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청룡의 해를 맞이하여 도대체 의 정체를 짧은 연재나마 밝히고자 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용이 무엇인지나 알고 살아야 함을 깨치고자 하는 사명감에서 비롯되었다.

고구려 사신도, 소우주 우주 기운 가득차 있다는 상징
- 강서대묘 청룡과 백호 채색분석, 다리에 각각 제1영기싹 존재

해방 후에 서양 문화의 혜택을 동양 문화보다 더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자라온 한국인은, 용에 대해 무지의 상태이고 알려고 하는 관심도 없다. 단지 용이란 상상의 동물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 용을 모르고 어떻게 한국, 나아가 동양, 그리고 더 나아가 서양의 문화를 밝힐 수 있단 말인가. 부끄러움조차 없다.

, 드래곤(Dragon) 아닌 영어로 ’(Yong)으로 해야

서양은 기독교 문화여서 성경에 표현되어 있듯이, 용은 악마의 화신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신앙이 팽배해 있다. 동양의 용을 Dragon이라 번역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중국이 창조한 용의 역사는 중국 신석기시대 즉 기원전 1500년에까지 오른다. 특히 중국 고대 문화는 용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비록 중국에 용 연구자가 많지만 옳지 않은 이름으로 부르거나, 이라고 부르기는 해도 용의 본질을 모르므로 별다른 학문적 성과가 없다. 중국어 발음으로 용을 Lung이라 부르고, 한국어로는 이라 부르는데, 필자가 용의 정체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밝혀 한국의 문화는 물론, 중국 문화도 밝히고 더 나아가 서양 문화를 밝혀 나가고 있으므로, “이란 한국어로 부를 권리가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영어로 쓰면 ‘Yong’이다.

조선 시대 말과 한국 정부 수립에 걸친 20세기 전반(前半)에 만들어진 농기에서 용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물론 오방신(五方神)의 개념에서 성립된 것이 아니다. 다만 물을 상징하는 용이므로 농업과 관련하여 농기에 용과 그 당시 우주관을 표현했음을 밝혔다.

그러면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시대에는 용이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삼국시대에서 백제와 신라는 무덤 구조상, 벽화가 없다. 백제는 벽전(壁塼)으로 왕릉을 축조하지만 때때로 벽전 위에 색체로 사신도(四神圖)를 그리기도 했으나 온존이 남아 있지 않다. 신라는 돌을 쌓아 만들었으므로 벽면이 없다.

그러나 고구려는 무덤에 돌로 쌓고 회벽으로 만들었으므로 붓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7세기 이후 석실을 화강암으로 잘 다듬어 쌓아서 직접 붓으로 그립을 그려서 수많은 생생한 무덤 벽화를 남겼다. 네 벽과 천정에 오방신(五方神)의 성격을 띤, 즉 천정에 황룡, 네 벽에 방향에 따라 청룡(동쪽 벽), 백호(서쪽 벽), {붉은}봉황(남쪽 벽), 현무(북쪽 벽) 등을 그렸으며 그 외에 여러 가지 문양을 그려 넣었다. 단지 사신도만 그렸어도 오방신의 성격을 띤다. 오방신에 황색, 청색, 백색, 적색, 흑색 등, 다섯 가지 색을 붙인 까닭은 음양오행(陰陽五行)사상에 따른 오방색(五方色)에 따라서 관념적으로 말한 것일 뿐, 실제로 다섯 가지 색으로 네 신(四神)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신()이라 불렀을까. 문제는 고구려 무덤 벽화에 사신도를 그린 벽화가 몇 무덤이 있는데 무슨 의미일까.

고구려 무덤 사신도 벽화 무슨 의미일까?

사진 1, 청룡 벽화,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1, 청룡 벽화, 사진=강우방 원장

고구려 벽화 연구자들은 사방에 배치하여 방위신(方位神)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사신의 성격을 모르기 때문이다. 무덤 사방 벽에 용, 호랑이, 봉황, 현무를 그린 까닭은 용을 중심으로 모두 용성(龍性)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백호를 보면 용의 모습처럼 몸이 가늘고 길다. 그리고 보이지는 않으나 모두 보주를 입에서 내고 있다. 차차 증명하며 설명할 것이다. 우리가 농기에서 보았듯이 용은 물을 상징하고, 기우제 때 농기를 들고 제를 지내면 비가 오고 농사가 잘되어 오곡이 무르익으며 만물이 생성한다는 철학적 사고로 이어진다. 따라서 사신도를 그린 까닭은 물론 사방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이 무덤이라는 공간은 소우주로 우주의 기운이 가득 차 있다는 상징이 매우 크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무덤이 대우주라면 무덤의 주인공은 소우주인 셈이다. 무덤이 우주의 축소라는 개념은 백제 무덤에서 더욱 분명히 밝혀진다.

고구려 무덤 벽화들 가운데 사신도를 그린 벽화는, 수렵총, 약수리 무덤, 사신총, 쌍영총, 진파리 무덤, 강서 중묘, 강서 대묘 등이다. 이들 그림 양식은 점점 발달하는 과정을 보이며, 강서대묘에서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로 평양 지역의 무덤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서대묘 벽화를 보면 어떻게 표현했는지 분명히 알아볼 수 없다.(사진 1) 그러나 채색분석해 보면 분명히 청룡의 생성과정을 알아볼 수 있다. 이 역시 내가 찾아낸 제1영기싹으로부터 청룡이 생겨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설명이 매우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 원래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청룡이라고 막연히 말해서는 우리는 고구려 벽화의 모든 문양을 알아볼 수 없다. 나는 고구려 벽화를 수년간 연구하여 100% 해독해 내어 개안(開眼)했다. 그 증거로는 그 이후 그리스 여행을 하며 첫날부터 신전의 폐허에 흩어진 돌로 만들어진 건축 부재들을 보았을 때 매우 놀랐으며, 열흘 동안 여행하며 내가 본 것은 유럽의 어느 학자도 보지 못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서양의 르네상스도 잘못 일어난 근대 미술 운동이라고 확신했다.

부르크하르트라는 르네상스 미술에 관해서 저술을 남긴 유명한 미술사학자나 이태리 여행으로 유명한 괴테도 그리스 예술 정신을 알지 못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은 그리스 땅을 밟지 않았다. 그리스 예술 정신의 회복, 혹은 부활, 혹은 재생은 2006년 나의 그리스 여행에서 의해 이루어졌고, 따라서 그 이후의 서양미술도 나에 의해서 처음으로 밝혀졌다. 아마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그리스, 프랑스, 독일 등에서 50여 회 걸쳐 학술 발표, 강연, 강의 등, 광폭의 세계미술 편력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직도 사대사상에 젖어 서양의 연구성과에 의지하고, 서양으로 유학하여 배우려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서양미술은 올바로 밝혀진 바 없으며, 한국의 한 미술사학자가 밝혔으나 처음 듣는 이야기라 우선 알아듣지 못한다. 나는 2024315일 국립박물관 강당에서 나의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이란 이론과 사상, 그리고 나름의 방법론인 채색분석법(彩色分析法)으로, 서양미술과 한국미술의 종교건축과, 그 건축 공간 중심에 자리 잡은 예배 대상을 중심으로 비교 연구하는 강연을 계획하고 있다.

무덤 공간의 세계는 영화(靈化)된 세계

사진 2-1, 청룡.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2-1, 청룡.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2-2, 백호,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2-2, 백호, 사진=강우방 원장

다시 고구려 벽화를 살펴보자. 특히 강서대묘의 청룡과 백호를 채색분석한 조형을 보면, 다리에 각각 제1영기싹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제1영기싹에서 청룡과 백호가 생겨나는 드라마를 엿볼 수 있다.(사진 2-1, 2-2) 봉황의 입에서는 영기문이 소용돌이치며 맨 위에 연봉, 즉 보주가 있다!(사진 2-3) 현무는 아직 분명히 밝히지 못했는데 거북 모양이나 뱀 모양은 모두 용성을 지니고 있으며 두 영수가 무슨 관계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사진 2-4) 이 사신에서 보이는 뿔, 날개, 다리, 발톱 등은 현실에서 보는 것들은 아니며, 그 일체가 영기문(靈氣文)이다. 그래서 아무도 올바른 조형적 해석을 하지 못해 왔다. 천정의 황룡은 매우 드물다.(사진 2-5) 오방색에서 중앙 색은 황색으로 황제나 왕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무덤은 혹시 왕의 무덤인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무덤 공간의 세계는 영화(靈化)된 세계여서 무덤 벽에 그려진 모든 문양은 나의 해독을 기다려야 했다

사진2-3, 봉황.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2-3, 봉황.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2-4, 현무,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2-4, 현무,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2-5, 황룡.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2-5, 황룡. 사진=강우방 원장

2004년에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을 개원한 이래 2009년까지 매년 고구려 벽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여 강의해 왔다. 요즈음 그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므로 고구려 벽화를 새로이 강의해 보려고 한다. 작년 봄에 펴낸 일향 강우방의 예술혁명일지는 나의 학문과 예술의 편력 과정을 쓴 것으로 자서전의 성격을 띤 저서였다.

강우방

·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국립경주박물관장
· 이화여대 초빙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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