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중 발해사는 남다른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제10대 선왕(宣王) 때는 전성기 고구려의 1.5 배나 되는 가장 큰 영토를 이루었고,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리는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발해는 웅혼한 우리 역사에 접근하는 시작점이다. 발해를 통해 고구려, 부여, 그리고 한민족의 원류인 단군조선까지 연결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역사가 유득공(柳得恭)은 <발해고(渤海考, 1784년)>에서 남쪽은 신라, 북쪽은 발해라는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의 역사 인식을 처음 만들어 냈다. 발해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분명히 밝혀 우리 민족사의 범주로 끌어들였다. 실학자인 박제가(朴齊家)도 잃어버린 발해사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 선비들이 신라 9주 안에서 태어나 그 바깥의 일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틀어막아 버리니 어찌 발해의 역사를 알 수 있겠는가!”라고 통탄했다. 이는 “일통삼한(一統三韓)”이라는 삼국통일의 불완전성과 신라 중심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었다.

최근 거란의 침입을 막아내고 고려를 발전시킨 현종과 강감찬 장군을 소재로 한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인기를 끌고 있다.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키면서 발해 유적과 서고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 발해를 중국에 소속한 지방정권으로 규정한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맞서 발해사를 복원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의 역사적 과업이다.

당나라를 선제공격하고 강경정책을 펼쳤던 2대 무왕(武王)의 아들 대흠무(大欽茂)가 3대 문왕(文王, 재위 737∼793)이다. 문왕은 외적 팽창과 함께 정치 문화의 발전으로 해동성국의 기반을 닦았고, 당의 정부 조직인 3성 6부를 받아들이면서도 발해만의 독창적인 것으로 바꾸었다.

문왕은 당나라와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주변의 말갈 부족은 정벌했고, 신라와의 관계는 대체로 소극적이었지만 양국 간에 교류가 이루어졌다. 발해와 신라 간의 교역을 쉽게 하기 위한 길, 즉 ‘신라도’의 개설인데 이를 통해 사신을 파견하고 상호 경유하였다.

755년 당나라에서 안사의 난(安史의亂, 안녹산의 난)이 일어난 후, 758년 당나라는 발해에 4만 기병을 내어 반란군 토벌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문왕은 이를 거절했다. 781년에는 고구려 유민 출신 치청절도사 이정기(李正己)가 당나라와 전쟁을 벌였다. 문왕은 이정기와 말 무역을 하며 우호적으로 지냈으며, 전쟁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문왕은 ‘금륜성법대왕(金輪聖法大王)’ 존호로 자신을 칭해 불교를 호국 이념으로 세웠으며, 나라 이름을 발해에서 ‘고려’(고구려를 의미)로 바꾸어 사용했다. 또한 고구려 역대 임금처럼 자신을 ‘천손(天孫, 천하의 주인)’이라고 했다. 771년 문왕은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자신을 천손으로 표시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장인과 사위(舅甥·구생)라고 하였다. 발해가 일본을 낮추어 보는 문서를 보낸 것은, 발해의 국력이 강해졌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정혜공주(둘째 딸)와 정효공주(넷째 딸) 묘지명에는 아버지 문왕을 황상(皇上), 성인(聖人), 대왕(大王) 등으로 표현했다. 당나라는 한동안 발해의 임금을 발해군왕(渤海郡王)이라 낮추어 불렀는데, 762년부터는 문왕을 발해국왕으로 불렀다. 문왕 시기 발해의 국력이 커지고 있었음을 당나라도 인정한 것이다.

발해가 처음 건국된 곳은 동모산(東牟山)이었다. 문왕은 상경(上京)-동경(東京)으로 수도를 옮겨 발해의 여러 곳을 개발하는 효과를 얻었다. 상경 용천부(龍泉府, 지금의 흑룡강성 영안)는 당의 장안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

57년간 발해의 국가 기반을 다지고, 덕을 베풀어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에 견줄 만큼 칭송을 받은 문왕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天孫三代續英雄(천손삼대속영웅) 천손은 삼대(대조영-무왕-문왕)를 이어 영웅이 났고

皇上呼稱位相嵩(황상호칭위상숭) 스스로 황제로 호칭해 위상이 우뚝 솟았네

兩次遷移都邑廣(양차천이도읍광) 두 차례 도읍을 옮겨 강토를 넓혔고

兼長和戰內治隆(겸장화전내치융) 화합과 전쟁 양면 전략으로 나라를 융성시켰네

安康洽洽唐虞世(안강흡흡당우세) 편안하게 흡족한 베풂은 요순의 치세였고

德治融融華夏中(덕치융융화하중) 어진 정치는 밝게 빛나 중화의 한복판이네

何事工程東北境(하사공정동북경) 무슨 일로 동북공정 역사왜곡을 하는가?

古韓盛國震檀風(고한성국진단풍) 고대 한민족의 해동성국은 우리나라 풍속이라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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