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 여부 두고 '난타전'…. 통신선 일제 정비 땐 소비자 피해 불가피

[제공 : 한국전력공사]
[제공 : 한국전력공사]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한국전력공사(대표이사 사장 김동철)는 도시미관을 개선하고 전봇대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단 설치 통신선 일제 정비에 나선다. 이번 정비사업을 통해 전국의 한전 전주에 무단으로 설치된 통신선 약 4만㎞를 오는 2027년까지 완전히 정비할 예정이다.

한전은 그동안 통신 3사(SKTㆍ KTㆍ LG유플러스) 등에 무단 통신선 시정을 요구해 왔는데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직접 칼을 뺐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비 사업으로 일부 소상공인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 한전 2027년까지 전봇대 무단 설치 통신선 완전 정비, 2월부터 착수
- 무단 통신선 4만km, 통신사 시정 요구에 19년 84%->23년 63%로 감소


한전은 통신선이 설치된 전봇대 411만 개 가운데 약 10%에 해당하는 38만 개의 전봇대에 통신선이 무단 설치됐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전은 이번 정비를 통해 전봇대의 안전 확보 및 도시미관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 한전, 전주 무단 설치 통신선 일제 정비 추진

이번 정비에서는 국민 안전과 밀접한 장소에 무단으로 설치된 통신선들이 집중 정비의 대상이 된다.

위반 유형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특고압선 상부 통과 ▲전력 설비 접촉 ▲6차선 도로 횡단 ▲통신선 높이 기준(인도 5m·차도 6m) 위반 ▲저압선 이격(60㎝) 미달 ▲건물인입 통신선 불량 ▲통신선 고정장치 불량 ▲불필요한 여유장 과다 등이다. 한국전력은 정비 결정이 이뤄진 배경으로 이동통신사의 낮은 시정 조치율을 꼽았다.

한국전력은 “통신선이 시설기준에 미달하거나 안전에 우려된다고 판단되면 통신사에 시정을 요청하고 있다”라며 “최근 시정 조치율이 2019년 84%에서 2023년 63% 수준으로 감소해 안정적 전기 사용을 위해 통신선 일제 정비를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국민이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전주에 설치된 통신선을 지속해서 정비할 것”이라며 “통신선을 무단 설치하거나 시설기준을 위반하였음에도 조치하지 않는 통신사에는 법적조치 등 강력하게 대응해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한전과 통신사의 전봇대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전기선과 통신선의 ‘전봇대 동거’는 인터넷과 IPTV 보급이 급증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1996년 인터넷과 유선전화, 1999년부터 유선방송이 한전 전봇대를 임차해 쓰기 시작했다.

국가정보화기본법 제51조, 전기사업법 제20조, 전기통신사업법 제35조 등에는 전봇대에 전력선 이외의 통신선과 설비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한전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

이와 함께 유지관리ㆍ사용요금ㆍ손해배상 등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한전과 통신사업자 간 맺는 ‘배전설비 제공 및 사용에 관한 협정서’에 따라야 한다. 특히 협정서에서는 국민의 안전, 미관상의 문제 등을 고려해 허용된 수량을 초과하는 전선과 통신케이블은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위반해 지난 5년간 한전이 통신사업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했었다.

그런데 일선 현장에서 허용 기준 이상으로 통신케이블이 무단으로 설치되면서 전선이 휘어지고, 이로 인한 2차 사고의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통신선이 규격 보다 낮은 위치에 거미줄처럼 얽히면서 이동하는 공사용 차량 등에 걸려 전봇대가 넘어가 주변 지역의 정전으로 이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통신사들은 허가를 기다리다 경쟁사에 고객을 빼앗기는 것을 우려하거나 고객에게 일분일초라도 빨리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일단 통신선부터 설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시민은 본지에 "어느 순간 골목을 지나가는 얇은 선들이 늘어지면서 미간은 물론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구청에 통신선 정리를 요청해도 통신사 권한이라고 말해 그냥 방치 중이었다"고 했다.

매년 국정감사에서도 통신선 무단 설치 문제는 지적됐다. 2021년 진행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송갑석 의원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 7월까지국내 통신사들이 전신주 무단 사용으로 납부한 위약금은 1670억 원에 달했다.

통신사 중 가장 많은 위약금을 납부한 곳은 LG유플러스로 전체의 27.9%인 466억 원을 납부했다. 이어 SK브로드밴드가 17.2%인 287억 원, SK텔레콤은 11.3%인 188억 원, KT는 9.6%인 160억 원을 납부했다.

당시 국감에서는 "이렇게 무단 설치된 통신선은 감전 사고 및 도시 미관 훼손 등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뉴시스]
[뉴시스]

송갑석 의원은 “무단 설치된 통신선은 고압전선 등과 얽혀있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며 “위약금 인상, 처벌 강화 등 통신선 무단 설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전 정비 땐 소비자 피해 불가피

그동안 전봇대 관리 책임이 있는 한전은 위약금 부과 외엔 특별한 조처를 하지 못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한전 관계자는 “무단 통신선에 임대료의 3배 위약금을 물리지만 임대료가 월 800원(통신선 하나당)이어서 큰 부담이 아닌 데다 한전이 1년에 조사할 수 있는 전봇대가 전체 10% 정도인 10만 개뿐이다 보니 통신사들이 일단 설치하고 위약금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실제로도 한전 전봇대에 허락받지 않고 설치된 통신선은 4만㎞에 이른다. 서울과 부산을 50번 왕복하는 길이다. 한전의 1017만개 전봇대 가운데 통신선이 설치된 전봇대는 411만 개, 이 가운데 9%가 넘는 38만 개에 무단으로 설치한 통신선이 걸려 있다.

이에 따라 전기와 통신 모두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다. 원만하게 합의해 소비자 불편이 없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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