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체육시설에서 심정지로 쓰러진 60대 여성이 1.5km, 불과 4분 거리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진료를 거부당했습니다. 그러고선 다른 병원으로 옮기느라 구급차에서 20분 넘게 지체됐고, 결국, 숨졌습니다.] 사람이 죽었다. 진료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한 체 길거리를 떠돌다 숨졌으니, 더 안타깝다. 현행법상 의사는 정당한 이유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그 정당한 이유 중 하나가 의료인력이 부족해 새로운 환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 그런데 대학병원 응급실은 늘 환자로 미어터지니, 위 기사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OECD 국가에 비해 의사 수가 부족한 탓이라며 의사 수를 늘리자고 한다. 사람들은 지난 20년간 의대 정원이 동결됐다는 말에 깜짝 놀란다. 의료수요는 늘어나는데 의사 숫자를 늘리지 않다니, 이 얼마나 이기적인 집단인가? 하지만 그 20년 동안 의사는 매년 3천명씩, 6만명이나 늘었다. 인구 5천만에 14만의 의사가 있는, 그래서 인구 1천명당 2.8명인 지금도 의사가 부족하다면, 의사 수가 4만명, 인구 1천명당 1명에 불과했던 1990년대는 의사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수많은 이들이 응급실 문턱도 가지 못한 채 사망하는 아비규환이 벌어졌을 것 같다.

그런 일이 없었던 건 아니었겠지만, 지금만큼 난리는 아니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다음 두 개다. 첫째, 1997년부터 우리나라에는 응급환자 상담번호 1339’가 있었다. 환자나 구급대원이 1339로 전화를 걸면 공중보건의사가 전화를 받아 환자를 신속하게 분류해줬다. 경증 환자는 간단한 상담 후 다음날 동네병원으로 가도록 안내하고, 응급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적절한 병원을 지정해 후송하도록 한 것이다. 이 시스템을 계속 발전시켰다면 1339는 야간 응급환자 상담, 의료기관 안내와 전원 기능 등도 해결하는, 환자 맞춤형 전화번호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2012119법이 개정되면서 소방청이 환자 신고와 후송을 도맡게 됐다. 소방대원들은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경증과 중증을 구별하지 않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했고, 경증환자들에 의해 점거당한 응급실은 중환자를 받을 수 없게 됐다. 119 구급대가 환자를 내려놓을 병원을 찾느라 전화 돌리기가 바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시작된 것이다.

두 번째, 과거에는 자리가 없다고 환자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1990년대 어느날,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시고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응급실은 미어터졌고, 침대조차 없어서 어렵사리 구해온 천 쪼가리에 아버지를 눕힌 채 언제 올지 모르는 의사를 기다렸다. 진료가 꼭 순서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딱 봐도 응급인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어디선가 의사가 나타나 응급처치를 했으니까. 그 과정에서 숨지는 환자도 있었겠지만, 그때는 그런 게 다 운명이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응급실에 왔는데 진료가 지연돼서, 혹은 응급조치를 제때 했는데도 환자가 숨지면 의사가 제 할 일을 다하지 않았다고 의심하고, 소송을 건다. 작년 말 법원이 내린 판결을 보자. 43A씨는 열이 40도에 호흡곤란이 있어 병원을 찾았는데, 응급실 도착 후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의식불명에 빠졌다. 의사는 A씨에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했지만, 곧 심정지가 발생했다.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A씨는 다시 소생했지만,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A씨는 반혼수 상태다. A의 가족은 병원을 상대로 13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판결은 병원이 5억원을 지급하라는 것, 기관삽관부터 심정지까지 15분간 진료기록을 작성하지 않은 게 주의의무 소홀이라는 설명이다. 이건 그래도 민사소송이니 돈만 물어주면 되지만, 형사소송으로 인해 의사가 처벌받은 사례도 차고 넘친다. 병원들이 확실히 살릴 자신이 없으면 환자를 받지 않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것이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이건만, 현 정부의 해결책은 ‘1-2천명 정도 의대정원을 늘리는 것이라니, 기가 막힌다. 연간 신생아 수가 20만명대인 나라에서 한해 5천명씩 의사가 배출된다? 먼 훗날, 역사는 지금 일을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세계 최고였던 대한민국 의료를 박살낸 건 다름 아닌 윤석열 정부라고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