다. 검사 출신 대통령과 역시 검사출신인 정권 황태자간 갈등은 이틀만에 봉합됐다. 이준석 대표가 약속대련이라고 할 만큼 전광석화처럼 정리됐다.

모양새도 화끈했다. 화재현장에서 윤 대통령을 만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미리 나가 90도 폴더인사를 했고 윤 대통령은 어깨 툭 치면서 끝났다. 뒷말이 안나오게 상경길에 대통령 전용열차에 함께 올라탔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불편함과 공천갈등은 언제 있었느냐는 듯 일거에 해소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진보진영에서는 공천을 두고 다시 갈등을 겪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오판일 공산이 높다. 둘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데 어떻게 갈등을 빚을 수 있을까. 육체와 정신이 분리될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처음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의 김건희 여사 아킬레스건을 언급했을 때 노발대발 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그 뒤로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사퇴하라는 대통령 메시지를 전달할 때 한 위원장은 대통령은 내가 더 잘 안다며 사퇴 제안을 일축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한 위원장은 대통령의 의중을 너무나 잘 알았고 다음날 윤 대통령이 화재현장 방문길에 함께하면서 일거에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정권 1, 2인자간의 충돌이 약속대련이건 실제상황이건 남는 게 몇 가지 있다. 일단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분신처럼 움직이지만 김기현 전 대표와는 달리 정권 2인자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김 여사의 디올백 수수 논란과 관련해 김 여사를 단두대에 처형당한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견한 김경률 비대위원을 사퇴시키지 않았다. 전략공천도 확실하다. 야권에서 한 위원장을 윤 대통령의 아바타라고 낙인이 다소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또 하나는 김건희 여사의 존재감이다. 네덜란드 순방에서 귀국한 이후 외부일정을 전혀 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용산 대통령실의 실세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정권 1, 2인자를 싸우게 할 수 있는 막후 인사가 자기라는 점을 두 사람의 충돌과정에서 충분이 대내외적으로 알렸다.

물론 절반의 성공이지만 말이다. 어차피 윤 대통령이 나서건 김 여사가 나서건 명품백 수수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를 해야한다는 여론이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외형상 윤 대통령이 멋적게 되고 한 위원장의 완승인 것처럼 보이지만 윤 대통령 역시 본인이 풀 수 없는 영부인 문제를 한 장관이 분위기를 조성해주면서 한숨 돌리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처럼 이념적인 공격이면 내가 부인을 버려야 하느냐고 큰 소리 치겠지만 아무리 함정취재라고 해도 대통령 영부인이 명품백을 받는 영상은 일반 국민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고 총선 내내 야권 출마자들이 동영상을 틀어제끼면 수도권에서 아무리 유력한 대권 주자이고 보수 텃밭이라도 승리할 후보는 없다.

여의도에서는 한 위원장이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감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 한 위원장의 처신을 두고 호평이 쏟아지는 모습이다.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찝찝한 점이 있다. 여의도 정치, 여의도 문법을 무시하는 한 위원장이 이번에는 검찰식 서초동식 정치가 먹혀들었다고 자만해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 본령까지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다. 아직 4.10 총선까지는 시간은 있다. 총선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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