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설은 설 같지도 않다고들 말한다. 취업과 주거 문제의 허들을 넘지 못한 청년들은 고향에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장년 세대는 나이가 들어도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자식 뒤치다꺼리에, 늙은 부모 봉양에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바쁘다. 노년세대 역시 그런 자식과 손주 세대의 모습이 안타까워 먼 길 오라고도 하지 않는다. 가족과 친지들이라 해도 이제는 각자도생의 위태로운 길을 걷는 고독하고 불안한 세상이 됐다.

이런 우울한 세상에도 선거는 계속된다. 켜켜이 쌓인 분노의 함성과 절망의 몸부림이 반복되어도 거의 변하지 않는, 철옹성 국회에 다시 부질없는 기대를 걸어보려는 것이다. 정당은 이런 간절함을 금방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온갖 쇼와 이벤트를 한다. 어제 한 약속은 다 팽개치고 오늘 새로운 약속을 내민다. 마치 금방이라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공약을 쏟아내고, 정치개혁을 하겠다며 초짜들을 새인물로 포장해 팔아먹는다.

봄은 선택을 강요당하는 계절이다. 410일 총선이후 새롭게 출발할 제22대 국회는 더욱 무겁고 잔혹한 선택을 강요당할 것이다. 기후위기, 인구문제, 에너지, 노동과 교육, 연금문제, 안보와 경제문제 등등 단 한 가지도 녹록한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호랑이 등에 올라타겠다는 이준석의 공격적 공약은 얼핏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영리한 공세이기도 하다. 멀리 보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비난하는 쪽이건 찬성하는 쪽이건 설 밥상에 오를 주제로 신선하다.

2024년 대한민국 청년과 노년의 삶은 우울하고 불안하다. 청년은 일자리, 주택 마련, 결혼, 출산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하고 있다. 노년은 대책 없는 노후, 질병, 고독에 몸부림친다. 이런 현실이 청년세대의 성별간, 소득계층간 갈등과 대립을 낳고, 노년세대의 허탈감과 분노를 부채질한다. 헌법상 부여된 의무를 개별법(병역법)으로 달리 적용해 병역의무를 남성에게만 적용한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금지와 경찰과 소방관 등 특정직역 여성 군 복무 의무화는 충분히 논의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들이다.

먼저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문제. 물론 지하철 전체부채의 총량 중 노인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 비중은 크지 않다. 그렇지만 소득이나 보유재산과 상관없이 65세이상이면 무조건(그것도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 포함) 공짜로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 젊은 세대의 일반적 생각이다. 굳이 그들의 생각이 아니더라도 노인인구의 평균수명 증가추세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노인의 연령을 70세로 연장하고, 70세이상도 소득하위 50% 정도에게만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해보면 어떨까. 기초연금도 동일하게(70세이상 소득하위 50%에게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노인 빈곤, 노인자살 문제도 심각하긴 하지만 어르신 세대가 그 정도 아량도 없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다음은 여성의 국방의무 이행 문제다. 갈라치기 목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리 단순하게 볼 문제만은 아니다. 병력자원 급감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미 부사관 등으로 자원입대하는 여성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우리 헌법이 모성보호를 규정하고 있지만 병역 이행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다. 외국의 경우 여성의 병역 이행이 의무인 나라가 적지 않다. 하다못해 공주도 복무한다. 이젠 여성을 남성과 달리 적용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현실적으로 아직 여성 병력을 수용할 환경적 여건이 부족하다면, 요건이 충족할 때까지 사회복지시설에서 복무토록 하는 방안도 논의할 필요가 있겠다.

청년과 노년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삶은 고단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인생은 그 모든 것을 겪으면서 행복의 순간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하기 싫은 일, 힘든 일이지만 필요하다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정치인은 이런 진실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문제해결의 근본 원인에 천착(穿鑿)해 돌파해내는 용기와 신념이 필요하다.

선거를 앞두고 너도나도 무엇 무엇을 해 주겠다며 숱한 약속을 마구잡이로 던진다. 만용(蠻勇)이다. 반면 이것과 저것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며 국민을 설득하는 용기있는 정치인은 드물다. 쉼 없이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공부하며 시도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그들이 바로 우리의 삶을 개선하고, 세대 갈등을 완화해 나라를 혼돈에서 구해낼 기본기를 갖춘 자다. 국민 역시 그런 이들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과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영화 <루시>에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혼돈(混沌)을 불러오는 건 지식(知識)이 아닌 무지(無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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